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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Mar 10. 2017

캐나다스러움.. 깨끗하고 푸른 물

@canoe lake & joe lake.algonquin

2011년 여름, 난 캐나다 스타일의 카누 트레일을 제데로 만끽한 적이 있었다. 이전에도 가족들과 카누를 타고 강을 타고 내려오는 다운스트림 카누잉이나 말레이지아 페낭에서의 오션 카약킹 등, 카누나  카약을 타는것은 내게 익숙한 스포츠였지만 이번 처럼 제대로 즐긴적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하룻만에 그렇게 다양한 느낌을 누릴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단 하루였지만, 나와 친구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호수 두곳을 손바닥이 벗겨져 가면서 카누를 저어 왕복하면서 두번의 swimming break 를 즐겼고,  작은 무인도의 정상에 올라 호수 주변의 아름다운 정경에 감탄했으며, 처음보는 동식물들에 신기해 했고, 뜨거운 태양, 아름답게 피어나는 뭉개구름, 더없이 시원한 산들 바람, 심지어 장엄하기 그지 없는 엄청난 소나기와도 함께할수 있었다. 브런치를 시작 했을때 몇편으로 나누어 글을 올린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그 글들을 모두 모아 정리하고 사진들은 대폭 줄여 한편으로 종합해 봤다. 캐나다적 삶을 생각 하시는 이들에게 나름의 힌트가 될까 해서.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캐나다 시민으로서의 내가 캐나다의 속살을 제대로 알아가는 특별한 과정을 거친 날이었기 때문이다. 깨끗하고, 상쾌하고, 온갖 푸르름이 함께 했던 길고도 긴 하루였고 천혜의 자연을 누릴 수 있음에 대한 감탄과 감사가 가득한 하루였다. 새벽 3시에 기상했던 날이 언제 쯤이었을까. 십분 간격으로 맞춰진 알람에 놀라 깨어 부시시한 채 샤워를 하고 거의 채비를 마쳐 갈 즈음 토마스로 부터의 모바일이 울렸다. 벌써 내 콘도 로비에 들어서고 있었던 것. 캄캄한 새벽 4시에 출발한 우리는 상쾌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내 달렸다.

이상 고온으로 섭씨 38도 까지 치솟았던 토론토는 이날 아침에도 28도를 유지하며 열대야가 기승을 떨치고 있었는데 북쪽으로 세 시간여를 달려 가며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에 의해 세계 최고의 휴양지로 선정된 무스코카 지방을 지나면서 온도는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해 안개 가득한 고원지대를 지날 때는 17도 까지 온도가 급강하 했다. 대낮에 달궈진 대지가 새벽의 서늘한 공기와 만나 신비한 아침 안개를 피워 올렸다. 아침 안개와 함께 스며 나오는 생명의 향기, 대지의 향기가 너무 좋았다. 두어시간 쯤 지났을 즈음 부드러운 아침이 열리기 시작했고 무스코카의 Highland 지역을 지날 때는 갑작스럽게 안개가 자욱한 지역을 지나게 되는데, 토마스의 대형 SUV Yukon의 외부 온도계는 19도, 18도, 17도로 계속해서 떨어지면서 급기야 토마스는 반바지만 걸치고 온 것이 후회가 되기 시작한거다. 초가을 기온 속을 얼마나 달렸을까 우리는 마침내 백년이 훨씬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아름답고도 거대한 알곤킨 주립공원으로 들어서게 된다. 8시 부터 문을 여는 공원 사무실에 7시 10분에 도착하여 아무도 없는 사무실 옆에 설치된 무인 요금 계산기에서 가벼운 입장료를 치르고 나서 우리는 카누 트레일이 시작되는 호수를 찾아 다시 떠났다.

