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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Aug 18. 2017

물반 뮤지션 반

@ latinada.toronto

난 이제껏 살아 오면서 '우연'히 일어났던 사소한 사건들로 인해 마음에 드는 장소, 좋은 사람들, 그리고 좋은 음악과 만나곤 했었다. 그러다 보니 사실 그 우연이라는 것에 조금씩 중독되어 가는 면도 없지 않은 것이다. 우연히 또 무슨 신나는 일이 벌어질까 하며.

토론토에는 Bloor Street라 불리는 도심을 통과해 동서로 뻗어있는 아주 오래된 큰 도로가 있는데 토론토는 이 블루어 거리와 남북으로 뻗은 Yonge (영) 길을 중심으로 개발 발전되오고 있다. 몇 주전 이곳을 처음 오게 된 어느 날 오후, 내가 사는 댄포스 거리의 단골 아이리쉬 펍에서 이미 두세잔의 기네스 맥주로 배를 잔뜩 부풀리고 나서였다. 전시회나 컨서트 하는 곳 어딜 가볼까 고민하다 시내로 나가자며 전차에 올라 탔는데, 토론토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깊은 잠에 빠지게 되고 눈을 떴을땐 이미 전차는 도심을 빠져나가고 있었잠을 좀 더 자두자계속 졸았고 급기야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종점에 다다르게 되었다. 아무래도 맥주는 화장실을 제대로 확보해 논 상태에서야 마음껏 들이킬 수 있는 법. 처음 와보는 종점에 내려 화장실이 급한데 주변의 작은 Mall이나 소규모의 Wal*Mart등에는 아무리 찾아도 공중 화장실이 없었다. 어찌 이런 박한 동네가 있을까 의아해 가며 초인적 의지로 꾹 참으며 주변을 걸어다니다가 레스토랑과 바가 모여있는 이곳 근처까지 왔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웨스턴 스타일의 바가 아닌 당시 거의 아무도 없었던 이곳에 들어섰던 거다. 화장실 갔다가 맥주나 한병만 마시고 나가지 뭐.

그때 카운터 바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던, 피노키오를 만든 제퍼뜨 할아버지 비슷한 분위기의 알프레도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마침 그날은 웨이트리스가 못나온 날이라 알프레도는 매우 바쁘게 손님들을 위해 들락 거리고 있었는데 난 눈치도 없이 마가리따가 맛있다며 네 잔이나 시켜 마셨다.

와~~  여기 마르가리따 (혹은 마가리따) 진짜 맛있게 만든다. 정말 제법이네. 난 감탄을 해대며 화장실 갔다가 바로 가겠다던 생각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선 Patio에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 호킹 교수의 생각을 더듬어 가며 너무나 좋은 햇살을 즐기게 된거다. 그러면서도 그 마르가리타 맛 말고는 별것이 없는 것 같았던 '라티나다' 바 에 대한 특별한 느낌은 전혀 없었는데, 급한 용무도 다 처리 했겠다, 오리지널 라티노가 제대로 만들어준 기막히게 맛있는 신선한 라임즙 가득한 마가리타도 두어잔 째 마셨겠다, 이젠 이곳이 슬슬 마음에 들려고 해서 카메라를 들고 바의 이곳 저곳을 담기 시작했고 알프레도와 제대로 인사를 나누게 된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정취를 물씬 풍기는 악기들과 뮤지션들의 사진들이 소박한 이곳에 대해 금새 친근함까지 느끼게 했다.

그러다 한떼의 쿠바 젊은이들이 들이닥쳤는데 그들은 이번 토론토 국제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는쿠바에서 온 룸바 연주 그룹이었다. 아직 두세주 남은 축제 기간전에 워크샵과 연습을 위해 온것 이었는데 알프레도는 내 등을 떠밀며 2층 음악 연습실로 가 보라 했다. 가서 이들의 음악도 듣고 사진도 찍으라고.. 덕분에 난 이들의 Afro-Cuban 룸바를 즐기며 재즈 페스티벌 전에 이 젊은이들의 열기를 미리 담아볼 수 있었다.

룸바 그룹을 취재(?)하고선 다시 아래 층 내 자리로 돌아오니 바 앞에서 묘령의 여인이 샌들의 끈을 조여매고 있었는데..

여인은 가창력을 자랑하는 쿠바 출신 재즈 보컬리스트 였음이 이 번 두번째 방문에서 밝혀졌다. 이것이 이곳 라티나다에 어떻게 우연히, 아니 desperately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스토리이다. ㅎ

그리고 오늘, 오후 5시에 문을 여는 이곳을 또 너무 일찍 와서 한 삼십분여를 기다려야 했다. 바로 5 미터 모퉁이를 돌면 토론토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넓은 그리고 온갖 종류의 수목이 가득한 유서깊은 High Park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심지어 작은 동물원까지 있다는 데.. 당근 내가 제일 먼저온, 아니 오픈도 하기전에 당도해 계면쩍게 줄창 기다린 충성스런 첫 고객이었다. 

