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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Jul 30. 2016

아들과의 데이트

@flemingdon golf.toronto

이젠 운전면허도 가졌고 더구나 퍼블릭 바에서 아빠와 술도 같이 마실수 있는 스무 살의 어엿한 대학생이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아들은 어린아이 같았다. 녀석과 처음 필드에 나간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육 년 전 어느날,
.. 우리 아들이 운전하는 차 좀 타 봤으면 좋겠다. 빨리 면허 따~~
.. 아빠! 나, 열네 살이야~~~!
벌써 키가 180을 넘어가면서 마치 친구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아들. 그래서 면허 발급 가능 연령이 17세인 것도 깜빡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걸 정말 싫어하는 녀석이 일요일 6시에 일어나 아빠 혼자 가기로 한 운동을 같이 가겠다 했다. 주로 집안에서 온갖 식충 식물을 키우거나 IT 제품들은 물론 멀쩡한 카메라까지 해체한 후 부품들을 관찰하는 취미를 가진 녀석을 작년 여름 얼르고 달래고 해서 겨우 골프 레슨을 받게 했는데, 지난주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랑 필드에 다녀오더니 골프에 취미가 단단히 붙었다. 평소 같으면 일요일에 절대 일찍 일어나려 하지 않을 녀석이 따라나선다고 하여 내심 쾌재를 불렀다.

잘 가르친다고 소문이 난 레슨 프로에게 배워서인지 녀석의 스윙은 내가 좀 부러워할 정도가 돼버렸다. 머릿결을 출렁이며 샷을 날리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니 아비로써 정말 기분이 좋았다. 사실 난 아이의 너무 긴 머리카락이 싫었었는데 녀석의 키가 커지고 얼굴이 길어지면서 이제는 오히려 긴 머리카락이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계신 싱글 플레이어이신 부친과는 오래전부터 함께 플레이하고 싶었지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다 보니 이루어질 수 없었고, 이제는 캐나다에 살게 되어 더 먼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내 아들 녀석과 함께 하는 행운을 누린다. 녀석은 아빠와 플레이하는 게 전혀 감격스러울 것이 없겠지만 난 아들과 골프를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에 감개가 무량할 따름이다. 녀석과는 어릴 때부터 자전거를 같이 탔고, 롤러 블레이드도 같이 탔고, 수영도 같이 했고, 계곡에서 스킨 다이빙으로 물고기도 잡았었고 등산도 같이 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골프라는 운동의 특성상 주로 친구들이나 사업상 관계가 있는 지인들끼리만 즐겨왔었다. 이제 아들과 함께 하고 있으니 빠른 세월에 한숨이 나면서도 대견하기 짝이 없고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준 녀석에게 고마운 생각이 다.

아이들과 아내는 캐나다에서, 난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서 지내며 떨어져 있었던 1년 반 동안의 답답하고 안타까웠던 시절의 심정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사이 훌쩍 커진 아이들을 공항에서 재회했을 때, 이 청년이 내 꼬맹이 아들이었는지 믿어지지 않았던 그 토론토 공항에서의 기쁨도 도저히 잊을 수 없다. 아이는 물리적으로 엄청 자라났고, 난 아비로서의 소양이 부쩍 커진 거였다. 이제는 아이들의 잠자는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어 너무 좋다. 헤어져 있었던 그리운 시간들에 대한 기억들이 좋은 약으로 작용하는 거다. 부모라고, 나이가 많다고 아이들보다 성숙한 건 절대 아닌 것 같다. 아픔을 통해 배우고, 아이들을 보면서 배우고, 헤어짐을 통해 또 성숙해지고.

아이들이 자라날수록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날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잘 안다. 아빠로서, 자식으로서의 역할적 입장을 떠나 아이들과 참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고, 감정도 교류하고도 싶고, 비슷한 취미도 같이 살려 보고도 싶고, 이렇게 운동도 같이 하고 싶은 거다.

자기가 친 공이 쭉 뻗어 그린 위에 안착되는 모습을 본 아들은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라운딩이 끝나고 사진들을 자세히 관찰해보니 체형이나 스윙 모습이 녀석의 작은 아빠, 즉 내 동생과 너무나 닮아서 놀란다. 역시 싱글 플레이어인 내 동생의 스윙 모습을 보는 듯했다.

토론토 인근에서 이곳 플레밍든 클럽의 핫도그가 제일 맛있다고 아빠가 허풍을 떨었더니 녀석은 큰 핫독을 두 개나 먹었다. 요즘 난 아이들이 잘 먹는 게 무엇보다 기쁘고 고맙다. 뭐든지 잘 먹고, 잘자면서, 하고 싶은 거 열심히 해 가면 더 바랄 게 없는 거다.

bye for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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