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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Dec 11. 2017

칠월의 서울

before my memory goes beyond oblivion

서울의 하늘 위를 날고 있었다. 내 추억의 끈들이 이끄는 데로 난 칠월의 서울 하늘을 날고 있었다.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은 수없이 정교한 추억의 끈에 의해 움직이는 마리오네트(marionette)였다.

거대 도시 수많은 곳에 스며 있는 추억 거리들을 떠 올리며 난 지나간 시간과 공간으로 여행을 떠났다.

남산 위에 설치된 wired flying man은 바로 나였던 거다.

인왕산에 올라 바라본 경복궁과 함께, 남산 아랫 자락의 정겨운 거리들과 건물들 곳곳엔 유구한 역사 속의 거대하고도 치열한 담론과 함께 나의 지극히 소소했던 개인사 역시 함께 한다.

세월은 또 이끼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는 것이 아닐까. 촉촉해지면서 그늘져 갈수록 세월을 양분으로 하는 추억의 이끼는 조밀한 푸르름이 더 살아난다. 내 수많은 기억들 역시 칠월의 이끼처럼 푸르게 다시 돋아 나고 있었다.

오늘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모든 또렷한 디테일 역시 세월의 부드러운 안갯속에 산등성이 넘어 하나하나 접혀 멀어져 갈 것이지만 난 이 도시와 내가 얽혀진 오래된 기억들을 되살려 본다.

찬란한 아침 햇살과 함께 반짝이는 저 모든 곳에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추억이 깃들어 있을까. 도시를 이루는 개인들의 수많은 추억들이 모여 역사를 이루고 문화로 익어간다.

뭐든 멀리서 보게 되면, 또 오랜 세월이 지나서 보면 아름답게 보이게 마련이지만 더군다나 온갖 설렘을 안고 추억 여행을 떠나는 나 같은 관광객의 시각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수많은 기억들 속에서 끄집어내어 지는 당시의 느낌, 친구들, 사랑했던 사람들, 그들과의 속삭임, 외침 소리들이 햇살과 같은 바삭거림과 또렷함으로 하나씩 내게 다가왔다. 그이들이 아직 건강하게 살아 있다면, 그리고 그곳이 아직 존재한다면 좋겠다. 다시 만나 보고 싶은 사람들, 다시 가보고 싶은 그곳들에 대한 그리움이 샘처럼 솟아올랐다. 남산에 올라 바라본 서울의 그 수많은 길들이 너무나 익숙해 오히려 기분이 이상했다. 이른 아침에 걸어 오른 남산에서 경복궁을 보고 마주 섰었다. 한참 오른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곳에서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다녔었고 조금 가운데 쪽으로 넘어오는 듯 한 곳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마쳤고, 가운데를 넘어 왼쪽으로 위치한 곳에서 대학과 대학원, 그리고 어린 시절의 정 반대편인 아주 왼편에서 신혼 생활을 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아이들이 생겨났다.

동작 대교를 건너면 나타나는 국립묘지가 보인다. 대학 시절 국립묘지는 내 산책 코스 중 하나였다. 아무도 없는 넓디넓은 묘역을 천천히 오르고 내리며 난 무슨 생각이 그리 많았던지.. 당시의 시대는 너무나 많은 화두를 던져 주긴 했었다.

하나하나 떠오르는 추억에 감사하다 보면 압도적으로 밀려오는 그 모든 사건들의 기억에 행복한 비명도 질러 본다.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세월 앞에 먼 추억들은 무채색으로 희미해져 가지만 아직도 알록달록 도처에 남아있는 그 생생한 기억들을 난 모두 사랑해.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살았던 서울의 강남 지역. 부친이 아직 살고 계시는 곳을 비롯한 아이들의 학교였던 곳들의 전경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운전을 할 때면 언제나 답답한 마음으로 FM을 켜곤 했던 강북 강변도로의 트래픽도 다시 보니 다정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사는 이곳은 주로 크루즈 모드로 드라이브를 하는 광활한 평원이기에 교통 정체가 가끔은 그립다.

서울 시내에서 내가 좋아했던 공간 중 한 곳인 인사동 통인가게. 도심 속 푸르름이 있어 좋았고, 오가는 사람들의 여유로움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고 운이 좋은 날은 삼층인가 사층에서 멋진 전시회도 열였었통인가게라는 이름조차 좋았다. 조선민화 까치와 호랑이로 정한 가게의 로고는 정말 좋았다. 다른 나라에서 방문하는 회사 동료들을 위한 선물은 매번 이곳에서 골랐었다. 귀면 형상의 넥타이 핀과 와이셔츠 커프스.

