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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May 14. 2016

공간의 향기

@hazelton ave.toronto

현생 인류 기원의 적용 범위에 따라 인간은 수십만년 전 혹은 수만년 전부터 주어진 자연 환경속에서의 치열한 생존 과정을 거치면서 공간 지각력을 계발 시켜 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기존 환경의 활용을 넘어 새로운 공간을 지어내기 시작했을 것이다.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집단적 지혜나 개별적 지능이 전혀 발달하지 않았던 원시 시절의 초기 인류에게 툭 터진 사바나 이던, 지독한 습기의 밀림 속이건, 혹은 북극의 눈보라가 몰아쳐대는 북반구의 산악지대이건 혹독했을 자연 환경에서의 공간은 그저 먹고 먹히는 치열한 생존의 마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운좋게 먹이거리를 사냥했을 경우 안전한 공간에서의 최소한의 섭취 시간과 소화를 위한 휴식을 제외한다면 지속적인 이동을 시도했어야 했을 것이고 정해진 일정 공간에서의 반복적 삶, 일상적 삶은 요원한 것이었을 것이다. Nomad 란 단어가 가지는 유랑민들의 '고단하지만 자유로운' 낭만적 삶의 이미지는 원시 인류가 겪었던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 굶느냐 배부르게 먹느냐의 하루살이 삶을 구체화 생각해 본다면 여지없이 깨질 수 밖에 없다. 인류의 몇몇 그룹들이 비옥한 곳에서의 정착을 시도하면서 그 주변 공간을 차지하며 무리지어 모여사는 오늘날과 같은 삶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수천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고작 오륙천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에서의 집단 거주를 통해 인류는 소셜라이징의 기술을 터득했고 그 사회성을 키워 나갈수록 더욱 강력한 생존 경쟁력으로 무장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정말 대단한 사실은 지구의 나이, 우주의 나이에 비해 오천년이라는 시간은 눈 몇번 깜빡할 시간도 못 되지만 지구상의 생물군 중 인간에 의해 인간 만을 위한 배타적 공간이 전 지구를 통해 확대되어 가면서 이제 지구의 거의 모든 물리적 공간에서 인간의 냄새를 맡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역 표시라는 동물의 본능적 행위로 본다면 인간은 지구상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긴게 분명하다. 따라서 지구 생태계 역사에서의 인간 대 '그외 모든 생물'과의 영역 다툼은 이제 거의 끝 난 듯 한데.. 생각해볼 만한 것은, 인간과의 생존경쟁에서 일견 조용히 머리를 조아리고 조신한 처신을 하고있는 듯 한 그 비인간형 생물들이 사실은 인간보다 훨씬 더 오래전 부터 지구를 차지해 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끝까지 살아 남는 자가 승리자다' 라는 사실은 진실인 것이다. 인간의 사회 생활에서든, 種의 투쟁의 역사 속에서든, 번쩍 번쩍하는 지능과 깊은 감성 그리고 엄청난 추진력으로 한때 조직을 이끌고 지구를 지배했지만.. so what?  그래서 끝까지 살아남았던가?  라는 물음이 오랜 시간, 아니 적당한 시간이 지난 후 새롭게 등장한 또 다른 스마트한 신영장류의 'Anthropology : lessons learned' 시간에 혹은 끝까지 살아남고 있는 아주 원초적인 박테리아들의 유전자속에 새롭게 되 새겨질 지 모른다.


어딜가도 좋았던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이제는 적극적으로 내가 선호하는 공간을 찾아다니는 일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된다.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이 되고 또 그러한 공간 속에서 소요하는 시간을 낼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있음이 운이 좋다 아니할 수 없다.

단연 시각적으로 날 즉각 사로 잡았던 꽃 바구니가 놓여진 창틀. 상아색의 벽에 낡은 버건디 색 나무 창틀, 그리고 florist 의 손길이 느껴지는 color mix 가 제대로 된 화분들. 누구나 예쁘고 상큼한 느낌을 가졌을 것이고, 그 공간을 그렇게 유지하는 주인의 안목을 칭찬할 것인데.. 모태인 자연과 조화되기 어려운 매우 독자적인 공간을 추구해온 인간은 이제 비용이라는 면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하면서 자연-적대적인 공간의 확대가 가속화 되고 있다. 그러면서 마치 벙커 나 토치카와 같이 너무나 튼튼하게 시멘트로 지어진 저러한 벽면의 작은 공간에 살며시 자연을 가져다 놓음으로써 나름대로 그 위안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심지어 방사능까지 조금씩 새어나오기까지 하는 100% 화학적 배합물인 시멘트로 이루어진 두터운 벽과 어여쁘기만 한 작은 꽃들의 주는 극적 대비는 나로 하여금 悲感한 미적 분위기를 한껏 느끼게 함으로써 카메라에 들어 올리게 하는 것이다.

