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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Mar 12. 2017

혼술은 즐거워

@latinada.toronto

바에 들어서자마자 카운터 앞으로 주저없이 뚜벅 뚜벅 걸어가서는 줄지어 놓여진 높은 의자 스툴 중 하나에 걸터 앉는다. 바텐더를 올려다 보지도 않고 위스키 스트레이트 더블을 주문하며 뭔가 공허한것 같으면서도 일을 낼것 같은 묘한 표정을 유지한다. 내내 술잔만 만지작 거리며 뭔가 골똘하게 생각에 빠지는 듯 하다가 고개를 잔뜩 젖혀 마지막 모금을 바로 털어 넣고는 벌떡 일어나 술값을 후하게 치르곤 바를 떠난다. 이같은 모습은 나같은 혼술자들의 로망이다. 히히.. 서부 시대의 총잘쏘는 주인공, 아님 검정 계열 수트와 타이가 잘 어울리는 펀드 매니저, 혹은 글로벌 기업 사업부들의 생사를 좌지우지하는 비지니스 컨설턴트등등, 무심한척, 겸손한척 하지만 사실은 자신 만만함으로 잔뜩 무장한채 이렇게 바에 들어와 앉아 치열했던 하루의 긴장과 압박을 한잔의 술과 함께 시끌벅적한 바의 소음속으로 녹여버리곤 했던거다. 아님 한잔 후 바로 악당을 처치 하거나, 에라 모르겠다~ 매수 버튼을 눌러 버리거나, 사업부 C 를 spin-off 시켜 버리라 그러지 뭐, 하며 final presentation에 한줄 적어 넣거나..

하지만 이렇게 내숭어린 잘난체로 시작했지만 바의 출입이 잦게 되면서 바텐더를 알게 되고, 그 바텐더가 바의 쥔장이란걸 알게 되고, 또 어느날 갑자기 그가 뮤지션이라는걸 알게 되고.. 그러는 동안 그와 친구가 되어 버리면, 그 말없고 무표정 했던 손님은 수다맨이 되고 바의 분위기 메이커가 되기도 한다. 단 그 솔리타리 맨 역시 쥔장 바텐더의 맘에 들경우..

발레리는 오늘 내 친구 알프레도의 완숙한 기타와 알렉스의 현란한 바이올린과 함께 까를로스 조빔의 전설적 보사 노바 곡들을 부르고 있었다. 내가 들어섰을때 그녀가 부르던 곡은 the girl from ipanema.. 조빔은 오래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에서 그의 아름다운 대표곡 중 하나인 Chega de Saudade(no more blues)로 페스티벌의 무드를 한층 격상시켰는데, 당시 푸짐한 몸집의 그가 피아노를 치며 부르는 그 노래는 우울한 달콤함의 극치였다. 그의 목소리와 다섯명의 여자 코러스 멤버들의 화음이 함께 했던 그 세션을 보며 듣는 것은 황홀감 그 자체였다. 구름위를 나는 듯한 기분이랄까. 코러스의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목소리들의 조합과 조빔의 피아노가 서로 쫒고 쫒기는 듯한 구성은 마치 바하의 토카타와 푸가를 듣는 듯 하기도..

어쨌든 쿠바 출신인 그녀가 칠레 출신 기타리스트와 크로아티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브라질 작곡가의 곡을 영어로 부르고 있었는데 한국 출신인 난 이들 음악 친구들의 연주 모습을 맥주를 들이키며 사진에 담고 있었다. 또 그 곁에는 나처럼 주로 혼자 와서 맥주를 홀짝이는 멕시코 출신 중년도 있었다. 그 다국적의 깨알같은 캐나다스러움이라니..

쿠바 출신 답지 않게 발레리는 도회풍의 외모를 지녔지만 그녀가 부르는 이 시크한 보사 노바 재즈는 쿠바의 걸쭉하거나 애수어린 cuban bolero나  sol 등의 리듬과 음악 정서와는 거리가 너무 멀어 그녀와 잘 어울리지는 않았다.

알프레도가 운영하는 라이브 뮤직 펍 라티나다 (latinada) 엔 시간만 나면 가서 죽치고 앉아 알프레도가 직접 만들어 주는 칠레 요리와 함께 이 좋은 친구들의 연주를 들으며 거의 자정까지 수다를 떨곤 했다. 지금 보니 위 오른쪽 사진에서 훤하게 이마가 나오는 사람이 난것 같다. 알프레도가 내 카메라로 찍듯..

혼술로 시작했지만 이렇게 다함께 마시며 정과 흥을 나눌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i miss you amig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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