알곤킨 지역은 백 수십여년 전 대단한 벌목 지대였다. 아름드리 소나무 수종의 벌목을 위해 벌목공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던 이곳 알곤킨(Algonquin) 주립공원은 벌목과 농작이 금지되고 야생동식물 보호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1893년에 주립공원으로 탄생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엄청나게 풍부한 수량과 초일급의 수질을 가지는 호수들이 많아, 호수와 호수를 탐사해 볼 수 있는 카누 트레일이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몇일 혹은 몇주 동안 캠핑을 해가며 즐기는 카누 트레일은 캐나다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는 가장 인기있는 종목이기도 하다. 자그마치 총연장 1,000 km가 훨씬 넘는 길이의 대장정 카누 트레일에도 도전해 볼 수 있는 곳이다. 호수의 크기가 클 경우 풍랑은 바다와도 같이 거칠어 카약이나 카약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조종 스킬을 갖춰야만 트레일에 나설수 있는 곳도 많다.

지도를 펼쳐 놓고 보기만 해도 여행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는 김영욱 토마스는 전 직장 휴렛팩커드 에서의 동료였다. 토마스는 한국 hp 근무 후, 싱가폴 hp로 transfer 해 근무했었고 아주 오래 전 캐나다 hp 로 다시 옮겨 지금 껏 근무하고 있다. hp에서는 전혀 다른 부서에 근무하는 바람에 많은 소통은 없었었는데 한국 hp(당시엔 삼성 hp) 시절에도  뭔가 말이 서로 통한다는 느낌이 있었었다. 이후 난 아시아-호주 지역의 hp 컨설팅 사업부들을 맡게 되고 토마스는 싱가폴로 hp로 가게 되는 연유로 연락이 완전히 끊겨지게 되었는데 내가 캐나다로 이민을 오고 나서 토론토에 살고 있던 토마스와 다시 만나게 된거다. 그런데 오늘 그 특별한 인연이 더욱 특별하게 이어지는 것은 우리 두 사람 모두 축복받은 캐나다의 자연 생태계 속에서 느끼는 행복감과 감사함의 정도가 남다르기 때문이었다.

무스코카 북쪽의 삼림지대로 접어들면서 익숙한 표지판들이 자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거대한 몸집의 무스와 사슴들을 주의 하라는 내용이다. 자연을 보호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이나 조심 하세요~ 하는 말이다. 이곳에서는 무스나 사슴의 로드킬을 흔하게 본다. 워낙 덩치가 큰 동물들이라 사고가 나면 동물이 죽거나 다침은 물론 차안에 탄 인간들 역시 큰 화를 입게된다. 아리조나 혹은 네바다 에서의 끝도 보이지 않는 아득한 하이웨이를 달릴 때면 도로 곳곳에 거대한 사슴들이 엎어져 있곤 했었다. 야간에는 눈에 파란 불을 켜고는 도로 갓길까지 바짝 다가와 서서는 다가오는 차량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곤 하던 녀석들이었다.

서늘한 아침 안개를 통해 전해지는 향긋한 청량감은 거대한 삼림에 뿜어져 나오는 생명의 기운이었다. 열어 젖힌 차창을 통해 얼굴에 부딪는 안개 알갱이 하나 하나에는 기분좋은 촉촉함과 서늘함이 가득했다.

