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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Mar 13. 2017

시트로엥 타고 3,000km

@ southern france

호텔이 가장 덜 바쁜 삼월 중순을 틈타 아내는 캐나다의 중원인 이곳에서 세 시간 넘게 날아가 동부 토론토에 사는 아들을 피어슨 공항에서 픽업, 유럽 나들이에 나섰다. 아내가 떠난 이번 주 독야청청 나 홀로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이곳엔 지난 25년간 볼 수 없었던 혹독한 눈폭풍이 몰아쳐 이틀간 타운이 마비되다시피 했고 수은주는 영하 38도까지 곤두박질 쳤다. 난 회심의 미소를 띠었다. 내가 이러려고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는 거지. 반팔 차림으로  프로방스와 바르셀로나를 어슬렁거릴 아내와 아들을 생각하니 홀로 있어도 휘파람이 나온다. 매일 카톡으로 보내오는 가족들의 여행 모습에 내가 여행하는 것보다 더 즐겁다.

모자가 선택한 루프트한자는 내가 가장 선호하는 항공사였다. 회사일로 바쁘게 돌아다닐 적엔 주로 유나이티드나 아메리칸 에어라인 쪽이었고 케세이 패시픽은 홍콩이나 동남아 출장에 이용했었다. 유럽 출장엔 주로 한국 항공사를 이용했으나 일정상 간혹 루프트한자를 탔는데 저먼 그레이(german grey)와 진노랑 조합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독일 특유의 정갈함과 절도감이 모든 서비스에 스며들어 있어 좋았다.

나 어릴 적엔 혼자면 좋았다. 대학시절 한국민에게 처음으로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행되면서 나가본 미국은 별천지였다. 내 젊었을 적 글로벌 회사에서의 생활은 지구가 좁다며 이곳저곳 하늘길로만 대륙을 넘나 들었었다. 비행기 엔진 소음이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로. 하지만 난 참 이기적인 아빠였다. 내 일이 먼저였고, 내 여행이 먼저였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족에 우선했었다. 하지만 다행히 세월은 내게 우호적으로 또 교훈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성숙해 가는 건 아닌 듯하다. 장년에 들어선 지금 가족들의 여행을 보며 난 마음으로 함께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것은 나 혼자 돌아다닐 때 보다 오히려 더 설레고 행복하게 느껴진다. 아들아이에게 오래전 내가 느꼈던 감흥과 배움이 함께 하길 바라며 틴틴의 모험처럼 인생의 모든 코너를 잘 돌아다니길 바랄 뿐이다.

한국에서 방송기자 생활을 오래 했었고 전쟁이나 폭력소요 중인 나라들의 특파원까지 하곤 했던 아내에게 이쁘고 친절하고 따스한 유럽을 돌아다니는 것은 일도 아니다. 더구나 캐나다에 살면서 대륙횡단이나 미국 여행을 나보다 자주 하고 있다 보니 유럽 정도 스케일의 대륙 여행은 그저 가뿐할 뿐이다.

난 캐나다와 미국 map이 들어있던 GPS를 프랑스와 남유럽 국가들의 지도들로 교체하고 미국식 영어 내레이션을 선택한 다음 아내에게 건넸고 드골 공항에서 꼬마 시트로엥을 빌린 아내는 GPS를 장착한 후 그 길로 잠깐의 파리 바람 쐬기를 마치고선 바로 알프스를 넘어 남불로 향했던 것이다.

두 손가락으로 에펠탑을 집어낸 아들에게 파리는 춥고 교통 지옥인 곳으로 치부되었다. 아들아 파리는 좋은 계절에 아빠랑 다시 가자.

녀석의 에펠탑 셀카 놀이. 캐나다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아들아이의 구성과 비례에 대한 감각은 아빠와 많이 다르다.

아내는 르망 호수를 보고 싶다는 아들을 태우고 제네바로 갔고 바로 알프스를 넘어 프로방스로 내려갔다.

아내가 시트로엥을 렌트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난 주로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 나오던 60년대 스타일의 시트로엥을 떠올렸다. 아직도 마니아 층에서 몰고 다니는 저 앙증스러운 모습의 꼬마 자동차는 집사람과 아들의 유럽 여행의 이미지를 그려 보는데 제격이었다. 물론 아내가 몰고 다니는 모델은 어느 브랜드나 비슷비슷하게 생긴 요즘 스타일의 campact car 이겠지만.

아내와 아들이 넘으며 보내온 알프스의 인증샷. 난 오래전 비엔나에서 독일의 베블링겐 이라는 도시로 날아올 때 하늘에서 본 알프스가 너무 인상적이었는데 훗날 반지의 제왕을 보며 그 비슷한 형태의 칼날 같은 설산을 보게 된다. 웅장하지만 다소 심심한 캐나다 록키와는 비교하기도 힘들다며 아내는 눈 덮인 알프스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했다.

영화 '장미의 이름' 에서의 수도원으로 향할 것 같은 음산한 곳에서 아내가 산책을 하고 있는데 우리 아들은 또 무슨 생각으로 이런 샷을 찍었는지. 어딘지 알 길이 없다. 오면 물어봐야쥐.

아무래도 프로방스 쪽 어느 마을 뒷골목 같다.

 아내와 아들은 관광객들이 많은 곳들을 피해 별로 듣도 보도 못하던 마을들에서 즐거워하고 있다. Nimes라는 곳엔 로마시대에 축조된 원형 경기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아내는 지금 카톡으로 내게 사진을 보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ㅎ

바르셀로나의 시푸드 레스토랑 La Paradeta에서 샹그리라와 생귤 애피타이저, 그리고 시푸드 빠에야와 랑고스타 메인디쉬는 옳은 선택인 듯.

Cassa Batllo. 바르셀로나는 가우디가 먹여 살린다 했던가.

앗, 빨간 시트로엥이었다!

바르셀로나를 돌아 프랑스를 한 바퀴 돈 모자는 다시 파리로 와서 베르사이유를 거닐며 거의 3000 km의 시트로엥 꼬마 자동차 대장정을 마감했다. 파리-다카르 죽음의 경주 수준이다. ㅋ


이제 아내는 여덟 시간 넘게 날아 대서양을 건너와 토론토에 아들을 떨궈준 다음, 토론토와 시차가 두 시간이나 발생하는 이곳으로 다시 세 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야 하고 Regina 공항에 내려 주차장에 장기 주차시켜 놓은 꽁꽁 언 차를 녹여 탄 다음, 네 시간 넘게 운전하여 우리의 보금자리인 호텔로 돌아와야 한다. 대단해..

아들아 네가 2.5 유로 주고 샀다는 셀카봉 담에 아빠 좀 빌려주라. 맘에 들어.


i miss you already, my prec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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