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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Toronto Apr 30. 2016

공간의 향기

living in a lost paradise@u of toronto

절제된 권위를 자랑하는 빅토리아 식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이 토론토 대학 건물은 내부 역시 영국의 왕궁 못지 않는 정성이 곳곳에 스며있는데 널찍하고 아름다운 한 공간에 학교 북스토어가 자리 잡고 있다.

서점에서 이리 저리 책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 이곳을 보며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곳은 원래 토론토 시립 도서관이었다. 튼튼하고 자연스럽고, 낭만적이기도 한 두꺼운 나무 책장들이 가득한 가운데로 수 많은 책들이 꽂혀 있다. 문학 작품들의 멋진 제목들, 그리고 개성 가득한 표지 장정, 제목을 스치며 읽어가며 장정의 디자인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내겐 큰 즐거움이다. 책 뒤편의 짧은 서평들을 읽는 재미도 너무 좋다.

디지털 인더스트리, 더 나아가 networked industry 의 바램은 이 아름다운 종이 책들을 모조리 전자 서적으로 바꾸는 거다. 더 나아가 지난 수천년간 편찬되어온 모든 출판물들을 디지타이즈 하고 데이타 베이스 화 하는 것이다. 아직 그들이 예상하는 만큼 폭발적 paperless 세상이 도래하지는 않았고, 거의 모든 기업의 사무, 결제 전산화 및 네트워크화 작업이 오래전 끝난 지금에도 종이의 쓰임새는 전 보다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고 하고,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을 찾지 못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종이 매체의 일간 신문들이 구독량이 늘어나고 있는 듯 하다고 반기고 있는 부문도 있긴 하지만 대세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다. IT 인더스트리에 종사했던 난 누구보다 이른 시기에 전자 문서들과 접했었고 전자 문서 관련 시스템들을 설계, 개발 하곤 했었다. 비용에 관계없이 전투력과 관계된 軍 관련 매뉴얼등이 아마도 가장 먼저 전자화 된 경우가 되겠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핵 잠수함이나 전투기, 탱크 및 함정등 하이테크 장비들을 운영하기 위한 운영, 작동, 비상 조치 및 수리 매뉴얼등은 종이 매체로 이루어졌을 경우 그 매뉴얼의 볼륨과 무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 들이었다. 그러한 종이 매체의 매뉴얼들의 보관 관리를 위해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고 전투력을 위한 공간이 매뉴얼 창고로 지정되어야 했던 것인데 이러한 부문에서의 디지털 매뉴얼화 작업은 필수 불가결 한 것이었다.

반면 우리 일반인들에게 있어서 살아가며 접하는 책들이란 소설이나 수필 혹은 시 등의 따뜻하고 소박한 또 기분좋게 나른한 문학 작품들이 대부분인 마당에 차가운 iPad나 디지털 북 전용 전자기기를 앞에 놓고 전자 화면을 하나 하나 넘겨간다는 사실은 다분히 비낭만적일 뿐아니라 좀 기괴한 느낌까지 드는 것이다. 하지만 보다 비용 효과적 상품에 소비자의 선택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면, 디지털 북 형태의 출판 시장이 전적으로 형성되는 것 역시 시간 문제일 수 밖에 없다. 그럼 우리의 이 아름다운 서점의 모습은 이제 박물관의 '그 때 그 시절' 코너 쯤에서나 찾을 수 있게 되거나 매우 고가의 부띠끄 형태나 옥션 형태로 남아 호사가들의 전유물로 남게 될 지 모른다. 풍부한 인문적 사고를 요구하지 않는 사회, 인문적 자세를 오히려 터부시 하는 교조적 종교 집단들, 갈수록 피폐해지는 인간들의 공동체 안에선 단말마적 디지털 버튼 音 만이 점점 가득해진다. 친근함 넘치는 풍부한 볼륨감의 장서들, 한장 한장 넘길때 마다 느껴지는 펄프의 부드러운 재질과 향기, 한자 한자 정성스레 식자된 정겨운 폰트 셑, 인류의 위대한 유산 '글', 그리고 그 속에 담겨진 위대한 생각들, 따뜻한 마음들, 정다운 스토리들.

인류와 함께 오랜 동안 함께 동고동락 해온 소위 아날로그 시대의 매체들과 감성들은 이제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고 그 끝 자락에서 서서 바라보는 마음은 쓸쓸하기만 하다. 이제 그 글조차 140자 미만의 단문으로 가지 치기 당하고 허접한 짧은 글들이 순식간에 수천, 수만, 수억의 타자에게로 전송된다. 거대하고 음모 가득한, 그리고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조차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이 디지털 네트워크 시장에서는 가볍고 즉시적인 單文들 만이 순식간에 동시 다발적으로 사고 팔릴 뿐이다.

흰 편지지에 한자 한자 정성스레 펜으로 눌러 쓰다 구겨 버리고, 다시 쓰다 구겨 버리며 밤을 홀딱 새다시피 온갖 정성으로 쓴 편지를 아침에 읽어 보고는 다시 구겨 버리고.. 그렇게 겨우 완성된 종이 편지 속에는 편지 속의 글과 함께 보내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곤 했다. 정성이 담긴 종이 편지와 침발라 붙이는 우표, 그 과정에 스며들어 갔던 인간간의 따스한 상호작용, 그러한 낭만적 프로세스는 폭발적인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과 고도의 통신 인프라 발달로 인해 불과 몇년 사이에 모두 email 로 변해버린 현실을 우린 빠르게 거쳐 왔고, 각종 전문 자료와 매뉴얼등이 html 및 pdf 등의 각종 표준 전자 매체 형식으로 이미 디지탈화 되었으며 이제까지 디지털의 亂 속에서도 얼마남지 않은 아날로그 영역을 보존해 가며 겨우 생존하고 있던 문학 관련 서적 출판 업계와 offline 북스토어들이 빠르게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모든 것이 버츄얼 공간화 되어가고 비용 효율화 되어가는 마당에 책방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모든 책들이 e북 화되면 책값이 대폭 저렴해지는 만큼 사람들의 독서량은 늘어날까? 물리적 자원의 소모없이 1초에도 수십만, 수백만 판으로 copy 될 수 있는 디지털 서적으로 인해 생태계의 어머니인 우리의 푸른 나무들은 더 푸르고 우거지게 자라날 수 있을까? 서점을 왕복해야할 비용과 시간이 사라지는 만큼 사람들은 그 만큼의 휴식 시간이나 노동 시간을 더 확보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에코가 그려낸 중세시대 스릴러 '장미의 이름' 에서 처럼 더 이상 독이 발라진 양피지 장서를 만지작 거릴 염려가 없다고 해서 우리는 더 안전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의 세대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있을 뿐이다. 이데올로기의 상실, 종교의 상실, 문화의 상실, 국가의 상실, 낭만의 상실, 인간 존엄성의 상실.. 그리고 이제 인간으로서의 생물학적 정체성의 상실에 이르기까지 상실에 대한 내성이 이렇게 진이 박혀 오고 있는데 그깟 물리적 공간의 상실 쯤이야.


it's really sad, isn't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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