경호차량으로 쓰이기도 하는 미국의 전형적인 거대 SUV 유콘, 토마스가 아끼는 애마다. 6,000 cc 에 달하는 부피의 엔진은 10년이 넘은 이 거구의 장갑차를 아직도 가볍고 부드럽게 움직이게 했다. 미국의 좋았던 시절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멋진 주인의 애정을 듬뿍 받고 있어서 인지 10년이 넘는 동안 33만 Km를 달렸어도 잔 고장도 없었다 한다. 생물은 말할 것도 없고, 무생물 조차도 애정 앞에서는 온순할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목적지인 Canoe Lake의 카누 센터 화분은 아무래도 노란 카누가 어울렸다. 바람도 거의 없는 청명한 날씨, 이른 아침의 안개가 걷히고 햇살이 비치자 기온은 언제 그랬냐는 듯 30도를 웃돌 기세 였다. 멋지게 정렬된 카누들은 열지어 유영하는 돌고래 떼를 연상 시켰다. 토마스와 난 이곳의 비경과 카누 트레일의 요소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이번에는 Guided Tour 를 하기로 했는데, 독일 다름슈타트에서 관광을 온 독일인 부부와 아들, 대학생 가이드인 조지와 소냐, 이렇게 일곱명이 세척의 카누를 구성하며 트레일이 시작되었다. 카누 호수, Canoe Lake는 울창한 삼림으로 둘러쌓인 너무나 아름다운 호수였다. 오늘 따라 날씨가 어찌나 좋은지 트레일을 시작하던 아침에는 구름 한점 없었고 가벼운 산들바람까지 우리의 트레일을 환영해주고 있었다. 호수가 얼마나 깨끗한지 민물에서 나는 비릿한 녹조류의 냄새는 전혀 없었다. 깊이에 따라 푸른색의 짙고 옅음의 차이가 있었고 산들 바람에 따라 이는 波浪은 정겹고 다정스러웠다.

좌우의 롤링이 심한 카누의 특성상 노를 저으며 뒤를 돌아다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친구의 멋진 모습을 담기 위해 허리를 180도로 돌려 즐거워 하는 토마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기도 하면서 우린 신나게 출발했다. 온타리오의 구엘프 대학 화학과 학생인 조지가 가이드 하는 카누는 씩씩하게 우리를 앞서 나가고 우린 주변의 풍광에 넋을 잃어 가면서도 얼굴과 두 팔에 느껴지는 부드럽고 시원한 산들바람을 맞으며 망망 호수의 수면 위를 힘차게 저어 나갔다. 우리는 다분히 갈 之 자 횡보의 카누 주행을 구사하게 되는데 그것은 나와 토마스의 노 젓는 박자나 리듬이 서로 맞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사실은 다른 두 팀의 루트 보다 우린 좀 더 긴 여정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간혹, 아주 간혹 박자가 맞아 우리의 카누가 쾌속 질주 할 경우 우린 저절로 탄성을 지르곤 했다. 그래~ 이거야 이거!! 이제야 마구 달리누만~! 하지만 그것도 잠시 또 갈지자 현상이 나타나곤 했다. 사실은 내가 앞에 앉아 사진을 찍는 다고, 몸을 이리 저리 비틀고, 180도 돌고, 90도로 꺽고, 기습적으로 127도 로 돌고.. 하는 바람에 뒷 자리에서 열심히 노를 저어야 하는 토마스 입장에서는 패들링 리듬을 맞출수 없는 감당 불가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부터 끝까지 즐겁고 유쾌하게 노젓기를 함께 한 토마스에게 깊은 감사와 신뢰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끝까지 갈지 자 주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귀환 여정에서 가장 빨리 카누 도크에 당도하는 꽤거를 이루기도 했다. ㅋ

