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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Apr 15. 2017

카우보이 그리고 그들의 폰더로사

@the ranch

벌써 오년전 일이다. 당시 호텔을 인수하며 마을 사람들과의 안면을 트기 시작하던 때였는데 말로만 듣던 카우보이들과 거대한 목장에서 많은 소를 키우며 살아가는 목장주들도 그들 중 하나였다. 아주 오래된 미드 보난자 Bonanza 생각이 많이 났다. 이곳은 이들의 폰더로사 ponderosa 였고 터프하지만 정직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이들은 현대판 보난자의 주인공들이었다. 어느날 오전 내내, 그리고 오후 잠시 이곳에서 카우보이들과 함께 했다. 카우보이가 아닌 난 그저 이들이 일하는 모습과 주변을 둘러보며 사진이나 찍었지만 이들의 작업은 밤 일곱시가 넘어 끝났다. 이 작업은 수백마리의 소를 파는(selling) 작업 중 마지막 작업으로 쇠로 만든 로고를 불에 달궈 소의 엉덩이를 지져 새로운 주인의 표식을 하는 카우 브랜딩(cow branding)과 vaccination, 그리고 tagging 과정이다. 이 과정이 끝나면 소들은 새로운 주인을 찾아 거대한 트레일러에 실려 떠나게 되는 것이다. 케빈은 리더격 카우보이였는데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형 농사 대행 회사의 지역 매니저를 맡고 있었고, 부근 도시에 위치한 직업학교 같은 곳에서 강의도 하는 유능한 젊은이었다. 원래 농장을 하는 매너나이트 mennonite 의 후손 인지라 청교도적 고지식함과 성실함, 그리고 열심히 일함이 몸에 밴 청년이었는데 현대판 카우보이의 전형이었다. 넓은 어깨와 튼튼하고 두꺼운 다리, 스마트함과 부지런함은 그의 미래를 보장하고도 남는다.

그는 말대신 강력한 ATV 를 트럭에 실고 왔다. 요즘의 카우보이들은 ATV 를 타고선 소를 몬다.

ATV를 탄 멋지고 터프한 쥬디 앤더슨이 이곳 목장의 소유주다. 오늘 카우보이들을 지휘하며 브랜딩 작업과 백신 작업을 하는거다. 그녀는 라이언 킹을 닮았다.

케빈의  ATV 타는 자세는 기마 자세와 똑 같았다.

새로 구입해 광이 번쩍거리기 조차 했던 내 지프는 이곳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한 터프 한다는 지프가 정말 터프한 이곳에선 무늬만 그런 것이었다.

all terrain vehicle 을 종횡무진 몰아가며 소떼를 모는 카우보이를 보는 것은 신기하면서 엽기적이도 하고, 아름답기도 했다. 나도 저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에서는 목장을 하며 사는게 남자들의 로망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라는 노래를 들으며 민둥산으로 둘러쌓인 어린 시절을 보냈던 우린 푸른 초원에 스위스식 집을 지어 놓고 아침마다 신선한 소젖을 짜서 마시는 환상에 젖곤 했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너른 북미의 대초원 지역에 살고 있는 지금, 목장을 운영하기에 더이상 좋을 수 없는 이곳에 살고 있는 지금, 목장에 가졌던 환상이 크게 와닿지 않음은 내가 너무 세상 물정에 물들었기 때문일까.

주디의 액션은 드라마틱했다. 마치 뮤지컬을 보는듯.

군지휘관 같이 참모회의를 하며 지시를 내리고 소들이 우글거리는 최전방에서 진두 지휘를 하는 주디 앤더슨, 그녀가 바로 걸 크러쉬다.

케빈의 상황보고가 긴박하게 이어지고.

소들을 안전하게 우리에 몰아 넣으며 일차 작전 수행 완료!