먼저 마가리타 를 한잔 마시고 나서 피나 꼴라다 를 마시기로 했다. 무자게 더울 때는 너무나 차가워서 머리가 띵~ 해지는 마가리타 나 삐나 꼴라다가 역시 최고다. 딸아이가 내게 꼭 읽으라고 내 백팩에 까지 꾸겨 넣어 준 파올로 꼬엘료의 'Veronika Decides to Die'. 별 이유도 없이 너무 똑같은 일상이 싫어 수면제 복용으로 자살하다 깨어난 젊은 인텔리 여성이야기 다. 큰 아이는 이 책과 코엘료의 다른 책 두권을 읽고선, 현실과 비현실(자신만의 판타지) 을 오가는 작품 속 주인공들의 입장에서, 작가의 관점에서, 또 이 작품을 대하는 독자들의 시각에서의 세 카테고리에서 이야기 될 수 있는 '현실 vs 판타지'에 대한 분석적 글로 에세이 를 썼었고 학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었다. 녀석이 줄을 쳐 가면서 읽었던 부분을 읽을 때는 기분이 묘해지기도 했다. 이제 녀석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닌 것이다. 어린 아이가 아닌 정도가 아니라 이제 코엘료 같은 철학자 급의 작가와의 내면적 소통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이글을 쓰던 당시 딸아이는 한국식으로 고등학교 2학년 이었다)

뜨거운 열기의 오후 부터 햇살이 이제는 기울어져 가는 초 저녁까지 그렇게 patio 파라솔 아래 홀로 앉아 알프레도가 나와의 대화를 위해 다가올때까지 코엘료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 

알프레도가 먹고 있는 저 Grilled Calamari 는 내가 방금 시켜 먹었던 것인데 영어가 좀 서툴었던 멕시칸 웨이트리스 아가씨가 와인을 한잔 더 가져달라는 내 말을 잘못 알아듣고 똑같은 깔라마리 한접시를 다시 가져온 것을 알프레도가 할수 없이 해치워야 했다. ㅎ

알프레도는 칠레 사람이었다. 나이는 55살로 나 보다 5섯 살이나 많았고 벌써 손주들 까지.. (이글을 브런치로 옮기고 있는 지금은 이때로 부터 칠년이 지난 2017년 이니 내 나이는 당시의 알프레도 보다도 많다. 오,세월이여..) 그는 기타를 치며 노래도 하는 음악가 이기도 했고, 캐나다에 온지는 벌써 30년이 넘었다. 자동차 딜러십을 가지고 일하다가 3년전 이 레스토랑을 구입해서 라틴 음악을 주로하는 뮤직 레스토랑의 사장이 된거다. 알고보니 그는 내가 좋아하는 탠포스 거리의 도라 키오 아이리쉬 펍에서도 많이 공연을 한 터였다. 그는 이제 곧 오늘의 연주자가 온다면서 그리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했는데 유쾌한 음성과 큰 몸짓으로 들어서는 이를 반기며 내게 소개하는데 그는 에바리스토(Evaristo)란 이름의 쿠반 커내디언 뮤지션이었다.

내 앞에 앉은 그는 앉자 마자 신이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2주전에 쿠바 정부에서 자신에게 쿠바 시민권을 부여한 사건에 대한 내용이었다. 주로 캐나다에서 활동해온 그가 작년 쿠바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1등으로 입상한 연유로 쿠바 정부에서는 그에 대한 대접이 하루아침에 달라 졌으며 바로 시민권을 받았다는 이야기 였다. 이해가 잘 안되지만, 해외로 이주한 쿠바인들에게는 쿠바정부에서 웬만해선 쿠바 시민권을 잘 안 주는 것 같았다. 하바나에서 태어난 그는 1997년 캐나다에 정착하전 이태리 밀라노에서도 수년간 연주 생활을 하기도 했다. 에바리스토가 이날 밤에 부른 노래는 내가 즐겨 듣고 있던 쿠바의 대표적 볼레로 가수였던 뽈로 몬테냐즈의 아름다운 곡이었다. 취기가 한참 오른 상태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익숙한 리듬이 흘러 문득 바라보니 에바리스토가 홀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Un montón de Estrellas (수많은 별들 A Heap of Stars). 얼마나 감미로우면서도 애절한 곡인지.

줄곳 합석을 해서 이야길 나눴던 멕시코인 마누엘 Manuel. 주로 이곳 라티나다에 출근 도장을 찍는 것 같은데, 아직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는 못한 것 같다. 생각이 많은 친구였는데, 주로 내 생각에 동조를 했으며 내 블로그의 사진들을 아주 좋아했다.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온다. 멋진 윌리엄 텔 모자를 쓰고 있는 이는 역시 칠레 출신의 뮤직 프로듀서인데 에바리스토 와도 익히 잘 아는 사이였다. 에바리스토는 자신의 새 앨범에 정성스럽게 사인을 해 건넨다. 옆 자리의 부인은 캐나다에서 꽤 잘나가는 작가다. 프로듀서의 부인으로 이곳을 자주 오는 모양이었다.

우린 서로 인사를 나누고선 수다에 들어갔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이 다 나지는 않지만, 좌간 계속 껄껄거리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새 앨범에 관한 에피소드로 이야기 꽃을 피우는 동안 뜨거웠던 태양은 어느덧 지구의 반대편을 깨우러 사라지고.. 알프레도가 안보인다 했더니 그는 안에서 조용히 그리고 너무나 진지하게 연주를 하고 있었다.

칠레의 아름다운 자연은 꼭 봐야 된다며 화산과 하늘, 그리고 칠레에서 바라보는 태평양 이야기를 들려줬던 알프레도. 그는 유쾌하면서도 매우 진지한 사나이였다. 첫 만남에서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었는데 역시 이번 두번째 만남에서 아예 뿌리를 뽑았다. ㅎ

내가 알프레도와 쿠바노 뮤직 프로듀서 둘이 연주를 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을때 우리 착한 멕시칸 아가씨는 주문을 처리하러 내 앞을 하늘 하늘~  지나곤 했다.

우측에 앉아 있는 이도 음악하는 사람인데, 알프레도의 연주를 열심히 들었다. 다음 번 만남에서는 제대로 인사를 나눴는데 크로아티아 에서 온 바이올리니스트 알렉스 였다. 좌간 이날 이 늦은 밤 이곳에 있었던 열명 정도의 사람들 중에 절반이 뮤지션들이었다. 물 반, 뮤지션 반.

 

I miss you gu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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