오랫동안 내 아지트였던 인사동 관훈 갤러리의 오래된 램프는 여전히 친구 같았다.

인사동의 터줏대감 강관장이 직접 담근 모과청으로 만든 모과차는 한여름의 갈증 해결사였다.

갤러리에 전시되고 있던 작품들은 언뜻 스치기만 했어도 내가 한국에 있음을 일깨웠다.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어 향기를 피어오르게 하는 일을 하는 이들을 난 얼마나 좋아했었던지.

거의 종교적 세례 수준의 느낌이었다. 아님 이조시대 탁족의 한가로움에 젖어있던 선비의 기분이랄까.

서울 방문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청계천에 발을 담그고 쉬는 것이었다. 무지개 색 수놈 피라미들 보는 건 정말 너무 즐거웠다. 청계천에 발을 담그는 게 뭐 대수일까. 지하철의 지하수를 끌어 모아 청계천 시작 지점에서 흐르게 한 지극히 인공적 환경일 뿐이다. 하지만 이곳 청계천 주변의 예전 모습을 잘 알고 있는 내게나, 푸른 물의 시내라는 이름과는 전혀 반대되는 모습으로 시멘트로 복개된 채 반백 년 세월 햇살 한번 받지 못했던 이곳을 시내 나들이 때마다 서성거려 본 사람이라면 참 반갑고 반가울 것이다. 이제 한국의 어느 계곡 어느 강가에서나 이보다 맑고 깨끗한 물을 찾을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의 어느 호수나 강을 가도 이보다 더 생명력 넘치는 물로 가득하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고도화되고 복합화된 코즈모폴리턴 서울 광화문 거리 한복판에서 시작하며 도시 생태계의 원류를 형성해 흐르는 청계천 물보다 신기하기도 하고 감동적이기까지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청계천! 너무나 반갑고 즐거웠다.

보호색이 너무 뛰어난 피라미들은 한참 물속을 응시하고 나서야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햇살에 번쩍이는 금잉어는 거리낄 것이 전혀 없는 듯했다.

오랫동안 수많은 인간들이 버려내던 엄청난 수채물만 가득 흘렀던 이곳에서 유속이 빠르고 맑은 시내에서만 서식할 수 있는 피라미들의 활기찬 몸놀림과 거대한 황금 잉어의 우아한 유영을 보고 있자니 난 마치 신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환호를 즐기며 노는 아이들을 보며 서울의 모든 곳들이 아이들의 놀이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한두 방울의 비가 스치는 가운데 바라본 청계천은 실로 의젓한 냇가였다.

관훈 미술관 장실장의 미니 바이크를 빌려 인사동 골목골목을 누볐다.

갤러리의 소품을 난 그냥 타버린 거다.

덩치의 남자의 탈것 치고는 좀 경망스럽게 보였을 것이 분명하지만 난 그저 너무 즐거울 뿐이었다.

공간은 또 다른 기운을 마구 뿜고 있었다. 다른 해석, 다른 생각, 다른 감각, different inspiration, 다른 길을 가는 이들을 보는 건 너무 좋았다.

도시는 가끔 내가 날 볼 수 있게 하는 곳이기도 했다. ㅋ

인사동 골목 깊숙이 자리한 경인 미술관 경내의 전통 찻집의 여전한 관록은 날 또 기쁘게 했다.

클레이로 빚어낸 우리 한국의 기러기들은 또 다른 생명체였다.

칠월의 서울 한복판에서 잠시의 휴식을 위해 즐기는 수정과와 유과, 이런 호사라니.

높은 권세가 없이도 정갈하고 기개 높았을 선비의 기와집 앞마당은 이러했을 것이다.

마카롱의 질감은 파스텔 색조의 완성이었다. 먹는 즐거움보다 보는 재미가 더 크다고나 할까. 

이른 아침 시내 산책 중에 들른 백화점 베이커리 에선 막 구워진 빵들과 어여쁜 컵 케이크들의 부드러운 향기로 도시의 하루를 열어가고 있었다.

곰보빵, 앙꼬 빵 등의 추억의 빵들은 언제나 이렇게 서울의 아침을 열고 있었겠지.

추억한다. 고로 존재한다.

솟아라 도시의 나무들이여.

콘크리트 연못 속에서 펼쳐져가는 연잎들의 향연은 도시의 한 복판에서도 자연과의 멋진 공존이 가능함을 보게 했다.

