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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Mar 16. 2017

초기 공동체적 삶

@the prairie in the fall time

계절적 요인이 모든걸 지배하는 농경 사회에서는 하루의 날씨가 그날의 가장 빈번한 이야기 꺼리가 된다. 너무 춥다더나 덥다거나 바람이 심하다거나 습도가 너무 높다거나, 햇살이 너무 너무 좋다거나..그 다음 이야기 거리를 굳이 찾자면 낚시나 사냥등에 대한 것이고, 간혹 낯선 외지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는 정도다. 주로 날씨 이야기로 하루가 가고 그러다 계절이 오면 씨를 뿌리고 또 다른 계절이 오면 수확을 거둔다. 다들 굉장한 부농들이라 나와 알고 지냈던 한 농부는 봄의 씨앗값만 오백만불이 쉽게 넘었었다. 트랙터나 컴바인등의 장비를 취급하는 딜러쉽을 가진 한 주민은 수억불의 자산가 이기도 하다. 마을의 어떤 집안은 비행기와 활주로 까지 가지고 있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쌓아가고 있는데 이들 역시 겉으로 보기엔 그저 허름한 농부들의 모습이고 그저 날씨 이야기를 하며 매일 가던 식당에서 매일 보던 시람들과 매일 먹던 음식을 먹으며 살아간다. 도시에서만 살던 난 이해가 안되지만 우리 동네 주민들은 이곳이 가장 살기 좋고 편안하다고 여기며 이제까지의 방식대로 살아간다. 하지만 이들 자식 세대로 내려가면 상황은 전혀 다른데, 대부분 도시에서 대학을 나오고 직장을 구한 자식들에게 고향은 그저 명절 쯤에나 찾는 마음의 고향일뿐이다. 마을이 형성된지 고작 백수십년 밖에 안되긴 하지만 이곳에 운명처럼 뿌리를 내렸던 개척민들은 이제 그 마지막 세대들만이 명맥을 유지할뿐 나같은 이민자들이 비지니스를 위해 마을로 유입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대를 이어 살아오는 맥은 끊어져가고 있다. 주변의 수려한 자연은 관광객들과 별장을 지어 놓고 즐기는 외지인들을 계속 불러 모으지만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들은 줄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아, 여름이구나 라는 탄성이 채 끝나기도 전 호텔 한켠 지붕에 고인 물에 살얼음이 눈에 띄었다. 성급하게 찾아온 가을은 떠날 채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채 허둥 지둥 사라지려는 건가. 세월은 얼마나 빠르게 흘러가는지. 이곳 가을의 전령사는 남쪽으로 날아 내려가는 기러기들의 바리톤 음성들이다. 기러기들의 목소리는 사방에서 모여들어 남쪽으로 수렴되며 멀어져 가는 것이다.

풍요로운 농지에 흩어진 낱알들은 남쪽으로 내려가는 철새들에겐 더없이 소중한 먹이감이다.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들의 모습에서 애잔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일사분란한 비행모습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건강함과 강인함을 본다.

성급하게 떠나기는 하지만 가을이 남기고 가는 모습은 언제나 이쁘다.

사스카츄완의 가을은 투명한 파란 하늘색과 자작나무의 노랑 단풍잎, 단 두가지 색이다. 온갖 색의 향연으로 화려함과 다양함을 자랑하는 온타리오의 단풍색에 비하면 단조롭고 소박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제 현란하고 화려함이 보여주는 성대한 열정과 외향적 에너지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언제나 우뚝 서있고, 변하지 않는 단순하고도 소박해서 투박하기까지 한 아름다움 역시 얼마나 소중한것인지를 잘 안다. 아내와 오랫만에 필드에서 즐거움을 가졌다. 앞뒤로 전혀 플레이어들이 없는 가운데 가을의 호젓함을 한껏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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