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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Nov 21. 2020

이름 모를 역

somewhere @ Indian continent

예정하지 않았던 역은 그냥 스치고 지나쳐야만 달콤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주는 것일까.

이름모를 역에 내린다는 것은 인생에서 전혀 겪어보지 못했던 분야, 듣도 보도 배우지도, 혹은 상식선에서의 상상조차 불가했던 들을 겪게하며 완전한 패착에 이르게 하거나, 인디아나 존스의 영웅담을 만들게 하거나.. 내 많은 경우 보통은 영웅담은 아니지만 꽤 괜찮은 경우가 많았고 더구나 흥미진진 했었다. 그러나 단 한번의 'total failure' 역시 맛본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나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가고자 하는 이 아닌 역에서 내려 마을로 걸어 들어 간다면 누굴 만나, 무슨 일이 어떻게 시작되게 되는 것일까. 혹은 내리지 말았어야 할 역에서 타의에 의해 끌어내려졌다면! 목적지가 아닌 곳에 내려, 괜한 설레임에 두리번 거리다 낭패를 보게 되지 않기를. 여행자의 입장이 아니었던 경우 역은 낭만과는 거리가 먼 그저 현실일 따름이었다는 것.

오래 전 한국 시절, 합병된 중소기업의 사장 노릇을 하러 서울에서 잠시 출퇴근을 해야했던 기차 역이 있었는데 열차에서 내려 바라본 역은 당시 망가진 그 회사의 현실만큼이나 을씨년스러웠었다. 공중분해되어 빚더미에 앉아 있던 회사의 전 사장이 역으로 날 픽업하러 나오는 기괴한 상황이이라 그의 승용차 옆 자리에 앉아 느껴졌던 여분 간의 납처럼 무겁고 칙칙했던 시간이라니. 다신 경험하고 싶지 않다.

on the other hand, 어느 봄날이었는지 초겨울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밤 늦게 코펜하겐 근교의 작은 역에 내린적이 있었다. 회사의 내부 미팅이 있었던 코펜하겐에 가까운 곳의 호텔에 투숙한 것이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아마 서리인지 차가운 안개인지를 코속 깊히 느끼며 이 작은 이름 모를 역 나무 벤치에 앉아 열차를 기다린 기억이 난다. 차가운 공기를 서서히 가르며 플랫폼으로 들어서던 노란색 열차의 모습은 다분히 비현실적 동화의 모습이기도 했는데, 업무 출장이긴 했지만 당시엔 수많은 출장을 그저 여행의 연장 선상이라 여겼기에 낭만적 감상이 지속 되었을 것이다. 이름 모를 역에서의 아주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예정하지 않았던 역에 내린다는 것은 자신이 오랜동안 닦았던 학문이나 경험, 혹은 익숙했던 조직,
또 많은 또래 동료들과의 관계를 통해 쌓아오고 공유해왔던 가치관, 행동 양식, 그리고 사회적 규범등에서 떨어져 나와 전혀 무관한 길에 접어든다는 것일 것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의 길은 시작되고, 라는 기치를 걸고 살아온 나였지만, 전혀 다른 인간 시장의 모습엔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head hunting의 대상이 되며 살던 인간 시장에서 지방 토호들의 자신들만의 local 네트웍과 오로지 자신들의 직접적 경험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 시장으로 순간 warping 된 상황은 reconcile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들은 전혀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었고, 교과서적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전혀 다른 행동 방식과 그들만의 닫힌 논리 체계로 돌아가는 다분히 동물적 생존 경쟁 방식이 있었던 것이다. 영화속에서의 역할이 아니라면 궂이 모르는 역에 내리질 마시길.. 환영해 주는 사람은 없다.


See you later at the next 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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