Yes, it was a WONDERFUL morning in Seoul. 가득한 아침 햇살 속 산들바람은 제 맘대로 책갈피를 넘기기도 했다.

인사동의 활기는 한국의 여느 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약간의 들뜸과 설렘, 그리고 호기심이다.

등나무 비늘로 덮여 가는 벽돌 건물은 기능성 위주로 솟아 있었던 서울의 건물들이 이제 개성을 찾아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서울은 소울이 있는 도시다.

점심시간 대에 쏟아져 나오고 들어가는 흰 와이셔츠 군단들을 보며 오랜만에 느껴보는 신기함이 있었다. 식사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홀, 열 가지가 넘는 그릇에 담겨 나오는 점심 식사, 30년 넘게 어김없이 내게도  다가왔던 점심 식사 시간 풍경이었지만 이제는 너무나 신기할 정도의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수많은 사람들의 와글거림, 온갖 냄새가 가득 날아다니는 다이내믹한 공간,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의 이러한 역동성은 이젠 기분 좋은 낯섦이었던 거다.

홍대 앞에는 이쁜 곳들이 너무 많았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문화와의 조우 역시 너무나 달콤한 것이었다.

그라피티를 대신하는 시크하고 상큼한 서울의 벽화들은 걸음을 자주 멈추게 했다.

공간을 자유롭게 표현해 내는 인간의 능력은 다른 인간들과의 소통의 일환이고 공감이라는 프로토콜을 통해 다양한 공동체들이 형성되어 나갈 것이다.

마침 내가 즐겨 마시는 스텔라를 시켰더니 스텔라 잔도 함께 나와 기분이 더 좋았다. 유럽 맥주들은 저마다 다른 모양의 자기 잔들이 있는데 홍대 앞 바들은 이런 세세한 서비스에도 신경을 쓰며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KTX 가 처음 생기면서 부산은 인근 도시처럼 여겨졌고 열차에 관한 기존의 낭만은 사라져 갔었지만 그 차갑고도 미끈한 열차의 차장 밖으로 초점을 맞출 사이도 없이 휙휙 지나던 풍경들 역시 내 인생 시감각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하나의 큰 사건 중 하나임에 분명했다. 오래전 일본에서의 신간센에 대한 기억과 함께.

아주 어렸을 적 난 저 왼편 오렌지색 건물들이 있던 곳에 위치했던 군인 아파트에 살았다 했다. 아주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자주 들려주신 말씀에 따르면 나와 동생은 매일매일 월남에 파병되신 부친이 돌아오시길 기다리며 세발자전거를 타며 놀았다고 했다.

여행은 낯선 곳에서 익숙하지 않은 것을 마주하는 것이지만 이번 여행은 내게 너무나 익숙했던 도처에서 빠져드는 전혀 새로운 감흥이었다. 그 공간들은 시간의 누룩과 함께 성숙해 왔을 부드러움 속에서 내게 기분 좋은 취기를 안겨주기도 했다.

도시 위에 내려앉은 세월의 실타래가 되살아나는 기억과 함께 한올씩 풀려 나갈 때 이 도시의 복잡도는 다정함으로 화한다.

여의도는 오랫동안 내 직장과 가정이 함께 하던 공간이었다.  한때 한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던 저 황금색 63 빌딩 안에서 벌어졌던 많은 추억들.

내 몸은 오늘날의 버스에 앉았지만 간혹 보이는 창밖의 풍경을 통해 50년 전 내 어린 시절 어머님과 함께한 덕수궁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달리는 버스의 창을 통해 바라다 보이는 역동적 서울의 장면들은 3D 맥스 무비였다.

덕수궁 대문의 모습은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소박하고도 따뜻했다. 

2009년 칠월의 내 모습은 이랬는데 지금은 어떤 모양이 나올지 궁금하다. 아마 더 젊어져 있겠지. ㅋ

청담동 74 카페.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곳이다. 몬테스 알파 까버네 쇼비뇽은 얼마나 많이 마셨던지. 프로젝트 최종 프레젠테이션에서 기립 박수를 받고 고객들을 데리고 와 와인 파티도 했었다. 식사가 맛있을 때는 꼭 주방장에게 고마움을 표시했고 이태리 골목골목을 누비며 제대로 요리를 배운 그 주방장은 내가 원하는 데로 메뉴에도 없던 나만의 정찬을 만들어 주곤 했었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 간의 말없는 배려라니.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방문하던 동료들과의 신나는 저녁과 수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모임의 장소로 가졌던 형님, 영원, 인명 그리고 성구,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많은  사람들. 우연히 인사하게 된 따뜻한 마음의 예의 바르던 여배우와의 와인과 생일 케이크, 형래와 와인을 기울일 때 신비스러운 발걸음으로 걸어 들어오던 국립발레의 수석 발레리나, 결국 연말의 호두 까기 인형은 가질 못했군요, . 키가 정말 컸던 S는 왜 그렇게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지. 내 소설의 여 주인공이 되겠다던 그 당돌한 소녀는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동글동글했던 소믈리에, 칠레에서 와인 공부는 다 끝냈나?

