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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 you amigos..

옛 친구들이 그리워..

by Peter Shin Toronto

난 지금 캐나다에서 인구가 가장 밀집되어있는 바쁘고 화려한, 또 아름다운 정원과 공원들이 바로 집 앞에 펼쳐져 있는 곳에서 살고 있지만, 캐나다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낮았고 한적했던, 그래서 차량 사고조차 드물어 보험료가 터무니없이 싼 곳에서 살았던 때가 가끔 그립다. 사스카추완 주는 일인당 국민 소득이 캐나다에서 가장 높은 주(province)이기도 했는데 그곳의 농부들은 대부분 대지주들이었다 친구로 지냈던 농부 Paul은 봄에 씨앗값으로만 $5M 즉 50억을 쓰는 거농이었다. 자기집 앞마당에 농업 전용 석유 저장시설과 가스 저장고 까지 갖춘 거의 기업농에 버금가는 규모의 농업을 구사하는 농부였다. 캐나다에서 농부라 함은 은행에서 전속 account manager 가 할당될 정도의 중소기업 정도의 규모와 매출을 가지는 지위를 유지한다. 사스카추완에서 수확된 곡물은 수없이 많은 100량으로 이루어진 곡물 전용 열차들에 실려 벤쿠버항으로 옮겨져 전세계로 수출된다. 북미의 대평원 지대의 중심인 사스카추완 주는 전세계의 빵공장이었다. 난 캐나다의 정 중앙인 그곳 The Prarie(대 초원) 주에서 무려 10년을 비지니스를 하며 지냈다. 내가 살았던 타운은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을 알고 지내던 인구 1,500 이 채 안 되는 곳이었다. 내가 모르는 이들은 좀 있었을지 모르나, 백여 년 넘게 타운의 역사와 함께하던 비지니스를 인수했던 날 모르는 주민은 없었다. 이곳은 남자인 나에겐 천국이었다. 수많은 호수와 강, 그리고 인접한 주립공원, 소규모이지만 스키장 등 flat 하긴 하지만 빼어난 자연이 있었다. 근린 시설로 두개의 골프장, 아이스하키 링크가 있었고, 나름 general hospital 과 각종 medical clinics, 그리고 마을의 유일한 극장에서는 컨서트와 영화 상영이 이어지곤 했었다. 난 호수 낚시, 강 낚시, 사격, 골프, 숲속 트래일, 스노 모빌링, 스노우 슈잉, 호수에서의 카약킹과 강에서의 다운 스트림 카약 혹은 카누잉등을 즐기며 나만의 왕국 속에서 살았다. 나와 아내가 유일한 한국인이었고 영국, 프랑스, 독일등의 유럽계를 비롯해, 러시아, 우크라이나계 주민들이 주 구성원들이었다. 부친이 홀로 되시지만 않았다면 비지니스를 처분해 한국으로 돌아갈 이유도 없었고 난 그 대자연 속에서 신나게 살고 있었을 것이고 나중엔 소박한 마을 묘지에 묻혔을 것이다. 첫 한국계 캐내디언 이곳에 웃으며 묻히다. See you guys in hell or in heaven 라고 쓰인 비명과 함께..

거대 도시에서의 삶, 북미에서 네 번째로 큰 천만이 넘는 인구의 코스모폴리스에서의 삶, 특히 동네라는 울타리가 없는 한국의 아파트와 유사한 콘도라는 빌딩에 사는 삶은, 회사 동료들 말고는 이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anonymous. Actually I love the anonymity in the big city.

