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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Jun 18. 2020

새로운 세상, 새로운 인류?

after corona@ the river side

5년 정도 후 내가 은퇴하고 나면 여행하고 싶었던 곳들이 떠오른다. 아버님을 모시기 위해 한국으로의 귀국을 계획했고, 비지니스 방문이라 두어 시간 회의 후 바로 돌아와야만 했던 유럽의 여러 유명 도시들도 시간을 가지고 다시 가보려 했고, 신혼여행 갔던 적도 부근의 섬에도 다시 가보고 싶었고,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한두달 넘게 살면서 로컬 주민들과의 친분을 쌓게 되면 원하는 만큼 묵으며 그곳의 사람들의 언어, 맛, 그리고 삶의 풍취를 알아갈거라 생각했었다. 너무 마음에 들면 그곳에서 인생을 마칠수도 있겠다고도 생각했다. 스페인의 축제, 이태리 광장, 포르투갈의 해변, 뮌헨의 시월, 한국의 가을, 스웨덴의 피요르드, 싱그러운 싱가폴과 홍콩의 겨울.. 그 아름다운 계절, 멋진 도시들의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왁자지껄 열심히 산 삶를 복기하며 누구든지 친구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싶었던 거다.

하지만 그게 이제 가능할까? 불과 올해 일월, 아버님을 뵙는 3주간의 짧은 한국 방문을 마치고 캐나다 행 비행기로 오를 때만 해도 인천 공항은 여느때 처럼 인파로 북적였고 항공사 카운터 마다엔 긴 줄이 꼬리를 물었었다. 면세점들 역시 많은 여행객들의 들뜨고 바쁜 발걸음으로 가득 했었다. 로딩 게이트 주위와 활주로에 늘어선 수많은 비행기들은 이제껏 봐온 공항의 흔한 모습이었다. 캐나다로 돌아오자마자 3월 말 한국 방문을 예약할 때만 해도, 또 그 모든 비행 스케쥴이 취소될 때만 해도, 여름이 오면 다시 여행이 가능할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벌써 6월 하순에 접어들고 있지만 캐나다나 한국이나 여행 금지가 언제 어떤 형식으로 완화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 사이 항공, 숙박, 관광여행 업계는 파탄이 났고 가을이나 겨울이 오면 또다른 창궐의 파도가 밀려들거란 전문가들의 경고만 이어진다. 내가 사는 이곳은 기껏해야 7월이면 여름 시즌이 끝나고 8월 부터는 벌써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상황이 다소 누그러진다 해도 나같은 일반 방문객이나 관광객들은 비자는 물론 건강함을 증명해야 하는 각종 health certificate 들이 주렁 주렁 구비되지 않고서는 방문 대상 국가는 물론, 비행 구간의 경유국 조차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세상 많은 유적지와 아름다운 도시들, 최고의 박물관들, 최고의 갤러리들에 대한 VR 솔루션들이 쏟아질 것이다. 이미 많은 스포츠 행사와 연주회, 심지어 뮤지컬, 연극 조차도 무관중으로 스트리밍 되기 시작하며 사람들은 현장을 떠나 나만의 공간에서의 비디오 세계에 빠져들수 밖에 없다. 화면상의 대리 만족이 대안없는 선택이 되어 가면서 각 나라 유명 도시들에 포진한 유튜버들의 lousy한 local 비디오 역시 얼마나 많이 만들어져 뿌려질 것인가. Untact, distancing solution 에 대한 급작스런 요구는 거의 모든 실상을 virtual 화 해오고 있었던 tech 기업들의 회심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런 세상이 이렇게 빨리 당도 하다니 Yes! 이제 여러분들은 굳이 직접 가볼 필요가 없습니다. 왜 위험를 감수하며 많은 비용을 들여 모르는 사람들로 우글거리는 바이러스의 정글로 모험을 떠나야 합니까? 구독만 하세요. 어디든 당장에 떠나게 해드리죠. 여러분의 안전한 구석에서 단 한발짝도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이게 웬 떡이니 내 옆 자리들, 앞뒤 좌석들이 다 비었네! 와 신난다! 비행기를 타거나 기차를 탈때면 속으로 제발 내 옆 좌석에 아무도 타지 않았으면 하며 속으로 바라곤 했다. 그럴 경우가 거의 없었기에 더욱 바라곤 했었다. Gate 앞에 사람들이 많지 않을땐 이거 full flight 이 아니네 하며 쾌재를 부르곤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항상 주변은 비워져 있을텐데? 