 내 지프가 도착하면 반갑고 자랑스럽게 맞이해 주던 주차요원들. 앞에 주차된 차를 굳이 빼고 그 자리에 내 지프를 놓아주던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멋졌던 지배인들도 내게 너무 친절했었지.

Dido의 thank you에 취해 있던 시절이었다. 돌출된 발코니 자리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앉고 싶었었다. 책 한 권 가져가서 이리저리 읽다 보면 몬데스 알파 한 병이 다 비워 지곤 했고  이런저런 호칭으로 부르며 들어오는 친구들을 맞으며 또 보내며 난 저 발코니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번 서울행에서는 단 한 번밖에 저곳을 가지 않았다. 이젠 다시 찾지 않을 거야. 내 광기의 기점이 된 장소. 광기 어린 들뜸으로 한 시기를 보냈던 이곳. 이젠 기분 좋게 한때의 추억으로 묻어 버린다. 안녕 74.

경복궁은 내가 서울에서 가장 사랑한 공간이었던 것 같다.

우리의 관광객들은 경회루로 들어서서는 우측으로 빠져나가 버린다. 이 아름다운 연못을 왼쪽으로 돌아가 보는 산책길이 얼마나 호젓한지 모른 채. 연못 중심에서 왼편으론 멋진 소나무가 몇 그루 있는 작은 섬도 있다. 어느 각도에서나 새로운 모습을 연출하는 우아하고 장중한 정자, 그리고 신비스러운 연꽃이 피어나던 칠월의 경복궁이다. 역사의 향기는 연꽃을 통해서도 피어오르는가 보다. 행복했다.

이제 옛 모습을 많이 찾아가고 있는 이 그윽한 공간을 거니는 것은 언제나 좋았다.

공간이 가지는 향기에 대한 추억은 아주 어렸을 적에 시작되었다. 외할아버지의 기와 저택에 부속되어 있던 광, 즉 도구들을 모아 두는 헛간을 열 때면 언제나 두터우면서도 부드러운 독특한 향기가 있었다. 텃밭을 가꾸는 도구들인 곡괭이, 호미, 삽, 소쿠리, 멍석 등등 소위 organic 한 자연 소재들로 이루어진 정겨운 물건들이 가득하던 곳. 플라스틱이라는 개념이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던 당시 초등학교에도 입학하지 않은 어린 나이였지만, 뜨거운 여름날 그곳의 향기가 왜 그리 포근했던지.. 이후 수십 년간 간혹 떠오르는 지난 어린 날의 기억 중, 그 향기에 대한 기억은 항상 또렷이 남아 있었다. 그 후 다시 그 향기를 찾게 되면서 그 근원에 대한 호기심이 커지게 된다. 휴렛팩커드 시절 런던의 윈저 성 부근에서 일주일간의 회의가 있었고 호텔에 부속된 세미나 하우스를 통째로 빌려 회의는 2층에서 식사는 아래층에서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건물은 수백 년이 넘은 문화재 급 저택이었는데 대궐 문 만한 커다란 입구 문엔 엄청난 크기의 고리도 달려 있고 이층을 오르는 계단을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트랜실바니아의 드라큘라 성이 떠 오를 정도로 오래되었지만 고품격 의미로서의 빈티지 분위기를 마구 풍기던 그곳. 바로 그 저택의 2층 거실에 들어섰을 때 그 향기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어찌나 신기하던지.. 어떻게 외할아버지 댁 광에서 맡던 향기를 런던의 고택에서 다시 맡을 수 있었을까. 신기한 느낌과 호기심이 잔뜩 일었지만 바쁜 나머지 또 몇 년이 흐르게 되고 서울에 있을 때 간혹 나가던 궁궐 나들이에서 어느 殿이었는지 마루에 걸터앉았고 마침 창호지가 뚫어져 있어서 그 안 쪽을 들여다보는데.. 아 그 향기! 결국 그 향기는 아주 오래된 소나무 나 전나무 등에서 나는 향기였다. 향기의 근원을 찾는 순간이었다. 이젠 자주 그 향기를 대한다. 아주 오래된 목조 건물 내부에서는 언제나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백 년 굴곡진 이 씨 조선의 역사나, 고작 두어 세대 걸친 내 개인의 역사나 동서양의 그 큰 차이에서나 그 향기는 똑같았다. 인간이 어떤 모습으로 어느 시대에서 살아왔건 우리가 짐작하기 힘든 거대한 스케일의 자연의 향기는 전혀 다르지 않았다.

