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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May 16. 2016

OP Restrepo.. 최전방 초소

@documentary film festival.toronto

.. oh shit.. 이런 곳에서 도대체 뭘 하란 말이야!
.. 여긴 아냐! 정말 아냐!!

.. 내가 쏜 탄에 적이 쓰러지는 걸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데 어디에 숨었는지 도무지 볼 수가 없어!!
.. 전우들은 죽어가는데 적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거야!!
.. 어제 우리 소대에서 최고였던 B가 전사했어요. 최고였던 그가 즉사했어요. 그럼 이제 우리 차례?
.. 도저히 믿을 수 없어 도저히..

날씨가 너무 화창했던 일요일. 토론토의 가장 중심가 Yonge-Dundas 거리의 극장에서 아프간 전투 상황을 더도 덜도 없이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다. 2010년 개봉된 'Restrepo'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Sebastian Junger와 영국 사진작가 Tim Hetherington에 의해 미국의 잡지 Vanity Fair의 한 프로젝트로 진행, 제작되었다. 이 두 사람은 2007년 미군의 아프간 파병군 중 하나인 173 공정 전투여단 소속 503 보병연대 2대대 B중대 2소대 내에 배속되어 아프간 산악지대의 최 전방인 Korangal Valley에서 장장 일 년간 매일의 실제 전투 상황과 맞닥뜨리며 목숨을 건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영화의 이름인 Resptrepo(레스트레포)는 2소대의 위생병이었으나 전투 배치 초기에 전사한 후앙 레스트레포 이등병의 성을 딴 것으로 아프간 전선의 최 전방 초소였던 OP(Operational Post) 역시 그의 이름을 따 Restrepo OP 라 불리게 된다. 이 영화는 2010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장 상을 수상했으며 리뷰 사이트 Rotten Tomatoes에서 98%의 압도적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살기 좋은 도시 최고 순위에 오르내리곤 하는 토론토 시내에서는 가장 중심 도로인 Yonge 길 까지 막아 놓고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름하여 Youth Day 축제. 젊은이들을 위한 작은 축제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을 발산시키는 Rock Group 멤버들의 헤드뱅잉은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의 목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를 확인하게 할 정도로 과격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지구 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전하며 높은 행복지수를 구가하는 나라 중 하나인 캐나다의 가장 큰 도시에서 젊음을 만끽하며 거리를 돌아다니는 싱싱한 젊음은 보는 이들 역시 활기차고 들뜨게 만들고 있었다.

같은 시각, 토론토에서 지구의 반대편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 산악 지대의 산꼭대기 운영 초소에도 앳된 얼굴의 젊은이들이 있었다. 아마도 보름달이었을 달빛을 받으며 열상 적외선 망원경을 통해 혹시나 기어올라올 적들의 동태를 살피는 핏발 선 젊은 눈들이 있었다. 황량하고도 험준하기로 유명한 아프간의 산악과 계곡을 종횡무진 누빌 수 있는 폭격기와 전투 헬기, 최상의 병참 지원, 최첨단의 방어, 공격 그리고 통신용 공용, 개인 무기 체계하에서 운영되는 미군의 전초기지다.

하지만 어제도 동료는 전사했고 오늘의 전투 브리핑 시간에는 인접 소대원들 수명이 전사했다는 소식이다. 아마도 뉴욕 출신일지도 모르는 불침번 병사의 가슴엔 몇 년 전 이맘때 친구들과 정신없이 즐기곤 하던 락 공연의 기억이 눈에 선하다.

징집이 아닌 자원자들에 의한 모병제를 통해 군을 유지하는 미국인만큼 사병이든 장교든 모두가 프로페셔널로서 전투에 임하는데 무엇보다 난 이들의 전투 일상을 통해 보이는 직업군인으로서의 투철함과 냉철함에 놀란다. 이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에도 수차례 씩 초소 사수를 위한 전투를 벌인다. 산으로 둘러싸여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들지 모르는 상황이다. 초소 사수를 위한 예방적 전술 작전인 주변 정찰 임무를 떠나면서 전우가 바로 코앞에서 총탄에 쓰러져도 이들은 냉철함을 유지한다.

그림을 전공했을 것 같은 앳된 얼굴의 사병은 얼마 전 전사한 전우를 기리며 진지 벽에 벽화를 그린다. 그는 탈레반의 성지이기도 한 이 험준한 산맥의 한 고지에서 사방으로 뻗은 능선들을 보며 스케치를 한다. 기타를 좀 칠 줄 알았던 한 병사는 전사한 또 다른 전우가 남긴 스패니쉬 기타 연주법 책을 통해 기타를 배우며 동료들에게 기타와 노래를 들려준다. 너무나 착하게 생긴 앳된 병사들이지만 군인으로서 적과 필사적으로 전투를 벌인다. 전쟁이나 전투의 당위성에 대한 믿음, 이데올로기적 명분은 없다. 자신들의 고향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지구 반대편의 험준한 산골짝 이곳에선 나라의 울타리를 지킨다는 애국심 조차 remote 전쟁터의 특성상 갖기 힘들다. 그저 직업으로써 또 사랑하는 동료들과의 끈끈한 유대 속에서 서로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단지 엘리뜨 장교인 소대장은 부단 없는 리더십을 발휘하며 왜 싸워야 하는지, 왜 여길 지켜야 하는지,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투와 정찰을 실시해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병사들을 다독이며, 위로하며 또 긴장을 유지시킨다.

아마도 그들의 敵 인 탈레반의 많은 戰士들 역시 그 땅에서 그저 오래오래 자신들의 방식으로 살아온 그런 순박하면서도 젊음이 용솟음치는 청년들 일진 , 외세에 휘둘리고, 종교에 휘둘리고, 잘못된 지도자들에 휘둘려 이제 이들과 대적하며 총부리를 마주하고 있을지 모른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은 최첨단 무기 체계 대신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종교적 도그마로 무장되어 있을 것이고 수십 개의 군사용 정찰 위성이 제시하는 정확한 GPS 정보 대신, 그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뛰놀았던 바위 하나 작은 동굴 하나, 나무 하나하나, 구석구석 너무나도 많은 추억들이 서려있는 고향의 지형이 있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의 개인을 본다. 역사를 이루는 가장 비극적인 시공간인 전쟁터의 병사로서의 개인, 하지만 그 소중하고 젊은 한 인간, 한 인간들이 어찌할 수 없는 힘으로 도도하게 밀려오는 역사의 최전방 파도가 부서져 이루는 작은 포말로 화하며 보이지도 않은 채 아무도 기억 못 할 역사의 앙금으로 흔적 없이 사그라져 간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내 아들이, 내 아버지가, 내 전우가 적의 총탄에 쓰러져 선혈이 낭자하게 죽어갈 때, 너무나 평화로운 도시 한복판 어느 휘황한 쇼룸의 고급 패널 TV의 뉴스 속 자막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흘러 갈지 모른다. 서부 전선 이상 없음.

** 이 영화의 감독이자 제작자였던 영국의 분쟁 지역 사진작가 Tim Hetherington 은 리비아 전쟁의 와중에서 2011년 4월 20일 리비아 제삼의 도시 마수라타에서 가다피 정부군의 RPG 공격으로 살해되었다. 인간은 어떻게든 세상을 떠나게 마련이지만 위대한 인간들은 탁월한 업적을 통해 통렬한 시대사적 정신, 엄청나면서도 바람직한 경영상의 이익, 혹은 심오한 예술혼을 남김으로써 영원히 사는 삶을 택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ch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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