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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Sep 30. 2015

9. 우리는 인간적이다.

Parnassus library

차가 사라졌다. 주차타워 7층 매번 세우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녀석이 보이질 않는다. 가끔씩 세우는 8층에 올라가 본다. 역시 없다. 눈에 띄고 싶지 않을 때에도 한눈에 발각되는 하늘색 녀석이건만. 이 정도면 여긴 더 찾아볼 필요가 없다. 고개를 내밀어 타워 옆 지상 주차장을 훑는다. 아찔하다. 역시 없다. 약속 시간이 20분도 채 남지 않았건만. 멍해진다. 그렇다면 한 곳 밖에 없다. 캠퍼스 반대편 연구실 앞 주차장. 며칠 전 밤에 세워놓고 까먹은게 틀림없다. 오늘도 지각이다. 이 고약한 버릇은 오늘도 여전하다. 


가을이다. 하늘이 가을이고 불어오는 바람이 가을이다. 조급함이 다소 누그러든다. 차창을 반쯤 내리고 도시 반대편에 있는 도서관으로 향한다. 먼 동네를 잇는 짧은 고속도로에 오른다. 토요일 점심 무렵이라 그런지 도로 위 차들이 적지 않다. 이미 약속 시간이 다 되어간다. 문자를 보내려 카톡 창을 열었다가 다른 사람들도 늦는다는 문자에 안도하며 창을 닫는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이토록 청명한 토요일에 도서관이라니. 그것도 토론 모임이라니. 언뜻 보기에 썩 자연스럽지 않은 조합이지만, 실은 가장 기다려지는 일정 중에 하나이다. 말못할 매력이 있는 모임이다. 무어라 규정 짓기도 힘든 모임이 벌써 일년 반이 넘도록 그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으니 말이다.  


도서관에 이른다. 도서관에 빼곡히 꽂힌 책들은 과거의 영광을 간직하고 있는 전시품 같다. 대부분 더이상 읽히질 않을 것을 알면서도, 기백을 잃지 않고 한자리들을 차지하고 있다. 이 곳에 오면 일학년 막 입학했을 때가 떠오른다. 학교 셔틀에서 내려 강의 전 잠시 도서관에 들러 숨고르고 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긴장 한 꾸러미 맘 속 가득 울러멘 채로 말이다. 학교라는 공간은 내게 늘 그랬다. 배움과 성장 이전에 늘 부담과 두려움을 가져다 주었다. 어쩌면 학교에서의 마지막 졸업을 앞둔 이 시점에도 난 그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참 아쉬운 대목이다. 그래서 아무 구속력 없는 이 토론의 시간이 좋은가 보다. 



하나 둘 사람들이 작은 방 안으로 모인다. 그러고 보니 오늘 토론의 주제도 아직 모르고 있다. 나만 모르는 게 아니라 다들 모르고 있다. 한 사람 오늘 토론을 이끌 Y 누나만 알고 있다. Y 누나는 영화 '엑스 마키나'의 트레일러를 재생한다. 공상과학물을 좋아하지 않지만 작년에 보았던 영화 '그녀'의 느낌이 너무 좋았기에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 때문이었지는 몰라도) 기대를 해본다. 확실히 요즘 영화 속 인공지능은 인간을 많이 닮아있다. 남성이 연기하던 인공지능들은 이제 여성의 모습을 입고 섬세한 감정선을 드러내고 있다. 겉으로는 인간과의 차이점을 알아차릴 수 없는 인공지능의 출현. 그 때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인간다움이란 게 있을까. 있다면 그 인간다움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어느 시점에 가면 로봇이 인간과 같은 혹은 더 높은 수준의 지능과 기능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동의를 한다. 그리고 그런 막강한 로봇이 철학적 생각을 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불안한 시선으로 상상해 본다. 사실 인간과 로봇을 구분짓는 것에 관한 토론이 새로운 것도 아니고 짧은 시간에 답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로봇을 구분짓는 인간다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거기에 인간으로서 가치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핵심이 담겨있을테니 말이다. 


자유의지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인간에겐 적어도 프로그램된 로봇과는 달리 능동적으로 사항들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냐는 것이다. 한편 이것이 정말 인간 고유의 것이냐는 질문도 나온다. 로봇도 그러하거니와 동물들도 먹고 자고 성행위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사실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란 오히려 상황에 따라 먹고 자고 성행위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 때때로 그럴 수 있음에도 편함을 선택하지 않는 것. 부를 선택하지 않는 것. 복수를 선택하지 않는 것이 인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다. 적어도 이렇게 본능에 따른 당연한 것들을 선택하지 않으려 갈등한다는 것, 이것이 우리를 인간답게 살게 하는 출발점이 된다. 


때때로 그럴 수 있음에도 편함을 선택하지 않는 것. 부를 선택하지 않는 것.
복수를 선택하지 않는 것이 인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다.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났다. 서둘러 토론을 마무리 한다. 지금은 먹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기에. 함께 식당으로 향한다. 오후 햇살이 좋다. 내려다 보이는 동네도 빛을 한껏 머금고 있다. 이렇게 좋은 가을날 컴컴한 도서관에서 토론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여간 '인간적'이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다 싶다. 





사진첩: instagram @ peter.s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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