아.. 탄성이 절로 났다. 경복궁의 어느 대문을 지나며 근정전의 옆모습과 마주쳤을 때.

아름다우면서도 그 기능성이 극대화된 한국의 아름다운 문이다. 그저 문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기능적 서술이다. 내와 외를 구분해 주는 설치 작품이라고 나 할까.

그 문을 통해 언뜻 바라보이는 정원의 소나무 한두 그루의 모습은 다분히 禪 적이다.

몇 줌 안 되는 솔잎에서 산들바람에 실려올 향기가 코 끝을 순간 간지럽히는 듯했다.

한국의 전통적 나무 창을 이루는 수직, 수평의 창살이 몇 개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소유자의 지위고하에 따라 그 격자의 간격 및 숫자도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격자의 수가 많을수록 격자의 무늬가 가지는 의미가 깊고 다양할수록 더 많은 공덕과 노역 그리고 자금이 투여되었을 터, 세상 모든 권세를 휘둘렀을 세도가들에게 못 할 게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경복궁 궁전을 이루는 많은 殿 및 堂 들의 얼굴을 차지하는 문들의 창살이 하나같이 가장 단순한 형태의 수직, 수평 구조의 격자무늬만 가져갔다는 것이 내게는 대단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러한 깨끗하고 단순한 창살을 보다 보면, 왠지 예전의 곧고 깨끗한 선비를 만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맑아진다. 佛殿의 나무 창살들에 새겨진 소박하기도 현란하기도 한 문양들은 수행자들 뿐 아니라 방문객들에게 창살들만 조용히 살펴보아도 마음 한편에 자비심과 불심이 살아나게끔 하기도 한다.

조르쥬 무스타키의 회상적 노래, 그곳에 정원이 있었네 (Il y'avait un jardin)를 들으면 산책하고 싶은 곳들이 떠오른다. 어디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서울에 있다면 당장 가볼 곳은 주저 없이 경복궁이었다.

한국의 전통적 정원은 주변 자연과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전문가가 아니면 오래되어 손상된 정원터를 밝혀내는 건 매우 힘들다고 한다. 지극히 인위적인 일본의 정원들에 비해, 한국의 정원은 자연의 경계와 너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어디서부터가 가꾼 정원이고 어디가 자연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굳이 나의 공간을 강제로 자연으로부터 옮겨 와 담을 높여 구분 지어야 하는가 라는 생활 철학적 입장에서 우리의 조상들은 참으로 멋스럽고 자연스러웠다.

다분히 유교적, 道家적 영향으로 개화기 조선은 소위 서양 문물에 대한 발 빠른 현실적 대응과 적용을 통한 근대화에는 뒤질 수밖에 없었지만 인간과 자연의 어우러짐이라는 궁극적 명제에 대한 바른 해석이었고 여유로움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작금의 전쟁터를 방불하는 테크놀로지 지상주의, 자본과 생산성 지상주의의 최전선에서 살아보고 나서야 그 우아함과 여유로움의 처신이 한 개인에게도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향원정은 인위적으로 연못을 파고 돌출된 팔각정까지 세워 놓은 과시적 형태의 궁궐 정원이지만 정을 둘러싸고 있는 오래된 나무들과 연못의 물풀들이 전체적 인위성을 많이 완화시켜 주고 있는 듯하다.

색동 단청 곱게 단장한 궁궐의 처마는 마치 이제 막 지어진 건물인 듯했다.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어짊을 생각한다. 역사는 그 위정자들의 어질었음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지만 적어도 그들은 이러한 현판을 걸어 초심을 다스렸다. they tried at least.

이번 서울 여행에서 복원되고 있는 경복궁 구중궁궐의 곳곳을 둘러보며 많이 흐뭇하고 자랑스러웠다.

