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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Oct 22. 2017

끼안띠의 재발견

@the hotel

한국에서부터 가끔 마시곤 했던 끼안띠(Chianti)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하지만 와인 코너에 들를 때면 매번 집어 들었었고, 또 그때 마다 이눔의 이태리 와인 맛을 이번엔 내가 좋아 할지도 모르지.. 하며 마셨었다. 키안티는 이태리의 유명 와인 산지 투스카니 지역에서 자란 여러 종류의 포도를 블랜딩하여 만든 포도주다.

결국 한국을 떠나던 사십 중반의 나이를 넘어설때까지 난 이 와인의 풍미가 와닿지 않았었다.

왜? 난 젊었으니까! 혈기 왕성했던 당시까지 난 이런 부드럽고, 다소 묽은듯한, 어렸을적 할아버지 댁 잔치상에 오르곤 하던 시골의 구수하면서도 담백한 향토 음식들 같은 끼안띠의 맛을 도저히 좋아 할수 없었다. 대신 일년 내내 햇살 가득해 특별히 vintage year 가 따로 없는 호주와 칠레산의 강렬한 까버네 쇼비뇽만 줄기차게 마셔 댔었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즉 내가 대학생이었던 시절, 미팅에서 만나 잠시 사귀게 되었던 한 여대생이 있었다. 그녀의 취미는 박물관에서 옛 선인들의 정취를 차분히 음미하며 박물관 곳곳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난 그녀가 당시 그 말을 했을때 일종의 충격을 받았었다. 그 앳된 얼굴의 여대생이 어떻게 수백년전 혹은 천년 유물로 가득찬 박물관 곳곳을 헤매며 그렇게 설레고 신나할수 있었는지! 그녀는 운동권 사학이 아닌 오리지널 아카데믹 열혈 사학과 학생이었던 것인데, 좌간 난 그러했던 충격이 지적 트라우마로 남아 그녀와 헤어진 후에도 박물관에만 들어서면 나 역시 신나고 설래는 마음에 진입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을 가지게 되었다. 공룡들로 가득찬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 들어서서야 겨우 그런 설레임을 가졌었으나 그건 '박물관이 살아 있다' 급의 B급 영화에서의 유아기적 감상에 지나지 않았으니..

세월은 그렇게 흐르고 흘러 난 이제 이 부드럽고 외할아버지 댁 같은 푸근한 느낌의 끼안띠가 좋아 졌다. 특히 루피노(Ruffino) 끼안띠가!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내가 나이가 들대로 들어 가는구나, 또 이제 내가 어느 나라 어느 박물관에 들어서더라도 깊은 설레임과 함께 할것이라는 것 역시 안다. 결국 난 나이가 주는 보상, 성숙함, 그리고 맛은 물론 사물, 관점등에 대한 선호도 혹은 태도와 관련된 순화 과정을 거친것이 아니었을까.

세상의 수많은 와인은 인간들로 하여금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와인을 찾아가는 여정을 동반하게 한다. 값비싼 와인이라고 해서 그 여정을 단축시킬수 있는것도 아닐 것이며 오래된 와인, 유명한 와인 이라고 해서 내가 원하던 바로 그 와인 일수도 없다. 또한 이 와인이라 확신했지만 우연히 마셔본 다음 와인에 취해 자신의 선호 와인이 하루 아침에 바껴 버릴수도 있다. 그리고 와인 고르기의 이 모든 과정엔 세월이 있고, 내 인생의 변해가는 성숙도가 존재한다. 그때 그때, 또 당시에 내가 거쳐 왔던 내 인생의 변곡점 마다에서 내가 찾았던 와인은 달랐을 테고, 그러한 와인 변덕의 변천사는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었을 게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부드러운 맛에 수렴하게 되는 나의 맛 변천사는 진인사 대천명의 last phase로 접어들고 있는게 분명하다.



Drink more wine gu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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