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민 Mar 17. 2016

11. 비와 꽃과 꽃 같은 것들.

Heath Ceramics

또 비가 온다. 이번 주말도 어김없다. 겨울 끝자락에서 다시 시작된 이 비는 봄의 싱그러움을 지워버릴 태세로 연일 세차게 내려치고 있다. 그래도 오늘은 아직 빗방울이 그리 굵지 않다. 나는 의식 있는 시민이니깐 오랜 가뭄을 해소하는 이 단비를 고맙게 생각해야지. 비 오는 주말에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다 문득 식물원을 떠올린다. 웬 뜬금없이 식물일까 스스로도 멈칫한다. 아마도 며칠 전에 긁어 모으던 녹색 식물이 어우러진 인테리어 사진들 때문일 게다. 무어라도 살아있는 것을 곁에 두고 보고픈 메마른 맘 때문일 게다.


흩날리는 비를 애써 외면하면 걷는다. 내가 식물을 위한 하루를 보내게 되다니. 몇 년전 봤던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토마스 쿡이 나와서는,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식물을 키우세요'라며 권하던 장면이 스치운다. 풍성한 컬의 오대오 단발머리를 매만지며 식물 키움의 이로움을 설파하는 그의 얼굴은 사뭇 진지했다. 그땐 이 사람 뭐야, 이름만큼이나 엉뚱하기 그지 없네 하면서도, 남자가 홀로 식물과 교감하며 돌본다는 행위가 은근 매력적이라 생각했었다. 나중에 나도 사람 아닌 다른 살아있는 무언가를 곁에 둔다면 동물이 아니라 식물이 더 어울리긴 하겠다는 생각에 피식 웃었었는데. 얼굴로 날아드는 비에 고개숙여 찌질하게 걸음을 재촉하는 지금, 나는 몇 년전 그 남자의 말에 설득되려 하고 있다.


식물원에 가더라도 일단 밥은 먹고 가자 싶어 홀푸드에 들린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려는데, 꽃을 한아름 품에 안고 가게를 나오는 여자가 보인다. 매번 매장 입구에 진열된 꽃들을 보면서도 한번도 우리 집에 가져다 놓아야 겠단 생각은 좀처럼 해보지 않았었다. 진열된 식물들이 꽤나 이국적이라서 내 곁에 두기엔 그 생경함이 영 마뜩잖아서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다를 수도 있겠다 싶다. 아니나 다를까. 매장 이곳 저곳에 튤립이 한가득이다. 봄맞이 세일 중이다. 얼른 점심으로 먹을 것들을 주워 담고, 색색의 튤립들을 찬찬히 둘러본다. 빨간 색은 언제나 나에겐 과하다. 보라색도 그렇다. 다홍색은 괜찮겠다 싶은데 시들하다. 개중에 아직 봉오리를 채 열지 않은 노란색 튤립 한 움큼이 눈에 띈다. 주위 아이들보다 키도 작은 녀석이 맘에 밟혀 데려오기로 한다.


식물원에 가더라도 일단 커피는 마시고 가자 싶어 까페에 들린다. 정말 식물원에 가고 싶긴 한걸까. 꽃을 한 단 샀으니 이대로 돌아갈까도 싶다. 실은 이 까페에 붙어 있는 전시 공간을 보고 싶다. 까페가 있고, 함께 도예 공장이 있고, 그 사이에 전시실이 있다. 전시 공간은 생각보다 높고 넓다. 때묻은 반투명한 유리창문이 거대한 한 면을 우직하게 메우고 있다. 몇몇 사진과 도예가 전시되어 있는데, 그리 좋은지는 모르겠다. 전시 공간이 전시품을 만들고 있다 생각이 든다. 그보다 창문이 좋다. 언제나 비가 올 것만 같은 창문이다. 얇은 창가에 무심하게 놓인 화분들에서 한 줌의 생명들이 제멋대로 자라고 있다. 창문이 두껍고 불투명해서 빛이 잘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랑곳 않고 잘 자랄 녀석들처럼 보인다. 게다가 서로를 마주하고 큰 창에 기대어 있으니 적어도 연민의 정이 일진 않는다.