카누 트레일 내내 평화로움, 축복, 상쾌함, 즐거움, 자연, 운동, 그리고 감사함 등과 같은 긍정적 의미의 단어들이 저절로 떠올랐다. 심지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경이로움이 있었으니 이 거대한 호수에 어여쁜 연꽃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이미지는 그 비주얼적 요소로 인해 촉발되는 매우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이나 기억, 혹은 사상등을 동반하게 되는데, 고요한 호수 위를 카누를 저어 가며 맞이하게 된 많은 visual delight 들 중에 그윽한 禪적 분위기로 나를 사로 잡았던 이곳은 신화적 인물들이나 켄타로스 같은 반수 반인이 저벅 거리며 등장할 것 같기도 했고 달마 대사가 그 여유로운 몸집으로 가부좌를 틀고 선 큰 눈을 부라리고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마치 설치예술 작품 처럼 호수 주변에 자리 하고 있는 古死木 밑둥 들이었다. 아틀란티스의 가로수 이기라도 했던 것일까.. 사방으로 뻗어간 거대한 뿌리를 호수 속에 깊이 박은 채 밑둥만 남은 거목은 아직도 제 자리인 양 당당하게 서있다. 점점히 남아 있는 고사목들은 이곳이 오래 전 부터 대단한 삼림 지역이었음을 말해 준다. 독야청청 그 키큰 생명력의 기운이 하늘로 너무 뻗쳐서일까.. 어느덧 피뢰침으로 화해버린 엽기적 운명 속에서 거목은 벼락을 맞아 순식간에 생명의 수액은 다 증발되고 숱 검댕이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신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다 뒤를 돌아다 보는 바람에 돌이 되어 버린 사람들이 생각났다. 물속 깊숙한 곳 잔뿌리 어디 쯤에 남아 있던 생명은 다시금 새싹을 피울수 있을까. 푸르렀던 날의 추억은 물속으로 가라 앉아 완전히 잊혀지기엔 너무나 화려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잿빛 검은 잔해만 남아 당시를 강변하고자 하는 것을 보자니 나무의 과거를 같이 기억하며 감상에 잠기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기 보다는, 수면 위에서의 과거의 삶은 이제 다 잊고 편안히 가라앉아 영원한 휴식을 취하는 게 어떻겠소 하는 말을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봐요, 벼락 맞은 고목나무님.. 이제는 추억 할만큼 하지 않았나요. 당신 뒤 아름다운 숲을 형성하며 병풍 처럼 둘러진 푸르고 활기찬 젊은 나무들이 하루가 다르게 하늘로 솟아 오르고 있으니 세상 옛일 이제 그만 다 잊으시고 당신의 태어난 곳, 어머니 대지로 그만 돌아가시기를..

이곳이 거대한 사슴 무스(moose) 들이 노니는 곳이었다. 무스들은 호숫가 깊은 곳까지 들어가 몸과 머리를 물속에 완전히 잠그고선 풀을 뜯어먹곤 한다. 너무 더워서 였는지, 아님 무슨 모임이라도 있었던 것인지 우리 팀이 당도했을 때는 무스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고요하고 그윽한 공간에는 아름다운 수초와 야생 水蓮이 가득했는데, 통상 보아오던 거대한 크기의 연잎과 연꽃이 아닌 작고 귀여운 야생 연꽃 밭이었다.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시도록 하얀 잎새를 활짝 열고 있는 연꽃들은 넓고 넓은 호숫가 주변까지 수없이 피어나 있었다. 조심스레 카누를 저어 다아가 잠시 멈춰 선 다음 고마운 마음으로 그 모습을 담아본다. 하얀 꽃잎들엔 티 한점 없었고, 햇살에 반짝이며 매끈한 모습을 하고 떠있는 수생 식물들의 잎새 모습은 마치 유화를 보는 듯 했다.

이 수려하고 청정한 야생 식물원 위를 떠나니는 기분은 정말 황홀했다. 뒤를 돌아보며 열심히 노를 젓고 있는 토마스에게 소리 쳤다. 무스가 안 보여도 좋아~~ 대신 로터스 밭을 찾았잖아! 하하하.. 그래도 무스가 보고 싶은 우리 토마스, 그 소만한 짐승에 대한 미련을 버리진 못했다. 마치 목화 처럼 작은 주먹 만한 새하얀 연꽃들이 피어있는 이곳이 너무 평화스럽고 어여뻐 카누를 저어 떠나기 싫었다. 벗어나기 아쉬운 마음에, 토마스와 내가 모는 카누는 또 뒤뚱 뒤뚱 갈지자 모드로 들어갔는데, 내가 노를 천천히 일부러 저어 리듬을 깨버렸기 때문이다. ㅎ

1920 년대 캐나다의 전설적 풍경 화가들인 그룹 오브 세븐(Group of Seven)은 알곤킨 주립 공원의 이러한 아름다움에 반해 이곳에 들어와 살며 평생토록 작품 활동을 했다. 이곳에 가을이 오면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이 쉽지 않다. 이토록 아름다운 정경을 이들 생태계를 다치게 않게 하면서 감상할 수 있는 카누 여행에 새삼 감사를 하게 된다. 알곤킨(Algonquin)은 이 부근에 살았던 인디언 부족의 이름으로 '자작나무 껍질로 카누를 만드는 사람' 이라는 뜻이다.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이곳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의 카누 트레일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진행된다.