연주회도 극장도, 뮤지컬 홀도, 연극도 전후좌우, 대각선 까지  비워져 있을 텐데. 그래서 여유롭고 쾌적하다고? Maybe.. if you are ready to pay way more. 급격하게 오를수 밖에 없는 서비스 비용은 그만큼 비례해 커지지 못하는 지불 능력에 의해 서비스 실구매자들의 수는 가파르게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좌석이 9개 있었던 곳이 한개로 줄여져야 한다면 그 좌석 갯수, 즉 사람 머릿수로 비지니스를 꾸려왔던 기업이나 기관, 그리고 수많은 개인 사업자들은 어떻게 수익을 유지하며 사업을 계속할수 있을까?그 비용이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가될때 이전에 비례한 만큼의 좌석 점유율을 유지할수 있을까? 항공 여행에서는 거의 모든 고객 대면 서비스, 즉 기내식이나 잔 심부름등이 사라질 것이고 기차에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낭만에 젖을수 있는 dinning car는 없어질 것이고, 밀폐된 공간을 점유하며 온갖 도시들의 온갖 사람들을 만나며 편하게 유람함을 기치로 내건 크루즈 여행은 그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날지도 못하고, 물속에서는 고작 몇십초도 견디지 못하며, 근육으로 따지자면 호랑이는 고사하고 늑대 사슴조차 못한 우리 인간들은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타 동식물은 꿈도 꾸지 못하는 괴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socializing은 인간들의 뇌를 자극해 상상력을 계발시키며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기 시작했으며 추상적 개념에 대한 고도의 현실감을 부여해 왔다. 정치의 개념이 더욱 더 많은 인간들을 아우르며 생겨나고, 종교라는 힘이 인간들을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하면서 보이지 않는 존재나 개념은 오히려 더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이데올로기가 정립되고 세상에 대한 파라다임이 설정되고, 동시에 주변에 대한 관찰과 고찰, 로직, 수학이 발전하며 과학이라는 객관성까지 움켜 잡을수 있었다. 이 모두가 서로 가까이 모여살며, 서로의 체취속에서 면전에 침을 튀겨가며 대화와 토론을 통한 동의와 합의를 구하거나 결투나 전쟁을 불사하면서까지 이루어 온 것이다. 악수와 비쥬, 허그는 그 흔함을 넘어 인간들 간의 선한 물리적 소통의 심볼이자 유쾌한 정치적 제스처였다.

인간들의 각종 공동체, 자치단체, 국가, 경제 블록, 이념 블록, 지리적 블록등등 모든 개념의 physical aggregation 이 와해되거나 재편성되면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최소한의 물리적, 생산 가치 사슬적, 정치적 거리만 허용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다면 지구의 dominator로 군림해온 인류는 다소 겸손해 질수 있을까? 너무 많이 모여살고, 너무 많이 소비하며, 너무 빨리 움직이는 거대한 interactions과 transactions 의 용광로인 도시는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해 갈까? 코로나의 습격 이전 부터 이미 AI 솔루션들에 의해 대체되어 오고 있는 거대한 서비스 산업의 최전방을 형성하던 수많은 인간들이 인텔리전트 머신들과 비접촉 솔루션들로 대체되어 간다면 그들이 갈곳은 어디일까? 더우기 고등의 지식과 경험이 요구되어 지금껏 인간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법률, 의료, 진단, 분석 분야는 물론, 교육, 인사, 회계, 번역, 편집등과 배달, 운전, 비서, 간호등등 온갖 서비스 분야등은 이번 팬데믹을 거치며 바이러스 침투가 불가능한 비인간, 비생물 플랫폼으로의 대체가 급 가속될  것이고 그 명분 역시 더욱 공고히 될 것인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 사이 배곺은 월아이 두마리가 낚였다..


