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ter shin Aug 23. 2020

the boy who followed

his father into Auschwitz

아들 녀석이 아빠 읽으라고 사다준 책. 

유대인들의 고난사는 알아 갈수록 황당하고 기막히다. 수천년전 부터 고초를 겪어온 이들은 그 교훈들을 절대 잊지 않고 그들의 dna 에 하나 하나 각인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교육이라는 단단한 틀속에서 대대로 이어지게 하고 있는듯 하다. 지구상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마지막 민족일듯..

아들이 아빠에게 이 책을 사다준 의도는? 아빠를 따라서라면 지옥도 함께 꺼얌! ㅋ

한때 대단한 전쟁 영웅이었던 비엔나 시민 아빠를 중심으로 지극히 소박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한 가족이 하루아침에 달라져 버린 세상에서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전쟁보다 더한 공포와 차별, 수모를 겪어가며 죽음으로 내몰리는 과정은 읽어 가는것 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럽다. 더군다나 이런 고요하기만 한 곳에서 그러한 참상을 떠올리자니..

틀러는 당시 미, 영, 프랑스등의 민주주의 국가들을 실컷 조롱하며 나치 제국의 선전선동에 이용했다. 인권과 자유를 부르짖는 니들이 어찌해서 내가 처치 곤란해 계속 학살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난민과 이민으로 받아들이는데 그렇게 인색 하냐고.  히틀러의 광란극에 미국을 비롯한 소위 자유 세계 역시 그저 방조할 따름이었다.

우싸우젠(Mauthausen)의 사진사, 쉰들러 리스트 등의 영화를 보면 이 유대인 강제수용소의 참상이 잘 그려지지만 이 전기 소설의 주인공 부자의 첫 수용소인 부헨왈트(buchenwald)에서의 참상은 더욱 구체적이고 끔찍하다. 부헨왈트 수용소는 독일 중심의 유서깊은 바이마르 주에 지어진 거의 최초의 강제 수용소(Konzentrationslager) 였다. 숨소리 하나까지 놓치지 않기에 독자는 편할리 없다.

포식자가 없는 인간의 적은 결국 인간 이다. 그리고 그 인간들간의 적대 행위는 자연 생태계의 먹이 사슬 상에서 벌어지는 생존을 위해 최적화된 동물들간의 살상행위와는 비교할수 없는 냉혹함과 잔인함, 그리고 비열함과 함께 하며 심지어 유희적 입장에서 조차 행해진다. 한없이 나약하고 선하면서도 끝모를 포악성을 동시에 지닌 인간들에게 신의 존재는 믿을수 밖에 없는 절대 명제 일지도..

이런 평화로운 곳에서 다리를 쭉 뻗어가며 살아가는 나같은 사람의 부조리함은 책을 읽어 내려갈수록 극대화된다. 인간에 의해 같은 인간에게 자행된 근대사의 극악함이 또다시 되풀이 되지는 않을것이라 믿고 싶은 것이 나의 그 부조리함 이다.


Stay in peace somehow.

매거진의 이전글 새로운 세상, 새로운 인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