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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Nov 23. 2015

10. 지금은 없고 그때만 있다.

Mori point

하늘에는 아무 것도 없다. 구름 한 점이 없고 흐린 기색이 없다. 없는 것이 기뻐서 밖으로 나온다. 이곳에 온지 오래지 않은 L군도 함께 나온다. 이 친구에겐 잡티 없는 하늘이 익숙치 않은가보다. 연신 감탄의 말을 내뱉는다. 꽤 오랫동안 이곳에 머문 나에게도 청량한 하늘이 반갑긴 매한가지다. 함께 하늘색 차에 오른다. 차 안의 공기가 따뜻하게 데워져 있다. 토요일 아침의 자발적인 부지런함이다. 기분이 좋다. 남쪽 바다로 향한다.


오늘은 산책길 입구에 차가 적지 않다. 길가의 비좁은 한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차를 세운다. 코끝으로 스며드는 은은한 땅냄새가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L군은 바다 산책에 기분이 들떠 보인다. 상기된 모습을 보니 나도 왠지 맘이 흡족하다. 함께 울타리 옆 굽은 숲길을 지나, 동산 옆 곧게 뻗은 나무로 된 길을 밟으며, 바다가 보이는 갈래길에 이른다. 잠시 멈춰 한숨 크게 들이쉰다. 이곳에선 비릿한 정겨운 바다내음이 나질 않는다. 언덕길을 택해 오른다. L군에게 잠시 후 보게 될 광경을 약속하는 말을 건네며 말이다.  



역시 실망스럽지 않다. L군도 기뻐한다. 한동안 옆으로 쭉 뻗은 일직선의 바다 끝을 바라본다. 짙은 결을 지닌 푸른 물이 비어 있는 하늘에 경계를 긋는다. 눈을 돌려 언덕 위를 본다. 오늘은 다른 때보다 찾는 이들이 많다. 하늘과 땅 사이 점이 된 사람들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긴바다를. 짧은바다를. 응시하며. 훑으며. 무얼 보고 있을까. 먼바다의 여유있는 느긋함일까. 앞바다의 부지런한 잰걸음일까.


어찌 이곳에 자꾸 오게 되는 것일까. 그리 새로운 것도 없는데. 어제 본듯한 모습이 오늘이고 내일도 오늘 같은 모습일텐데 말이다. 사실 그런 평범함 때문에 이 곳을 꾸준히 찾는 이들이 몇 없을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것이 반짝일 때 눈이 가기 마련이니까. 알이 들어차 영글었을 때 손이 가기 마련이니까. 그 사이의 시간은 사라진다. 여기와 저기에 속하지 못한 삶의 대부분을 떠받드는 긴 시간들은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채 흩어지곤 한다.


지금은 빛이 나지 않고 흐물흐물하다. 그래서 친숙하고. 그래서 유연하다. 너와 나의 지금이 그렇게 서로 위로가 된다.


지금은 없고 그때만 있다. 반짝이던 그때를 회상하고 여물게 될 그때를 고대하는 동안, 지금은 지워진다. 잊혀져 가는 지금은 빛이 나지 않고 흐물흐물하다. 그래서 친숙하고. 그래서 유연하다. 너와 나의 지금이 그렇게 서로 위로가 된다. 그러니 우리의 지금을 바짝 끌어안고 가자. 거기에 긴바다의 넉넉함과 짧은바다의 성실함을 담고 가자. 서로의 바다에 발을 담그자. 애정어린 발걸음을 이웃의 바다로 내딛자.




지금은 여기에 있다.





사진첩: Instagram @ peter.s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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