스웨덴은 집단면역을 진작에 추구했었다. 검사 장비나 방역시스템, ICU 가 태부족인 의료 인프라를 감안했던지, 팬데믹 초기의 미미한 증상들에 방심했던지, 어쨌든 이 나라는 가능한 많은 국민들을 바이러스에 노출시켜 항체를 형성하게 하려 했고, 감염 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적어도 재감염이 발생하지 않을줄 알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감염후 회복된 이들중 4% 정도만이 아직 항체가 형성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바로 이번주 중국과 미국의 유수 의학 연구진들로 부터도 유사한 결과가 발표 되었다. 감염후 회복된 후에도 인간 체내의 항체가 형성되지 않게 하는 이 신출귀몰한 바이러스는 다시금 이쪽 분야 전문가들을 아연케 하고 있다. 항체를 형성시키는 묘약인 백신을 만들어 내는 기업들은 항체가 사라지는 주기가 빨라질수록 더욱 더 떼돈을 벌게 생겼다.

내가 사는 이곳 캐나다 시골 마을은 코로나 이후 지난 4,5개월 여 사람들의 통행이 급격히 줄여들면서 대낮임에도 여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들의 향취만 가득했던 마을에서 그 냄새가 옅어지며 사슴들은 물론 곰들도 자주 눈에 띈다는 이웃들의 전언이 이어진다. 거시적으로는 소박하며 일견 정겨운 상황이다. 하지만 사람과 동물을 넘나드는 인수공통 바이러스가 또 다시 어떤 루트로 어떻게 발생되어 창궐할지 아무도 헤아릴 방법이 없다. 다만 우리 인간은 지난 수백년, 수십년의 통계를 분석하며 팬데믹의 발생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으며 치명율이나 전파 속도의 조합으로 나타나는 바이러스의 힘이 더욱 강해지고 교묘해지며 온갖 변이를 더 빈번하고 다양하게 일으킬 있게 변화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뿐이다.

Genomic epidemiology of hCoV-19.

지구촌 각지로 증식되어 가는 코로나의 변종들. 다른 색은 다른 대륙, 다른 나라를 나타낸다. 위의 게놈 계통 분류도는 이 영악한 바이러스는 벌써 일곱개의 변종으로 진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단일 백신으로는 처치 불가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음을 의미한다. Fyi, GISAID is a a global science initiative and primary source for genomic data of influenza viruses and the novel coronavirus responsible for COVID-19.

(www.gisaid.org)


