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th Street
헤매인다. 기억에 있던 그 장소가 아니라서 말이다. 낯선 곳에서 이리저리 다른 골목으로 차를 몰아본다. 불과 내가 사는 곳에서 십여 분 떨어진 곳이건만 아직도 처음인 거리들이 많다. 이런 새로운 자극이 싫지만은 않다. 사실은 좋다. 그것 때문에 이 길을 찾아왔으니 말이다. 어깨를 맞대고 붙어 있는 집들 사이로 난 길을 조심스레 탐색해 간다. 길 가에 빈틈없이 서 있는 차들 사이로 한 자리가 보인다. 이쯤하면 그 기억의 장소 근처에 온 것도 같아 그 자리에 차를 세운다. 내린다. 도시답지 않은 한적함이 보인다. 한 블락 옆으로 걸어간다. 그래 맞았다 이곳 24번가.
언제 왔는지 기억이 선명치 않은 거리를 따라 걷는다. 조금 전의 한적함과는 사뭇 다른 들뜸이 느껴진다. 횡단보도를 건넌다. 끄트머리에 정차한 트럭에서 포근한 선율이 흘러 나온다. 칼 가는 아저씨가 그 곳에 앉아 여유있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이 조금씩 많아진다. 길 끝 멀리 언덕이 보인다. 완만한 경사를 거슬러 무작정 걸어본다. 기억에 닿는 가게들이 반갑다. 일단 점심을 해결했으면 한다. 언제나 그렇듯 혼잡하지 않은 곳이었으면 좋겠다. 횡단보도를 몇 번 더 건넌다. 그 사이 거리는 한적해진다. 풍선이 장식된 조그만 기프트샵이 맘에 들어 들어간다. 익숙치 않은 진한 향수 냄새가 코 안을 파고든다. 가게 주인과 가볍게 인사하고 돌아서 나온다. 맞은 편에 테라스를 가진 식당이 보인다. 그런데 너무 북적인다.
대신 간판도 분명치 않은 옆 식당 앞에 멈춰선다. 유리창 안으로 테이블에 앉아 잡지를 보고 있는 식당 아주머니의 뒷모습이 보인다. 잠시 주저하다 안을 다시 살펴보니 손님이 아무도 없다. 그런데 그 공간은 왠지 아랑곳하지 않는 여유가 있다. 적당히 밝고 단정한 모습으로 그렇게 비어 있다. 들어간다. 잡지를 읽던 아주머니는 친절하게 나를 맞으며 자기가 방금 앉아있던 그 창가의 자리를 권한다. 거리를 마주한 그 자리에 앉는다. 정오의 햇살이 과하지 않게 비춰 들어온다. 들어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티카 마살라를 주문한다.
이 멋진 정오의 공간을 나홀로 만끽하고 있다. 사치의 순간이다.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나른함 사이로 몽환적인 인도 음악과 같은 것이 흘러나온다. 그것이 조금 거슬린다. 하지만 이내 차분한 동양 가락으로 바뀌어 안심이 된다. 곧이어 음식이 나온다. 다른 곳보다 다소 저렴한 가격임에도 기품있는 다채로운 음식이 나온다. 아주 천천히 하나씩 먹어본다. 과하지 않은 향이 좋다. 시간이 얼마간 흐른다. 여전히 이 공간에 혼자 있다. 어떻게 이 좋은 곳에 찾아드는 이가 없을까. 그것도 가장 붐빌 주말의 점심 시간에 말이다.
찾는 이가 많지 않다는 것.
그게 꼭 남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갖추지 못한 모자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건 굳이 주목을 받으려고 애쓰지 않아서 일수도. 애쓰지 않아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을거란 고집스러움이 있어서 일지도. 그 몇몇 사람에 자족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 때문일지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이 꼭 보편적이진 않기 때문일지도. 변두리의 한적함을 일부러 원했기 때문일수도 있으니까. 식사를 끝낼 무렵 한 쌍의 커플이 잠시 고민하다가 식당 안으로 들어온다. 계산을 할 무렵 또 한 쌍의 커플이 식당 안으로 들어온다. 자리를 비울 때가 된 것 같다.
내 이름 아는 사람 많진 않지만
내 향기 맡은 사람 많진 않지만 괜찮아
내게 가까이 얼굴 내밀어 주는 그대만 있다면
나 그걸로도 기쁨 얻으니
강아솔 '들꽃' 중
밖으로 나와 아까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 걸어간다. 꽃가게 앞에서 꼬마 녀석이 해바라기를 바라보고 있다. 엽서 가게 옆에서 또다른 꼬마 남매가 재잘된다. 흐뭇하게 지나치다 책 가게로 들어간다. 여전히 맘 속에 노랑 벽 옆에서의 화사한 한끼를 간직한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