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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Sep 16. 2015

6. 안상수의 맞장구.

WholeFoods Market

"그럼요" 동의를 한다. 라디오 속 그의 목소리는 맞장구를 치고 있다. "아 그렇죠" "아아 그거 굉장히 재미있죠"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진중권과의 대화에서 안상수 선생은 연신 공감을 표하고 있다. 과하지가 않다. 꾸밈이 없다. 자연스럽다. 상대방의 말에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은 담백함으로 동감을 표하고 있다. 저건 진심이다. 참 반가운 맞장구다. 덕분에 일요일 아침 주린 배를 움켜잡고 밥 먹을 곳을 찾아드는 운전길이 즐겁다.


대화는 계속된다. 본인이 만든 안상수체에 대해, 우리 한글의 독특함에 대해, 교수직을 그만두고 시작한 타이포그라피 학교에 대해, 물 흐르듯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결코 빠르지 않은 이야기가 유유히 흐른다. 별다를게 없는 듯 내뱉는 삶의 문장들 속에 굉장히 색다른 얘기가 배여있다. 그것에 내 맘도 끄덕여진다. 인터뷰가 으레 가져다 주기 마련인 긴장감과 예상하기 힘든 돌발적 상황들이 그렇게 흐느적 다 풀어진다. 그 흐물흐물해진 공간을 농도 짙은 삶의 이야기가 조금씩 메워가고 있다.


도착한다. 홀푸드마켓 주차장. 지난 몇 년간 학교와 집 외에 가장 자주 오는 곳이다. 밥을 먹기 위함이다. 마트에서 밥을 먹는 일이 잦다. 다행히도 질리지가 않는다. 사실 올때마다 매번 기대를 한다. 들어간다. 아침이라 그런지 신선함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제 막 자리잡은 채소와 과일들이 그 자리에서 제 빛깔을 발하고 있다. 여기에도 꾸밈이 없다. 서로 잘 어울린다. 그게 참 맘에 든다. 옆에서 종이상자를 집어 먹을 것을 담는다. 으깬 감자, 달걀, 버섯, 콩, 흰살생선, 닭, 피망. 상자 안에 막 자리잡은 색깔들이 또 잘 어울려서 맘에 든다. 어찌 뜨끈한 국물과 쌀밥에 비할 수 있겠냐마는 신선해서 봐주기로 한다.



매번 앉는 아래층 출입구가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앉는다. 오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즐겁다. 아까 차에서 듣던 그의 맞장구가 계속 생각이 난다. 상대방의 말에 공감으로 힘을 실어준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소위 지식인들간의 대화라면 더욱 어렵다. 누군가는 자신의 얕음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질문을 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대답이 진부하지 않은 특별한 것임을 강조하며 반론을 제기하기 마련이다. 그간 겪은 대화들은 보통 그랬다. 과감하게 맞장구를 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대화의 맥락 속에 자신을 스며들도록 내버려두는 용기 말이다. 자신을 드러내기 이전에 그 말들의 배경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야만 한다.


과감하게 맞장구를 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대화의 맥락 속에 자신을 스며들도록 내버려두는 용기 말이다.


조금은 지친 것일지도 모르겠다. 비판하고 비판을 받는 일에. 과학을 배우고 있는 학생으로서 그건 피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매우 중요한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란다. 새로운 지식을 만들기 위해선 회의가 필요하지만, 행동으로 이뤄내기 위해선 동의가 필요하다. '그래 그렇지'는 함께 한걸음 내딛을 수 있게 해준다. 맞장구를 친다는 것. 배경 속에 스며든다는 것. 그게 꼭 자기 색을 버리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 배경의 색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




식사를 마친다. 아까 들어왔던 매장을 반대로 걸어나간다.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채소와 과일들이 반갑다. 비슷함 곁에서 자기 색을 충실히 발하는 것들이 멋스럽다.




사진첩: instagram.com @ peter.s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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