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들이 가득하게 나부끼지 않아 고기를 많이 잡지는 못한듯 했지만 항구로 돌아오는 작은 배는 만선의 기쁨보다는 안전한 귀항에 대한 안도가 더 가득했던 거다. 내일의 만선을 기대하며 오히려 더 힘차게 방파제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항으로 돌아오는 배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고기잡이 배를 타 본적도, 어부를 친구로 둔 적도 없지만 난 괜한 아련함과 친근함, 그리고 다행스러운 마음들로 차 올랐다.
한국을 방문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둘러본 동해의 주문진 항구는 구석구석 애틋하기도 했고 활기가 넘치기도 했으며, 숨겨지기 힘든 바닷 사람들의 진한 삶의 향기가 곳곳에서 넘쳐났다.
세상 어느 구석에서나 그 삶의 치열함이 느껴지지 않는 데가 있을까만 이러한 작은 고깃배 안에 놓인 여러 도구들은 그 쓰임새를 즉각 떠올리게 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다루는 이들의 노고와 탄식, 환호와 희망이 함께 그려지기 때문에 정물 자체가 가지는 페이소스가 매우 크게 다가온다.
어부들의 또 다른 손들이 제 주인의 고마운 심정과 함께 정갈하게 세탁되어 따사로운 겨울 햇살을 받으며 다시 태어나고 있다. 저 손들은 그 거친 겨울 바다에서 얼마나 쉴 새 없이 움직였을까..
어린 시절 서울의 어느 골목에서나 쉽게 눈에 띄던 리어카는 이곳에서는 아직도 그 든든한 쓰임새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망의 그물과 추, 그리고 수많은 낚시 바늘들을 저리 정성스럽게 정리하며 어부는 그의 장남을 떠올리고, 막내 딸내미도 떠올리고, 연로하신 노모도 떠올렸을 것이다.
용풍, 동부, 송현, 원전, 성덕... 여느 친구들의 이름처럼 정감 어리게 붙여진 작은 어선들의 이름들.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있을까.얼마나 많은 이들의 이름들이 이 작은 배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