나 만의 산책로, 나만의 공원, 나 만의 도서관, 나 만의 서점, 나 만의 펍, 나 만의 커피숍, 나 만의 젤라토 샵들이 있지만 난 그곳들에서 사람을 만나진 않는다. 카운터를 책임지는 오너들이나 서버들과 간단한 small talk을 나눌뿐, 혼자 아이스크림을 먹고, 혼자 커피를 마시고, 혼자 맥주를 마시고, 혼자 콘서트와 축제를 즐기며, 혼자 책을 읽거나 구입하며, 혼자 사색 속에 산책을 즐기거나 햇빛 바라기를 하지만, 눈인사를 제외하면, 타인이 계제 되어서도, 계제 될 이유도 없는 것이 도시의 삶이다. 그래서 좋다. 펍에선 간혹 친구가 될법한 이들과 유쾌하게 떠들기도 하지만 취기의 가면을 쓴 호기일 뿐이다. 아무개네 집 아들이 방학이라 내려와 인사오는 일도, 오늘 오후 별일 없으면 골프 치러 같이 갈까 할 이도 없는, 사스카추완에서의 개척민 시절의 공동체적 삶과는 정반대인 이 도시에서의 삶도 난 좋다. 두 곳의 극단적 삶의 형태 모두를 난 좋아한다. 좌간 그래서 이곳에선, So we say, the heart is a lonely hunter. Hunting for true solitude! 너 오늘 외로움 몇 마리 잡았니? None today.. :p

머빈과 가족들의 쓰던 낚싯대들엔 행복했던 가족사가 고스란히 묻어있다.

북극의 블리자드가 자주 불어 내리는 이곳엔 눈이 엄청나게 쌓이는데 위 사진이 그때 필요한 전통 snow shoes 다. 머빈은 눈 쌓인 들판을 저 설상화를 신고 사냥을 나서 수컷 사슴을 사냥한 게 분명하다. 오른쪽의 박제된 수사슴이 증거.

도대체 얼마나 오래된 시계일까..

A huge northern pike!

글렌과 머빈 그리고 조박사. 한국에서 내 친구가 방문한다고 글렌과 머빈은 이렇게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가져간 보르도는 와인 오프너가 없어 전동 드릴에 driver bit 를 꽂아 코르크를 산산히 조각낸 후 겨우 와인를 마실수 있었다. 그 기쁨이 하늘을 찔렀던 터라 저렇게 좋아라~ 기념 사진까지 찍었다. 글렌은 드라이버까지 들고선.. ㅋ

자그마한 머빈은 그의 체구의 백배만큼 넓은 마음씨와 부지런함, 그리고 사업수완까지 겸비한 사나이였다. 연로한데다 지병까지 있었는데 우리가 묵는 동안 항상 같이 지냈으며 그의 멋진 F-150 트럭으로 주변의 여러 호수와 이곳 마니토바 주립 공원의 곳곳을 구경시켜 줬다. Muchas gracias de nuevo amigo..

글렌은 나와 한국에서 온 내 친구를 위해 정성스럽게 스테이크와 새우, 실파, 버섯, 토마토, 감자.. 등등을 모조리 준비해 와 성찬을 만들어 냈었다. 포터블 fryer까지..

이곳에 오는 손님들은 가족과 친구들 뿐이었고 그들이 가져와 마시고 남은 각종 술들은 위스키 rack으로 쓰임새가 바뀐 왕년의 장작불 oven 속에 가득했다. 난 40oz Absolute 한병과 보르도 와인 두병을 가져와 식사 시 마셨다.

이런 호사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누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좋은 친구들의 진심 어린 호의가 없이는..

글렌과 머빈이 함께 지은 이 나무집은 마니토바의 거대한 호숫가 바로 옆에 울창한 전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머빈이 사는 이곳 마니토바 주는 내가 살던 사스카츄완 주의 동쪽으로 인접한 주이다. 지금 사는 토론토에서 내가 살았던 사스카츄완의 마을까지의 거리는 2,600 km인데 2박 3일을 꼬박 달려야 한다. 비행기로도 세 시간 이상 날아가야 한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우리 친구들을 제대로 다시 만나려면 차를 몰고가야 한다. 다들 건강하게만 지내 준다면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Stay healthy somehow amigos..

True North

Strong and Free



Mervin의 Cottage로 놀러 갔던 때가 벌써 7년 전이다. 아래는 당시에 썼던 글. 세월이 너무 빨라..




캐나다 뮤지션인인 Bill Douglas의 Hymn.


자작나무 숲에서 산책을 할 때나 아침, 저녁노을이 너무 고요할 때 basoon의 이 음률이 떠오르곤 했다. 그리고 지금 친구들이 그리우며 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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