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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Apr 23. 2024

blossoming

@ High Park

눈이 부시게 푸르렀던 날, 우린 화려한 봄맞이에 나섰다. 푸른 하늘아래 울려 퍼지고 있던 고요하지만 향기로운 생명의 찬가는 동물의 지존인 인간들의 마음 역시 온통 흔들어 놓았다.

꽃들이 화려하고 아름답게 동시에 만발하는 이벤트는 식물들에게는 개체 번식을 위한 고결하고도 진지하기 짝이 없는 대환장 잔치가 된다. 하지만 우리 지구 생태계 역사상 전무후무의 막무가내 돌연변이 막강체 인간들은 이들 식물들의 잔치를 도울 생각은 전혀 없다. 저희들끼리의 사랑 또는 우정을 도모하거나 고양시키기 위해, 혹은 저희들 가족들의 미학적 행복 추구권의 심화 과정 이수를 위해 이곳에 모인 것이었다. 그도 저도 없는 이들은 X 나 브런치등에 올릴 그림 정도나 찍어보려 모였겠다. 우리 인간들이 언제 벌이나 나비처럼 이들 벚꽃들의 수정 잔치를 위해 면봉이라도 들고서 이 꽃 저 꽃을 돌아다녀봤으며, 우리 인간들이 언제 한번 새들이나 다람쥐, 여우들처럼 버찌 열매를 잔뜩 먹고 나서 먼 곳까지 마실을 다니며 응까를 통해 그 씨들이 더욱 널리 퍼져 수많은 새로운 벚꽃 나무가 자라나게 한 적이 있는가.

살랑거리는 바람조차 수정을 촉진시키거나 향기를 먼 곳까지 흘려보내 수정 전문 곤충들을 초대하고 있건만 날 비롯한 인간들은 그저 폰 사진 찍기에만 바빴다.

나무는 내부의 나이테를 수없이 거슬러 올라 단단한 껍질을 뚫어내며 움을 틔우고 꽃을 피워낸다.

저토록 투박한 고형체에서 이토록 어여쁘고 가냘픈 꽃이 피어난다. 꽃잎과 껍질은 같은 본질의 다른 형질일 뿐이다.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동식물 공히 자신들의 세력권 확장 혹은 먹이 사슬상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수억 년 넘도록 부단한 진화를 거듭해 왔음에도 왜 아직도 대부분 꽃들의 암술과 수술 사이에 공간이 유지되어 수분을 위한 매개 곤충 혹은 조류가 필요한 상태에 머물고 있지? 완두콩처럼 자가수분이 가능해 꿀벌등의 수분 작업을 위한 외부 에이전트가 필요 없는 식물들은 유전적으로 한층 진화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완두콩은 더 이상 빼어날 수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동종, 이종 교배를 거부하며 자가 복제만을 계속해나가는 걸까? 아님, 매화나무의 DNA 엔 우성 유전이 철저히 hardwired 되어 있어서 매력적 자태의 옆나무를 닮아보려 자신의 수술이 옆 나무의 암술과 교배되기를 바라나? Maybe..

나무들은 말이 없다. 그늘을 만들어 이웃 동물들을 쉬게 하고, 열매를 열어 제 과육을 나눠주며, 인간들이 뿜어내는 독한 가스를 정화시키며 푸른 하늘을 더욱 푸르게 할 뿐이다.

한편, 피어슨 공항을 이륙한 뱅기는 순항 고도에 도달하기 위해 최고 출력을 유지하며 중력에 반하는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마치 '백 년보다 긴 하루'에 등장하는 카자흐스탄의 어느 우주 기지에서 지구인들과의 소통을 원하는 외계인들과의 접선을 위해 발사된 로켓 같은 모습으로. I love the linear footage of the jet stream.

Who knows? 우리가 이렇게 넋 놓고 벚꽃에 취해 있는 순간에도 비영리 단체인 SETI/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의 유수한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 혹은 외계인 탐구 독지가들은 고작 불닭라면 정도만으로 끼니를 때우며 두눈을 부릅뜨며 외계 신호를 잡아내려고 하고 있으니..

좌간.. 너무 이뻤다. 아내와 함께 걸으며 바라보는 이 만개한 꽃들이 주는 청량함과 신선함, 그에 이어지는 행복감은 현실을 벗어나는 긍정적 무중력감에 빠져들게 했다. 벚꽃 멍 때림이었다.

우리는 고독, 결핍, 침잠, 정지, 얼어붙음 등으로 점철되는 겨울이라는 인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도 꽃이 피어나는 계절이 이렇게 반갑고 기쁠수 있을까. 노력을 통한 극복이라는 아드레날린 가득한 성장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며 바라는 '행복' 이라는 막연한 상태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매일 꽃길만 걷고 매일이 행복하다면 그 상태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또 유효기간은 얼마나 될까.

도전과 응전을 통한 극복, 그에 따르는 가치의 수정, 해체, 붕괴 그리고 성장이라는 인류의 역사는 오늘도 돌아간다.


Talk to you 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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