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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Toronto Dec 05. 2019

먼 나라 해변가 이야기

Marina Beach @ Chennai.India

As I stood on the hot, misty sands of Marina Beach in Chennai, adjusting my camera for yet another shot, I noticed a boy and his dog slowly making their way toward me from the distance. The heat of the dry season hung heavily in the air, with the faint promise of the monsoon just over the horizon. I had no idea at that moment that this particular shot would become one of my favorites among the thousands I’d taken in India.


The beach was bathed in a soft, golden hue, with the mist giving everything an almost ethereal quality. The boy, barefoot and ordinary by any measure, walked with a certain calmness, his dog loyally by his side. It was an image that immediately transported me into the world of Saint-Exupéry’s The Little Prince. In that fleeting moment, the boy seemed less like a local child and more like a traveler from a distant planet—perhaps not accompanied by a fox, but by his faithful dog, a companion just as wise and loyal.


Though he wasn’t dressed in royal garb, nor did he have the air of novelty about him, there was something fable-like in the way he moved, as if the world around him held mysteries that only he and his dog could understand. The scene felt like a story untold, a quiet passage from a tale meant for grown-ups, where the simplest figures carry the deepest truths. It was this sense of quiet wonder, wrapped in the mist and golden sand, that made the shot unforgettable.


어린 왕자가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름다운 금발도 새하얀 피부도 아니었고 멋진 벨벳 망토를 걸친 것도, 빨간 가죽 장화를 신은 것도 아니었다. 나의 새까만 어린 왕자는 순하게 생겼지만 친구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을 것 같은 나이 든 개와 함께 하고 있었다. 여우를 대신해서.. 그 아이는 내가 자신을 어린 왕자로 바로 알아본 것에 놀란 듯 흠칫하긴 했지만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난 그의 길을 막고선 가까이서 그 모습을 더 보고 싶기도 했고, 그 어린 왕자가 내게 와서,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을 그려 놓고는 이것이 뭐 같으냐고 물어봐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허긴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내게 그런 걸 다시 물어볼 어린 왕자는 아니다. 그리고 난, 술 먹는 창피함을 잊으려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창피함을 잊으려 담배 피우는 어른 아닌가. 곤욕스러운 질문을 받으면 괜스레 큰소리로 화부터 내고 보는 소위 어른 아닌가. 나 같이 세상 풍파 다 겪은 닳고 닳은 어른에게, 어린 왕자는 그저 꼭꼭 숨어서 바라보기만 할 수 있는 대상인 것이다. 가끔 생 떽쥐뻬리 같은 멋진 어른이 나타나서 어린 왕자와 '어른' 들 사이를 엮어주기 전 까지는 말이다.

신밧드는 바로 저런 서너 조각의 종려나무로 만든 통나무 배를 타고 모험을 떠 났을 것이다. 저 팔랑거리는 돛대도 없는 조각배는 이 세 사람 어부의 삶의 현장이다. 날씬하지만 겨우 손바닥 만한 너비의 저 조각배에 앉아 이 거대한 인도양이 품고 있는 보물들을 건져 올린다. 일견 평화스러워 보이는 한낮의 뜨거운 바다는 저들에게도 평화로울 수 있을지. 너무나 간단하게 서너 조각으로 어어져 만들어진 배는 하지만 수천 년을 내려오는 이들만의 최적화된 산물일 것이다.

나 같은 관광객들에게 재미있고 시원해 보이는 이들의 해안가 도착 풍경은 이들에게는 하루하루의 치열한 삶이다.

카메라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우리 어부의 살색은 새카만 검정이었다. 아이가 아빠의 얼굴을 그릴 때 선택하는 크레용은 주저 없이 검은색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주 건강한 검은색일 것이다.

얼마나 잡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만선은 아닌 건 너무 분명하다. 건기의 막바지 이글 거리는  태양 아래 해변가 얕은 물의 물고기들도 더위를 피해 먼바다로 나갔는지 모른다.

두 사람이 이고 가기엔 너무나 왜소해 보이는 고기 망태기이지만 망태를 매단 노를 출렁이며 걸어가는 두 어부의 발걸음은 경쾌하기까지 하다. 가벼운 수확에 대한 원망보다는 오늘 하루도 험한 바다에서 무사히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해 준 그들의 神에 대한 감사의 몸 가짐일 수도 있겠다.