 - 카누잉(canoeing), 그저 계속해서 노를 저어 진군, 진군하는 카누 젓기,

 - 호수와 호수 사이를 이동할 때 각자 자신들의 카누를 망태처럼 뒤집어 쓴 다음 이동하는 포르타쥬(Portage),

 - 그리고 노곤한 몸의 피로를 풀며 정다운 모닥불과 함께 트레일의 하루를 마감하는 캠핑이다.

우리가 상륙했던 이 무인도엔 귀하다는 대형 상황버섯이 자작 나무 줄기 곳곳에서 자라고 있었는데 한국군 포병 장교로 전방 생활을 했던 토마스는 산에서 자라는 식용 식물들에 대한 조예가 깊었고 온통 소나무 숲이라 가을에는 반드시 송이 밭이 될거라 토마스는 단언했다. 이번 가을에는 꼭 다시 이 섬에 상륙하여 미식 캥핑을 하기로 서로가 다짐했다.

우리가 카누를 저어온 호수의 물길을 높은 곳에서 보고 있자니 알곤킨의 아름다움에 새삼 벅차오름을 느낀다. 바다와도 같이 거대한 호수들을 비롯해 수십만개의 담수호가 있는 캐나다는 그 청정한 수자원으로 다른 나라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기도 하다.

이제까지 내가 경험한 가장 깨끗한 물, Joe Lake의 물결을 다시 바라본다. 내가 지나온 흔적은 아무 곳에도 없고 깨끗함과 푸르름만 가득히 출렁인다. 다른 세상도 이렇게 맑고 푸르면 얼마나 좋을까..

호프만의 뱃노래가 떠올랐다.

무인도의 정상에서 바라본 캠프 사이트는 다섯동의 텐트, 네척의 카누, 캠프 사이트 중심엔 fire place가 놓여진 카누 트레일의 캠프 사이트로서는 완벽한 레이아웃 이다. 분명 오랜 세월 인생을 나누고 있는 친구들이거나 아들들과 함께하는 아빠들, 혹은 아빠와 함께하는 아들 딸들 이거나, 도전적이고도 성취감 가득한 프로젝트를 끝낸 팀 동료들이거나.. 이들은 완벽한 레이아웃의 캠프 사이트를 가져볼 권리가 있는 것이다. 한낮의 내 든든한 동지였던 카누들을 앞뒷켠으로 두르고선 간이 arm chair 에 앉아 하루 동안의 트레일을 회상해 보는 시간이다.

부지런한 동료는 해가 지기도 전 벌써 캠프 파이어를 위한 잔 가지들과 fire log 들을 준비하고 성급한 동료가 이미 불을 붙여 솔잎 잔가지 타는 향이 퍼지기 시작하면 잎 담배를 넣지 않은 맨 파이프를 뻐끔 거리며 석양이 내려 앉는 하늘을 바라 보겠지. 얼마나 좋겠는가.. it couldn't be better..

삼나무, 전나무, 단풍나무 그리고 자작나무 가득한 이런 호숫가에서는 온갖 부드럽고 건강한 자연의 향기가 산들 바람에 실려 날려 온다. 밤이 오면 은하수를 바라보며 별똥 별을 세고 있을 즈음 어디선가 늑대의 울음 소리도 들릴것이다. 아~우~~~ 우우~~

오늘 우리를 안내하는 선임 가이드인 조지는 자연에 대한 동경과 감사 그리고 프라이드가 가득한 청년이었는데, 이 섬은 White Pine(백송) 으로 이루어 졌다고 일러 줬고 하이킹을 마치고 내려 오는 길에 야생 블루베리를 따서 내게 먹으라 권했다. 야생이라 작은 콩알 만한 블루베리였지만 잘 익어서 새콤 달콤하고 향긋한 신기한 맛이 났다.