한편, 고작 반년여 지속되어 오는 지구상 모든 나라 백성들의 거리두기 와 격리, 그리고 봉쇄의 효과로  베이징과 뉴델리, 멕시코 시티, 그리고 유럽 대륙의 하늘이 교과서적 하늘색으로 변했고,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에서의 traffic 역시 무지막지하게 감소하면서 대기의 탄소 농도 역시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줄어들고 있을 것이다. 하도 손을 박박 씻어대고 온통 소독제로 가득한 환경에서 살다보니 감기가 사라져 가고, 폐렴도 사라져 가고, 기타 세균성 질환 역시 인간들에서 멀어져 가는 형국이다. 하지만 나름 긍정적인 이러한 side effects 들은 당장 경제를 돌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지구상 대다수의 인간들에게 한가로운 소식 정도로만 들린다. 이 또한 지나가리 라는 감상적 바램 또한 무기력 하고 무의미 하며 비지성적이다. 어떻게든 바이러스의 박멸과 종식을 선언하고 싶은 각 나라 정치가들은 조바심에 안절부절이지만 전문가 집단은 아직도 아니라고 고개로 젓는다. 위기는 기회다 라는 선동성 외침은 이번 바이러스 창궐의 기저를 차지하는 인류의 오랜 지구 환경 침탈사를 들여다 보면 맥이 풀릴것이 분명하다. 어디서 부터 어떻게 시간을 거꾸로 돌리며 들여다 보아도 인류 문명의 족적은 자연 생태 환경을 극단적으로 변형, 변질, 고갈, 오용, 오염시켜 오는 것들 뿐이었다. 인류가 출현해 오늘에 이르는 소위 인류새에 얼마나 많은 이웃 동식물군들이 멸종에 이르렀고 지구의 역사에 비해 보잘것 없이 짧은 기간임에도 생태 멸절 프로세스는 전지구대를 걸쳐 광범위하게 진행되어 오고 있다. 인간의 출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 왔고 그 모습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며 더욱 번창하고 있는 바이러스는 인간의 서식 환경이 방대해져 갈수록 빠르게 사라져 가는 여타 동물들과는 달리 숙주 동물들의 개체수가 줄어드는 만큼 인간들에게 더욱 근접해 오고 있다. 급기야 인간과 바이러스와의 치명적 공존은 불가피한 상황에 이르렀다. 인간 피해의 규모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비용은 얼마나 천문학적일까. 우리의 후손인 포스트 코로나 세대들은 어떠한 삶를 어떻게 영위해 갈까.  바이러스 기능이 유전적으로 hard wired 된 신인류로 진화되어 갈까, 아님 인류 스스로가 인간 개체의 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나갈까. 온갖 욕망으로 무장되었지만 명민하기 그지없는 인류의 collective intelligence learning capability 와 big data, 그리고 computational power로 무장한 AI 의 조력 혹은 지시를 받으며 risk management 혹은 problem solving 에 성공하며 계속 치뤄질 바이러스 류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나갈수 있을까. I hope so.


아름답게 지는 노을은 오늘 따라 더욱 아름답게만 보였다.



존 덴버는 가고

그의 음악은 남고

컨츄리 로드가 하이웨이로 둔갑하고

고속철도가 히말라야를 올라가고

인간의 길이 거침없이 닦여지면

다양성은 사라지고 황폐화가 뒤따르고

누가 상관하랴

얼마나 많은 길과 다리가 하늘과 바다,

그리고 육상에서 뚫려지고 있는지.

인간의 생태적 파시즘은

오늘도 승리의 진군 깃발..



바람이 불어 오는 곳에

사람들은 오가지 못해


이렇게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서로 가까이 모여 행복해 하는 모습

이젠 어디서 보나

 

Excuse me!!

 받아들여.. 이젠 버스킹도 virtual 이야

by law!


젊은 인류는 코로나 이전부터 이미 대면 방식을 탈피해 각종 소셜 넷트웍 플랫폼 상에서 개인 레벨의 수많은 다양한 컨텐트를 만들어 내며 거뜬히 수익 모델 또한 창출해 왔는데 역병의 창궐은 그러한 인류의 소통 방식에 손을 들어주며 더욱 불을 지핀 격이 되어 버렸다. 물리적 방식, 접촉적 방식, 백문이불여일견 적 낮은 가성비 방식은 나같은 구 세대 정도가 선호할 뿐이다. 유튜브, 트위터 세대가 코로나 터널을 지나며 또 어떤 방식으로 적응하며 전개, 화할지 사뭇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사실 각 인더스트리의 하드코어적 재래식 비지니스 플랫폼, 인프라 관련 백앤드 비즈니스는 죄다 AI와 빅 데이타의 쥔장인 FANG 정도의 제왕적 기업들이 다 가져가고, 지구상 수많은 소위 개별 인간들은 그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요리해 먹으며 서로가 서로를 들여다 보는 마이크로 마리오네트 인형들이 되어 가는게 아닌가 하는 서글픈 생각 역시 든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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