이제는 정말 식물원에 가자. 차를 몰아 공원으로 향한다. 차창 밖으로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다. 와이퍼가 부지런히 그들을 닦아낸다. 비오는 날인데도 공원에는 차들이 빼곡하다. 내 차를 다른 차들 틈새에 끼워넣고, 우산을 받쳐들고, 이름도 우아한 셰익스피어 가든으로 걷는다. 마주쳐 반대로 걸어오는 가족들이 행복해 보인다. 비가 더욱 큰 소리를 내며 바람과 같이 내린다. 접이 우산이 이리저리 휘청거린다. 식물원 입구가 어디인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먼 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공원 입구에서 보았던 하얀 실내 식물원이 떠오른다. 차로 돌아가자. 실내에서 편안히 감상하는 편이 좋겠다.


나는 정말 식물원에 가고픈 걸까. 차를 돌려 하얀 식물원 앞 계단에 다다른다. 그새 내린 비는 차 옆에 물웅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그 옆에는 내리는 비 사이로 요란스레 피리를 불어대는 사나이가 있다. 다시 검은 우산을 받쳐 들고, 빨간 계단을 올라, 하얀 식물원 앞에 이른다. 매표소 앞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 그래 물론 공짜는 아니겠지. 입장료를 흘깃 보고 좁은 식물원 입구를 빽빽이 메우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 내게 한 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우산이 바람에 또다시 휘청거린다. 뒷좌석에 놓고 왔던 노란 튤립 한 다발을 떠올린다. 그보다 더한 아름다움은 저 식물원 안엔 없을 거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



우리 집에도 식물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비록 살아있진 않지만, 몇달 전 말려두었던 장미 한 움큼이 고스란히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빛이 바래도 서로간의 어울림은 잃지 않고 있다. 새로 사온 노란 튤립 한 움큼을 꺼낸다. 겉 포장지에 직사광선은 피하라고 되어있는 것이 의아하다. 꽃은 다 햇빛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창문에서 한 발짝 떨어진 책상 위 선반에 두기로 하고, 포장을 뜯는다. 생각보다 꽤 이파리가 무성하다.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이파리들 중 반 정도를 뜯어낸다. 싱크대 옆에 놓인 뜯겨진 튤립 이파리들이 흡사 대파처럼 보인다. 제법 정갈해진 노란 봉오리들을 길쭉한 유리병 물 속에 담근다. 새삼 어린 녀석들을 사오길 잘 했다 싶다. 아직 꽃망울을 터트리면 며칠 걸릴테니 오래 두고 볼 수 있겠지.



기대는 언제나 보기 좋게 엇나간다. 하루가 지나고 노란 튤립은 이미 봉오리를 열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튤립은 손을 수줍게 오므린 것처럼 보이는 것이 만개한 모습일 줄 알았는데, 하루 만에 움켜 쥔 손바닥을 펴기까지 하고 있다. 내가 사온 녀석들이 튤립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정지한 듯 보이는 식물이 이리도 역동적이었나 당황스럽다. 식물은 애정만큼 자란다고 했는데, 하루 사이 내 맘을 너무 많이 줬나 보다. 오래 함께 하지 못할 것 같아 적잖이 섭섭하다.



비가 그쳤다. 오랜만에 화창한 날이다. 길지 않은 시간동안 활짝 열렸던 노란 꽃은 이제 익어가는 벼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다. 꽃잎에도 예전의 생기를 찾기가 힘들다. 비가 퍼붓던 날 힘차게 피었던 꽃잎이 맑고 맑은 날 시들어 가는 게 가엽다. 말없이 유리병의 물을 버리고 조금만 남겨둔다. 부디 지금의 모습만이라도 간직하기를.


비가 퍼붓던 날 힘차게 피었던 꽃잎이 맑고 맑은 날 시들어 가는 게 가엽다.



사진첩: instagram @ peter.sohn

매거진의 이전글 10. 지금은 없고 그때만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