다시 진군, 또 진군이다. Swimming Break는 온 몸을 다시 활기차게 했고, 우리는 이 아름다운 호수를 가르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벌목 시절의 구조물들은 호수 생태계의 일부분인양 아직도 흔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호수와 호수 사이의 구간을 이어서 계속 진행되는 카누 트레일의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 주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호수 사이의 육로를 통해 여행에 필요한 모든 짐을 날라야 하는 과정이다. 장기 여행일 경우 배낭과 텐트를 비롯해 각종 먹을 것등 짐의 종류와 무게가 꽤 될텐데, 그러한 무겁고 가벼운 짐, 그리고 카누 자체를 나르는 과정을 Portage, 이곳에서는 불어식 발음으로 포르타쥬라 칭한다. 하루 일정이었던 이번 여정에서는 짐이라곤 백팩에 들어간 두대의 카메라와 물통이 고작이었지만, 장기 트레일일 경우 많은 짐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다음 호수의 수상 출발 지점까지 효과적으로 신속히 나르느냐 하는 것은 전체적 카누 트레일 일정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효과적인 포르타쥬 테크닉에 대한 웹 사이트 까지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알곤킨 공원내의 2,400 개의 호수 중 카누 트레일을 즐길 만한 호수는 300~ 400개 정도인데 포르타쥬의 거리, 즉 호수와 다음 호수까지의 육로 길이는 짧게는 100 미터에서 길게는 1~2 킬로 미터까지가 된다. 가장 긴 포르타쥬는 6.4 킬로미터나 되는데 가학증세가 있는 마조키스트 정도나 시도해 볼 것이다 :p 이 광활한 알곤킨 공원내에서는 수백개의 호수들과 그 호수들 사이를 이어주는 포르타쥬가 모두 연결되어 자그마치 1,600 km 나 되는 길고도 긴 아름다운 카누 트레일이 형성되는 것이다.

난 대학생 가이드인 조지의 인스트럭션에 따라 카누를 울러 메는 작업에 들어가는데, 카누 몸통의 아래, 윗부분을 잡고 무릎을 반쯤 굽힌 상태에서 카누 바닥을 무릎 위에 올려 놓은 다음, 카누를 뒤집음과 동시에 일어나면서 카누 중심의 고정대를 어깨에 걸쳐 카누를 뒤집어 쓰면 되는 것이다. 꽤 무게가 나가는 2인승 카누 였지만 이렇게 뒤집어 어깨어 걸치니 크게 무리는 없었다.

그런데.. 전방에서 갑자기 강한 검은 기운이 몰아쳐 오고 있어 울러 맨 카누를 급하게 육지에 동댕이 친 뒤 바라보니 그는 바로 포르타쥬 종결자!! 진짜 사나이를 보는 듯, 적당히 살이 오른 통통한 근육질의 종결자가 보무도 당당 저쪽편 호수에서부터 보란듯이 성큼 성큼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두둥!! 그것도 무겁디 무거운 삼나무 카누를 가뿐히 울러맨 이 종결자는 카누 섬머 캠프의 조교였다. 보통는 나처럼 엉거주춤 온몸으로 낑낑 힘든 내색을 하며 카누를 날라야 하건만 우리 포커 페이스 조교는 뒷모습에도 포스가 주렁 주렁 열렸다.. 끙..