백수십년전 부터 우크라이나계, 독일계, 영국계, 프랑스계, 그리고 러시아계 개척민들이 모여 밀농사와 목축을 하며 이곳 타운을 형성해 왔는데, 이들은 부모가 살아왔던 데로, 또 그 조부모들이 그렇게 살았듯 열심히 일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삶을 살아간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우직하게 즉 지독하게 보수적으로 살아간다. 변함이 없음이 이들의 바램이다. 변함없이 계절이 돌아오면 씨를 뿌리고, 뜨거운 태양이 대지를 한참 비추고 나면 추수를 하고, 지독한 겨울이 오면 계속 쉰다. 이곳의 농부나 목장주들은 열심히 일하고, 건강하게 누리는 것 그것 말고는 다른 게 별로 없다. 돈은 그저 열심히 일하니 자연스레 쌓여가는거다. 그러다 시간이 나면 여름엔 낚시를 하고 보트도 타고 겨울엔 사냥도 하면서, 또 아주 추운 겨울에는 텍사스나 아리조나의 따뜻한 곳으로 내려가 몇달을 지내다 돌아오기도 한다. 이제 다들 나이가 예순을 넘고, 칠순을 넘어가는 세대들은 특별히 돈을 쓸데도 없다. 젊은 세대들은 이제 더 이상 부모의 가치를 물려받지 않지만 도시에 나가 제 나름데로의 분야에서 열심히 뛰며 제 몫들을 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케빈과 같은 젊은이들이 남아 있다는 건 신기하기까지 하다.

케빈은 자신의 목장도 있고 말이 끄는 마차도 만들어 옛 개척민 시절의 삶을 재현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뿌리적 삶의 형태를 이어가려는 노력을 하는 젊은이다. 그에게 오늘의 일은 매우 익숙한듯 모든 작업을 말없이 프로페셔널하게 진행해 나갔다.

마치 서부시대의 목장처럼 rustic 한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는 이 사진은 이번 목장에서의 카우보이 사진들 중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인데, 케빈이 아닌 누구라도 이런 색조와 분위기엔 잘 어울렸을듯하다.

푸른 눈의 금발 주디 앤더슨 아줌마는 표정 만으로도 포스가 넘치는 보스다. 얼마후 난 이곳에서 찍은 사진들을 호텔 레스토랑에 전시를 했었는데 내가 그녀를 너무 터프한 카우걸로 표현한것을 그녀는 몹시 부담스러워 했었다. 심지어 난 그녀에게 그녀가 얼마나 터프하게 보이는지를 마구 칭송했는데, 사실 그녀는 수줍고 아름다운 처녀의 심정으로 그녀의 사진을 대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내 생각과는 정반대로.. 그날 청바지와 스웨터 차림의 아리따운 성숙함으로 남편과 함께 내 레스토랑을 찾은 주디의 모습을 보고 난 내가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그후 지금까지 그녀를 봐오고 있지만 이때와 같은 강력한 포스를 다시 느낀적은 두번다시 없었다..

소들이 한마리씩 통과할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곳을 지나며 소는 백신을 맞으며, 엉덩이에 새로운 표식이 생기고 귀엔 태그가 달린다.

서로 인사를 나눈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이 친구는 '우수어린 표정의 잘생김'으로 내게 남았다. 이날 이후 마을에서 다시 본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혹시 헐리웃에서 배우로 데뷔한거나 아닌지.

이 친구의 뒷태도 멋졌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자세히 보면 다 멋지고 그 사람이 살아왔던 세월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다 이해가 되고 금새 어깨동무를 하게 된다. 우리의 인생이 이 모든 착한 사람들을 진득히 바라봐줄만큼 길지가 않아 항상 문제지만.

벌써 손자까지 있는 웨인의 등짝은 건초 더미를 닮아 푸근하다.

소귀에 태그를 다는 작업이 진행되고.

엉덩이 위에 뜨거운 맛을 본 녀석들이 놀라고.

이것이 앵그리 카우의 레이져 눈빛!! ㅎ


Bye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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