고가 예술품 경매의 최고봉 소더비 Sotheby 건물의 짙푸른 차양은 그들의 세련된 권위를 자랑한다. 헤이즐턴 애비뉴는 이러한 고급 미술품 경매 갤러리들이 즐비해 있는 토론토에서 가장 우아한 거리가 되겠다.

어제 오후, 내가 토론토에서 가장 좋아하는 산책길 중 한 곳인 해이즐턴 거리가 있는 요크빌 Yorkville 주변을 걸었다. 잔뜩 찌푸린 날씨에 결국 오후 늦게엔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져 내렸지만 거의 60십년의 기록을 깨는 오랜 봄 가뭄 끝에 내리 단비였다. 별일이 없이도 이곳은 밤이나 낮이나 그저 한가로이 거닐면서 많은 갤러리들 구경과 주변 주택가 그리고 지나는 사람들 구경이 좋은 곳이다.

또한 제대로된 고급 레스토랑과 바도 즐비한 곳. 어젠 토론토에서 개최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토큐멘타리 필름 페스티발인 HotDocs 영화제의 영화를 보려했는데 줄을 길게 늘어선 사람들을 보고는 다음을 기약했다. 보통 토론토에서 줄을 선 사람들을 보는 건 전혀 흔한 일이 아닌데 주로 이와 같은 영화제가 열릴 때가 그렇다.

아마도 영화제에 참석하는 어느 셀럽의 애마였던듯 먼지 한톨 없는 페라리의 선홍색이 도발적이었다.

Heffel 미술품 경매소 앞에 서있는 할머니 와 말, 개 그리고 말을 탄 원숭이 조각상. Joe Farad 의 'Emily Carr and Friends' 란 제목의 작품이다. 노인을 위한 동물은 있다 vs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인 애밀리의 곁에서 끝까지 그녀를 지켜주는 이들은 동물 친구들만 일지 모른다. 天刑 적으로 고독을 부여안고 태어난 인간의 운명이려니.

구부정한 허리와 늘어진 어깨, 촛점없는 눈.. 힘없이 벌어진 입. 오른손엔 필기구를 들고 왼손엔 서류봉투를 들었지만 뭔가 재화를 창출한 부가가치가 있는 일은 아닐 듯 한데 그녀를 둘러싼 장난꾸러기 멍키 와 튼튼한 다리의 말 그리고 충실한 강아지, 힘없이 늙어가는 그녀를 위해서는 더할 수 없는 동반자들 일 것이다.

이 사진들은 작년 여름, 햇살 아름답던 어느 여름날 담아본 것들이다. '애밀리와 그의 친구들'이 있는 이 작은 공간에 오후의 햇살이 가로수 잎새들을 비집고 비칠때 마음이 서글퍼지면서도 따스해 졌었다. 인생은 그래도 아름다운가요?   에밀리 할머니, 저도 이제 곧 아이들에게서 그런 물음을 듣겠지요. 뭐라 대답 할지요. 간단하진 않군요. 에밀리 카 (Emily Carr)는 캐나다에서 가장 인정받는 화가 이자 작가중 한 사람이었다.

공간에는 그마다의 냄새가 있는 것 같다. 물리적 향기라기 보다는 경험에 의한 기억, 공간의 구도, 색, 빛 그리고 그 공간을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 등등. 스칠 듯 말듯한 아스라하고 우아함 이거나, 도를 넘은 독한 향수가 발산하는 천박하지만 너무나 강렬한 자본의 향취이거나, 단조로움과 나른함으로 연신 기지재를 펴게 하기도 하는 무색 무취적 禪적 향기 이거나, 공포 가득한 기분나쁜 죽음의 냄새 혹은 거룩함과 성스러움이 그윽한 또 다른 죽음의 향기 이거나.

시간의 향기가 가득한 역사의 공간에서는 그 에피소드에 따라 수많은 다양한 조합으로 생성되는표현하기 힘든 향기도 있었고 이곳 처럼 지나는 이들의 우아하면서도 발랄한 향취를 머금으면서도 그 거리 자체는 고요함을 넘은 심심한 공간이거나.. 작업자들의 노동 열기와 땀 냄새 그리고 마구 움직이는 소음이 가득한 치열한 삶의 현장이거나 그마다의 공간이 가지는 고유의 주파수, 색조 그리고 향기가 좋다. 소총을 가슴에 안고선 엎드렸다 누웠다 뒹굴기를 해가며 철조망 아래를 기어갈때 얼굴에서 뚝뚝 떨어지는 땀과 함게 피어오르던 마른 흙 먼지의 향기. 실제 전쟁이 아닌 훈련을 위한 병정 놀이 공간은 신나기만 했었다. 어렸을 적 포장되지 않은 국도 길. 두 줄 가로수 난 길을 따라 앞서 가는 버스에서 풀풀 풍기는 흙 먼지와 함께 벼 익는 훈훈한 향내가 있었던 어린 시절 할아버지 댁 찾아가는 지점 마다의 따뜻하고 행복감에 젖게 했던 공간들과 각기 독특했던 향기들.. 그립다.


Talk to you 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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