우린 낑낑 거리며 카누를 머리에 이고선 Joe Lake 에서 이곳 Canoe Lake 까지 295m를 왔다. 자 이제부턴 새로운 호수에서의 스위밍 브레이크 시간! 삼십도를 오르 내리는 호수에서 반나절의 패들링 후 가지는 즐거운 물놀이. 독일서 온 가족과 우리들 뿐 아니라 가이드인 조지와 이름이 기억 나지 않는 여대생 역시 신이 났다. 잠시의 수영을 즐긴 후 난 어기적 거리며 호수 주변을 걸어다니는데 아주 고운 흙 모래 바닥에서 뭔가 자꾸 발 바닥에 밟혀 줏어 올려 보니 민물 홍합이었이다. 호수 물이 워낙 청정하오 수질 indicator 이기도 한 이 민물 홍합이 사방에서 발에 밟히고 있었던 것.

다름슈타트에서 온 수줍음 많고 귀여운 독일 소년 역시 홍합을 잔뜩 손에 쥐고 신기해 하고 있었다.

잠시의 수영 휴식을 마친 우린 다시 카누 트레일을 시작하고.. 우리를 앞서 가던 일행들이 잠시 카누를 멈추고 있어 보니 어미 룬(loon)과 두마리의 새끼가 놀고 있었다. 캐나다의 1불 짜리 동전에 새겨진 새가 룬이고 그래서 1달러를 루니(looney)라 부르는데 그만큼 룬은 캐나다 기러기와 함께 캐나다를 대표하는 조류 중 하나다.

알곤킨(알곤퀸) 주립공원은 1893년에 지정되어 캐나다의 첫 번째 주립공원으로 탄생했을 뿐 아니라, 7,700 평방 킬로미터의 거대한 지역으로 형성된 캐나다에서 가장 넓은 주립공원이다. 알곤퀸 공원 내에는 2,400 개의 호수가 있으며 300여 마리의 늑대, 2,000 마리의 흑곰, 2,500 여 마리의 무스, 그리고 30,000 마리의 비버가 서식하고 있으며 수많은 종류의 새들과 물고기들과 함께 야생 동식물의 이상적 생태 공간을 이루고 있다.

잠시의 샌드위치 점심 시간에 숲속에서 후드득 소리가 나 돌아보니 자그마하고 날랜 야생 칠면조들 우르르 숲속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한편, Canoe Lake 에서 Joe Lake 로의 육상 이동을 위한 Portage 구간엔 시다(cedar) 나무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카누들이 예닐곱 척이나 정박해 있었고 배낭을 짊어진 많은 아이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캐나다의 대표적 여름 캠프 지역인 이곳 무스코카 지방의 알곤킨 주립공원에서 섬머 캠프에 참여한 아이들의 카누 트레일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카누와 장비를 체크하고 아이들을 통솔하는 캠프 조교들의 바쁜 움직임이 있었고,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부드러운 정서를 키우고 사회성을 기르며, 극기 정신을 높히며, 팀웍의 가치를 배우면서 몸과 마음을 무럭 무럭 키워갈 아이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던 거다. 이곳 대학생들의 섬머 쟙 중 캠프의 조교는 가장 선호되는 summer job 중 하나다. 캠프 조교 job 은 통상 이력서에도 들어갈 정도로 사회성이나 리더십에 대한 인정을 받는데, 최고의 자연을 만끽하며 미래의 주역들인 동생 뻘의 아이들을 통솔하며 돈도 벌수 있는 이 일을 위한 경쟁률은 만만치 않다.