종묘. 아주 오래되어가면서 멋지게 녹이 슬어가는 거대한 경칩의 삐걱거리는 소리를 즐기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열어보는 大門. 역시 아주 오래된 나무 향이 스쳐 지나가고 아주 오래전부터 차곡차곡 쌓여온 왕족들의 혼령 향기도 휘리릭~~ 문을 열고 들어서기만 하면 옥상 황제로 분한 전우치가 팔등신 선녀들을 대동하고 구름을 타고 내려올 것 같기도 한데..

저 대문 지방을 건너는 순간 마치 해리 포터가 플랫폼 3과 1/2을 지나듯 발끝이 짜릿해지면서 21세기의 가장 복잡한 거대도시 중 하나인 서울 종로의 복판에서 느릿한 이조 시대 왕조의 온갖 밝고 어두운 또 미스터리 한 스토리가 드글대는 그 時空間으로의 순간이동을 시도하게 된다.

경계를 이루고 있는 이 작은 공간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 시간에서 저 시간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 이 경계를 자주 들락거리고 싶은 거다.

여의도의 프로파일이 오롯이 보이는 가운데 오랫동안 몸담았었던 직장의 로고는 아직도 내 가슴을 뛰게 했다.

활기찬 명동의 밤거리는 산책을 하며 사람 구경하기가 너무 좋았다.

도시는 또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한밤의 강변도로 질주는 오렌지 빛 노스탤지어를 자아내며 시트 속으로 몸을 더 잠기게 했다.

이 건물엔 봄여름 가을 겨울 얼마나 자주 들락거렸던지.

아직 조직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있는 옛 동료들과의 정겨운 식사도 이어졌다.

예전엔 이렇게 세련된 인테리어가 흔치는 않았었다.

내 객기의 기승전결이 펼쳐지던 시절, 대학로에 위치했던 라이브 재즈바 천년 동안도는 다른 곳에서 이미 한두 잔 술이 걸쳐진 후 찾곤 했던 곳이었다. 재즈라는 장르가 대중의 호응을 많이 얻기 전 중년의 고객들만 드문 드문 앉아 있곤 하던 시절부터 찾았었는데 세월이 흐르며 어느덧 주로 젊은이들로 꽉 차는 시기를 바라보며 난 캐나다로 와 버렸다. 내 친한 친구들은 물론, 사업상 인연을 맺은 친구들, 회사 고객들, 동료들, 수많은 이들을 이곳에 데려와 와인을 기울이며 재즈를 즐겼었다.

그 숱한 세월 동안 피아니스트 신관웅도 지나가고, 말로의 달콤한 보컬에 술이 깨기도 했고, 자신의 키보다 훨씬 큰 콘트라베이스를 열정적으로 연주하던 송이를 보며 놀라기도 하고, 이정식의 색소폰에 각설이 타령의 한을 느끼기도 하고, 유복성 형님의 커리비언 타악기에 매료되기도 했다. 알만한 1,2 세대 재즈 뮤지션들의 시대가 저물어 가면서 아주 새로운 재즈 리듬을 만들어 내며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해 내는 젊은 연주자들의 발랄함과 독특함에 빠져들 무렵 난 에어 캐나다에 몸을 싣고 가족이 지내던 토론토로 와 버린 것이다.

아름다웠던 추억들 가슴 아팠던 추억들 모두 다 감사하고 사랑해... 난 칠월의 서울 하늘을 날고 또 날았다.

서울의 다양함과 복잡함, 유쾌한 시끌벅적함이 너무 좋았다.

한낮 명동은 영화의 스틸 컷들을 한 장면 한 장면 대하는 듯했다.

근대와 현대가 일상적으로 어우러져 있는 서울이다.

난공 불락의 빌딩 숲 사이에서 겨우 비치는 초록 잎사귀들은 사라졌던 내 기억의 싹들이었다.

인사동의 셀 수 없을 정도의 갤러리들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영혼의 감성을 살려내고.

우연히 들른 홍대 부근의 서교 예술실험센터의 큐레이터 여대생의 맑고 천진한 웃음은 칠월의 서울 모습이었다.

건축가이자 컬처 이노베이터인 아키 김우성 사장과의 새로운 만남도 칠월의 서울에서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마침 한국에 있던 이종선 작가도 불러 서로 인사시키고, 즉석에서 그의 인도와 티베트,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프로젝트 사진전을 프로젝터로 열기도 했다. 비디오 예술 감독 papunk 박훈규 커플과도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아키 사장과 수시로  홍대 앞 맥줏집 패티오에 앉아 지나는 청춘들 구경하며 수다 떠는 것도 좋았다.


 

See you guys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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