곱디 고운 해변가의 모래 위에 놓여 있는 한알의 코코넛을 보니 갑자기 베트남 戰 생각이 났다. 남쪽나라 십자성은 어머님에 얼굴.. 어렸을 적 부친이 파월되셨을 때 언제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구슬픈 노래였고 난 의미도 모른 채 그 가락을 입안에서 웅얼거리곤 했다. 당시 월남의 어느 해변가에서 이런 노랠 읊조리던 파월 장병의 옆에도 저런 코코넛이 굴려 다녔을 것이다. 다행히 베트콩 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전공을 세우신 부친은 훗날 무사히 귀국하셨지만, 불귀의 객이 되었던 많은 젊은 청춘들은 이글거리고 찐덕거리는 이국의 숨 막히는 정글에서 미지근한 코코넛 과즙으로 향수를 달랬을 것이다.

아프로디테의 등장.

이곳 첸나이의 마리나 해변 바로 뒤에 위치한 여자대학에서 잠시 쉬러 나온 학생들이다. 어린 나이지만 귀족 집안의 자제들인 듯, 몸가짐이나 미소에서 귀티와 우아함이 넘치는 학생들이 많았다.

Making promising India more promising is that they have heathier poplution profile toward young generation compared to other developed or developing countries like Europe, Japan, US or Korea.

허리를 곧게 펴게 씩씩하게 걸어 다니는 총각들도 멋지고, 그 뒤 통나무 배에 시원하게 누워 바다를 바라보는 청년도 여유만만이다.

아마도 일가친척이 나들이 나왔음직한 그룹. 수줍어하면서도 어쩜 저리 나 같은 이방인이 신기한지 연신 손을 흔들고 함박웃음을 지어주었다.

섭씨 40도가 넘는 해변의 熱沙 위에 아름다운 사리를 휘날리며 앉아 쉬는 학생들. 가부좌로 앉아 허리를 곧추 세우고 있었던 긴 머리의 연주황색 사리의 소녀는 그 자태가 신비할 정도였다.

너무 뜨거워서인지 해변가엔 사람들이 잠시 다 사라 지졌고 난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에 청량감을 찾으려 애쓰며 모래에 앉아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밝은 웃음은 인간의 고귀함이다. 모든 경계심과 의심을 놓아 버린 채 적극적 환영의 의미로 웃는 밝은 웃음은 인간 만이 가지는 고도로 추상화되었으면서도 지극히 함축적이고 순간적인 소통의 일환이다.  

노인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밤 휘황한 달이 뜨면 그는 저 인도양의 검은 수평선으로 배를 저어나갈지 모른다. 어젯밤 大魚의 꿈은 여느 때의 꿈과는 좀 달랐다. 손에 전해지는 녀석의 힘찬 몸부림은 이제까지 수 없이 낚아 왔던 녀석들과는 너무 다른 것이었다. 노인의 머리엔 온갖 종류의 바다 고기들이 오가는 상세한 지도가 그려지고 있을 것이다. 목욕재계라도 한 듯 노인은 깨끗하게 세탁한 리넨 셔츠와 남자용 치마를 입고 있었다. 역시 노인은 어제도 또 꿈을 꾼 것이다.

 해변가 분위기를 압도하는 자세의 녀석은 주변의 인간들은 아랑곳 않고 제 할 일만 했다.

종종 사악한 존재의 메신저 역할의 이미지로 영화나 소설에서 등장하는 만큼 대단한 지적 능력을 소유한 까마귀는 인간들이 많이 모여사는 도시의 한 복판은 물론이고 한적한 비치에서까지 녀석들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까마귀들은 앵무새처럼 인간의 목소리를 흉내 낼 수도 있고 사람 개개인의 얼굴까지 식별해 낼 수 있다 한다. 그리고 특별히 녀석들에게 해코지를 할 만한 '나쁜' 인간들을 가려낼 줄 알아서 자기들끼리 경고음을 전파하며 조심하라 이른다 할 정도다. 자기들 사진을 찍으며 감탄하는 내가 나쁜 인간으로 보이진 않았는지 계속 내 앞을 어슬렁거렸다.

이곳은 까마귀 조차 평화로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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