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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Sep 09. 2015

3. 진정 평범한 일상이란.

South Park

한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늘 시간에 쫓기는 일요일 아침인데 오늘은 특별하다. 서둘러 옷을 챙겨입고 책 한권을 끼고 집을 나온다. 그 한 시간을 지켜내기 위해. 한달 전쯤 갔던 공원이 보이는 까페를 떠올린다. 큰 창문이 공원을 향해 활짝 열려있던 곳. 가벼운 아침 식사와 한 챕터의 책으로 한 시간을 채울 생각에 맘이 설렌다. 차를 타고 다운타운 쪽으로 향한다. 물론 번잡한 다운타운으로 가기 위함은 아니다. 가는 길 한켠에 그 작은 공원이 있다. 동네를 빠져나오자마자 도로를 메우는 차량들. 남쪽 다른 곳으로 갔어야 하나 짧은 후회를 한다. 다행히 기다림이 오래지는 않다. 어느 새 차창 넘어 자리 잡은 사우스 파크. 둥글고 길쭉한 그 공원을 옆에 끼고 차를 세운다. 내린다. 시간을 확인한다. 내겐 아직 그 한 시간이 거의 그대로 있다.



좋다. 가을의 문턱으로 접어드는 그 햇살 말이다. 그 아래 명랑하게 반짝이는 나뭇잎들 말이다. 더 이상 시간에 쫓기지 않기로 한다. 공원 놀이터로 향한다. 건너편에 그 창이 큰 까페가 거기 그대로 있음을 확인하고 안심한다. 저번에 왔을 때 그네를 타지 않아서 아쉬웠던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그네에 앉아본 게 언제였던가. 앉는다. 쇠줄 두 가닥을 양손으로 잡는다. 어릴 때 쇠줄을 잡으면 가끔 틈새에 손이 끼어 구릿빛 녹이 묻어나던 기억이 떠오른다. 양손을 다시 꼭 쥔다. 지금은 안전하다. 다리를 펴고 머리를 젖힌다. 그네 타는 법을 잊진 않았다. 그 나머지는 다 잊기로 한다. 이 순간만큼은.  



이제 그 시간이다. 사치의 시간. 마침 배도 고파온다. 까페로 걸음을 옮긴다. 어둡다. 실망이다. 닫았다. 일요일에 닫는 까페도 있나 해서 문 옆에 적혀진 오픈 시간을 확인한다. 일요일은 없다. 잠시 멍하니 서있다가 주위를 둘러본다. 반대편에 아까 들어올 때 보았던 노란 음식점이 보인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부대끼고 싶지 않은 아침이다. 하는 수 없이 공원에서의 식사는 포기한다. 녹색 공원 벤치에 앉는다. 나쁘지 않다. 아니 이만하면 훌륭하다. 잔디밭에 떨어진 낙엽들은 색바랜 가을 이파리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초록 잔디와의 조화가 맘에 든다. 이제 책을 읽을 수 있겠다.



책을 편다. 그래 이제부터 삼십분. 한 챕터만 읽자. 읽는다. 다리를 꼰다. 읽고 있다. 벌레 한 마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작은 날파리 같다. 한 두 마리 더 보인다. 손짓으로 쫓아낸다. 책장을 넘긴다. 벌레 한 마리가 책에 와서 앉는다. 글자 위에 앉지 않고 글자 옆 여백에 앉는다. 딱밤 손가락 자세로 벌레를 튕긴다. 튕겨져 나간다. 그래 나는 지금 책을 읽고 있다. 벌레 두 마리가 글자 옆 여백에 앉는다. 동일하게 튕겨낸다. 이번엔 튕겨 나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죽는다. 책장 위에서. 이젠 벌레와 책이 하나가 되었다. 그래 이런 일이 전에도 있었지. 바다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책을 폈을 때.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날파리 떼의 공격으로 자리를 떴던 기억. 안 되겠다. 떠나야겠다. 그래도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평범한 일상을 추구한다고들 하지만,
대개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건 사실 아주 여과된 일상이다.

계획이 어그러지는 것이 일상이니까. 그것이 보통이다. 그것은 평범하다. 평범한 일상을 추구한다고들 하지만, 대개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건 사실 아주 여과된 일상이다. 여기 있는 그림들도 다 그렇다. 거기엔 나를 찾아오는 날벌레 녀석들이 없다. 킨포크 잡지의 사진에 보여지는 평범한 일상은 실은 평범한 것이 될 수 없다. 일상의 궁색함과 어지러움을 다 한 쪽으로 밀어 놓아야 한다. 그런 정돈된 시공간을 담아내려면 말이다. 그렇다고 그런 정지된 사진 속에 멈춰있는 정돈된 삶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 나 역시 그런 것들이 좋다. 때론 어지러운 일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다만, 내 삶이 그들의 사진과 같지 않아서 움츠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어지러운 일상을 긍정하며 가지런하도록 계속 다듬어 가는 일. 이게 민낯 그대로의 일상 속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남쪽으로 차를 몬다. 변두리에 이른다. 한국 슈퍼마켓 앞에서 내린다. 진열된 김밥 두줄을 사서 나온다. 옆에 있는 버거 가게에서 점심 모임 때 함께 먹을 버거를 주문한다. 기다리는 동안 차 안에서 김밥을 먹는다. 김밥과 버거가 평범하다. 그래서 맛이 있다.



사진첩: instagram @ peter.s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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