제 몸보다 훨씬 부피가 크고 무거운 배낭과 나무 상자로 된 음식물 상자들을 씩씩하게 날라오는 아이들이 체크 포인트에서 점검을 마치고서 다시 떠날 채비를 한다. 미니 바비 인형같은 이 이쁜 꼬마 아가씨들은 저 무거운 배낭을 메고서도 깔깔거리며 뛰어 들어 짐을 풀며 또 재잘거리기 시작한다.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사내아이의 어깨에 걸린 배낭. 아이가 뒤로 뒤집어 지지 않고 서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저큰 큰 배낭을 메고도 즐겁게 뛰어오는 아이, 바로 Canadian Kids 들이다. 웃음기 머금은 표정이지만 캠프의 프로그램을 대하는 진지함은 크다. 그런데 이 멋진 여름 캠프에 참여하는 아이들 중 동양 아이들은 한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캐나다 인구의 거의 10%을 차지하는 중국계, 꽤 많은 수의 한국계, 인도계는 아무도 없었다. 원인은 이 뜨거운 여름에 죄다 학교에서 선행 수업을 위한 섬머 스쿨을 참여하거나 학원, 과외등으로 부모들에 의해 휘둘림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인데..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 없었다. 이곳의 틴 에이져들을 위한 한 TV 연속극에는 인도의 한 이민자 가정이 묘사되는데, 인도인 엄마는 특유의 인도식 영어 발음으로 고등학생 아들과 딸에게 항상 공부만을 강조한다. 아이들은 엄마의 눈을 피해, 자신들이 즐기는 것을 몰래 하고.. 나를 포함한 이민자 가정의 전형적 모습이라 할 수 있는데, 1.5세 들의 주류 사회 편입이 공부라는 프로세스를 통해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업을 갖게되면서 통상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정도가 너무 심한 경우 제대로 된 좋은 인간으로 성장하기 보다는 그저 사회에서 요구되는 기능인의 한 사람으로서 좁은 시야의 인생을 살 수 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르타쥬 구간에서의 점검을 마친 아이들은 쉴새도 없이 다음 목적지를 향해 카누를 저어 떠나간다.


두번째 호수였던 Canoe Lake 에서의 노젓기는 부담되는 상황이었다. 손 바닥엔 물집이 잡혀 벗겨지고 있었고 배도 곺아 오는데 아직 여정의 반도 끝나지 않았기에 우린 말없이 패들링에만 집중했다.

그때 우리의 눈을 확뜨게 하는 일이 벌어졌으니, 꽤 높은 절벽 위에서 다이빙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던 것! 더군다나 다이빙 순서를 기다리는듯 비키니 차림의 금발 처자 둘이서 절벽에 걸터 앉아 있었다.

우린 고개를 돌리다 못해 아예 카누를 90도로 돌려 세운 다음 관전 모드로 들어갔던 것이다. 이제나 저제나 이 처녀들의 다이빙 순간을 기다렸건만 이들이 앉아 있던 곳보다 더욱 높은 곳에 위치한 다이빙 지점으로 올라 가서는 머뭇거리며 실행을 못하고 있었다. 기다리다 지친 우리는 구경을 포기하고 우리의 길을 다시 가는데 얼마 안가서 뒤에서 첨벙! 하는 소리가 들렸다. 쳇.. 조금만 일찍 뛰어 내리지..

힘이 많이 빠진 상태에서 다시 돌아 오는 길은 맞바람까지 불면서 풍랑이 일기 시작해 험난했다.

드디어  클럽 하우스로 돌아온 우리는 카누를 올리고 나서  데크에 벌렁 누워 버렸다.

기분이 너무 좋아 야호~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따뜻하게 데워진 나무 데크에 눕지마자 난 잠이 쏟아 지기도 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토마스도 데크에 눕는데 그의 얼굴에도 행복함이 가득했다.

그것도 잠시, 느긋한 행복감에 취해 데크에 널브러져 있던 우리 두 사람의 얼굴 위로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일진 광풍이 몰아치며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으면서 곧이어 억수 같은 비가 쏟아져 내렸다.

비가 쏟아지기 직전의 검은 하늘에는 커다란 날개의 송골매가 상서로이 날고 있었는데 그 유유한 비행에 chopin의 waltz가 떠올랐다.

찬란한 태양과 산들 바람을 내내 선보여 주었던 우리의 Canoe Lake는 우리가 모든 일정을 마치고 떠나기 바로 직전 이러한 대 장관을 선사함으로써 우리 여행의 피날레를 장엄하게 장식해 주었다.

초록과 푸르름의 색으로 가득했던 우리의 여정이 묵화적 신비함으로 가득 차오는 순간이었다.



감사.. 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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