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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Mar 08. 2017

캐나다스러움.. 어젯밤엔 눈이 왔어요

Life @ the Prarie

캐나다 전역을 뒤덮을 규모로 북극에서 몰아치는 어마무시한 눈폭풍 블리져드(blizzard)가 브리티쉬 컬럼비아 (BC)주와 알버타주를 거쳐 이곳 사스카츄완 주로 불어 내렸고 드디어 어제 낮부터 내가 사는 타운을 강타했다. 기상채널은 온통 붉은 스크린으로 기상특보 및 주의보(weather alert)를 발령시키며 영향권에 들어가는 도시들을 급하게 나열하고 있었고 밤새도록 몰아치는 눈폭풍은 오늘도 역시 내내 지속된다. 겨울엔 한두차례 이러한 눈폭풍이 휩쓸곤 하는데 그 규모나 혹독함이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힘들다.

새벽 다섯시 경 중장비의 소음에 잠을 깼다.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을 제치고 내려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타운의 제설장비가 벌써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제설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 내리는 눈은 엄청나게 쌓여간다.

아침이 밝아오면서까지 계속되는 작업에도 눈은 산더미 처럼 쌓여간다. 마을의 많은 비지니스가 문을 닫았다. 난 호텔의 liquor store 를 오픈 하기 위해 입구와 도로 사이에 한두사람 정도만 드나들 길을 만들었지만 두어시간만 지나면 눈은 또 가득 입구를 막아버릴 것이다. 겨울이 주는 마지막 선물치고는 너무 푸짐하다.

나같이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폭설이 반갑지 않지만 이곳의 겨울 스포츠인 스노우모빌을 즐기는 이들에겐 눈은 대단한 선물이다. 이곳에서 보통 Ski-Doo(스키두: 스노우 모빌 제조사 브랜드)라 부르는데 그 막강한 성능으로 눈위를 날아 다니곤 한다.

이곳엔 스키두 동호회들이 많아 스노우 모빌 랠리가 자주 개최되기도 하고 어떤 팀들은 수개월에 걸쳐 수천 킬로미터의 대륙을 횡단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유서깊은 캐나다의 스노우 모빌 트래일이 내 호텔 뒷 주차장을 거쳐 이어져 간다. 주차장의 왼쪽으로 가면 밴쿠버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향하면 토론토가 나온다. 난 캐나다 횡단 트래일의 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곳에서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간혹 내 호텔 레스토랑으로 오는 손님들 중 몇개월 혹은 거의 일년여에 걸쳐 수천 킬로의 대륙 횡단 트레일을 하는 멋진 모험가들이 있는데 작년 여름에는 밴쿠버에서 걸어서 온 젊은이 한쌍이 있었고 은퇴 기념으로 자전거 횡단을 하던  중년 사내도 있었다.

올 겨울은 이렇다할 눈이내리지 않아 급기야는 매년 열리던 스키대회까지 취소되었는데 겨울의 끝자락에 그나마 폭설이 내려 스노우 슈잉이나 컨츄리 스키, 그리고 스키두잉을 즐기는 이들은 지금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고 있을것이다.

몇년전 토론토에서 아들이 내려왔을때 이곳엔 많은 눈이 왔었고 우린 이곳 친구 릭과 함께 셋이서 스노우 슈잉을 즐겼다.

상당한 운동량과 청량감, 그리고 곳곳에 위치한 hut 에서의 모닥불과 함께하는 위스키 한잔, 너무 좋았었다.

아들은 내가 가지고 있던 나무와 가죽으로 엮어 만든 캐나다의 전통적인 설상화를 신었었는데 자꾸 벗겨지는 바람에 고생을 했었다.

좌간 오늘 우리 읍내는 온통 하얗게 보기 좋게 눈폭탄을 맞았다.

한국에서의 눈은 낭만의 대상이었었다. 젊어서 이기도 했고, 눈송이가 자체가 탐스럽고 아름답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캐나다에선 정 반대다. 눈을 반기는 사람은 좀 모자란 사람으로 놀림을 받게되고 눈은 쌀가루처럼 흩어져 날린다. 최고 기온 영하 20도, 최저 영하 40도의 날씨에 이런 폭풍이 함께하면 영하 50도의 체감기온을 기록하는 극한적 추위의 이곳에선 눈송이 자체도 오그라들어 볼품이 없다. 첫눈이 내리는 날 우리 어디 어디서 만나요 라는 멘트는 캐나다에선 좀 곤란하다. 눈이 시작되면 집에서 그저 맥주나 홀짝거리며 일기예보와 함께 눈이 그치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let it snow?? no way!!

대도시 토론토에서의 블리져드 역시 대단히 매서웠다. 전후좌우 상하의 온방향으로 쏟아져 내리거나, 흩어져 날리거나, 솟구쳐 오르기도 하는 눈은 매우 비현실적이었을뿐 아니라 초현실적 이기까지 했다.

도시의 구조물과 함께하는 눈은 다분히 두터운 유화적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달리며 바라보는 snowflake dynamics는 대단하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진 찍기다. 속도를 내며 달리면서 담아내기엔 좀 위험할때도 있지만.

내가 거의 매일 출퇴근 하던 Don Valley Parkway (DVP) 너른 하이웨이에 눈이 날리면 더욱 멋있었다.

온타리오 박물관(ROM) 앞에 눈이 내리면 이렇게 멋진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동화 속 혹은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나무 같다. 늦은 밤 눈폭풍속에서만 살아나는.. ㅎ

내가 좋아했던 토론토의 하이웨이 가로등이다. 처음엔 너무 길어서 좀 황당하다시피 했는데 볼수록 설치미술적 포스와 단순한 조형미가 마음에 들었다. 멀리서 보면 불빛만 보여 비행접시가 상공에 떠있는듯 하기도.

딸아이의 모교인 토론토 대학 캠퍼스에 눈이 내리면 이리 고즈넉하다.


눈보라 가운데 너무나 아름다운 상아탑의 실루엣을 그윽하게 보여주었던 저 뒷 건물은 나중에 알고보니 토론토 대학의 Art & Science 단과대 건물이었다. 캐나다에 도착해 처음 경험해본 blizzard 속에서 담아본 이 사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겨울 눈 사진이 되었다.


Bye for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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