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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Oct 13. 2016

12. 1929-2016

Bayside Village

진동이 울린다. 아침 알람이겠거니 끄고 더 자려고 폰을 집어 들었는데, 아버지의 전화다. 전화하실 시간이 아닌데 무슨 일일까. 잠결에 버튼을 옆으로 민다. 아버지의 얼굴이 나타난다. 이윽고, "동민아, 할아버지 소천하셨다." 아버지의 담담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짧은 탄식과 함께 몸을 일으키고 불을 켠다. "할아버지 소천하셨어." 방금 전과 같은 말이 되풀이 되어 흘러나온다. 회색 방 한켠 침대 위에 홀로 앉아, 할아버지가 몇 시간 전 응급실에 가셨고 혈압이 떨어져 수혈하던 중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는다. 비로소 아버지가 계신 뒷 배경이 사무실이 아니라 빈 장례식장인 것이 눈에 들어온다. 


미국에 있는 동안 몇 번은 생각해 보았다. 몇 년 전 할아버지께서 많이 편찮으셨을 때였던 것 같다. 만약에라도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이 소식을 듣게 된다면 어떡해야 할까. 바로 비행기 티켓을 끊어 한국으로 가야지. 그리고 그 다음은, 다음은 더 상상하고 싶지 않아 그림을 그리다가 말았었다. 하지만 막상 장례와 발인이 만 하루 남짓 밖에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 그러니 너는 이번에 오지 않는 게 좋겠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무어라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몇 시간이 흐르고 집 안을 서성이다 출근을 했다. 하루에 한번 있는 한국행 직항 비행기 시간은 그렇게 지나갔다. 



불과 한 달여 전이다. 손주의 결혼식에 참석하시기 위해 대구에서 서울까지 먼 길 올라오신 할아버지를 뵌 것이. 20년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연세가 드시고 크고 작은 병환이 있을 때마다, "내가 니 박사 받는 거는 봐야지. 내가 니 결혼하는 거는 보고... 니 교수 되는 거는 보고..." 말씀하시던 것이. 언젠가부터 '봐야지'는 '볼 수 있겠나'가 되었다. 그 중 두번째 바람을 이루시던 날, 할아버지의 모습은 많이 쇠약해져 있었다. 평생 그리던 광경이 눈 앞에 있는데, 좀처럼 환하게 웃지를 못하셨다. 가족 친지 속에서도 한 구석에 조용히 계시던 것이 맘에 걸렸었는데. 정작 나는, 결혼 당일의 분주함이 핑계가 되어 따뜻한 말 한마디,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소천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결혼 사진들을 뒤져보면서 겨우 그 날의 할아버지의 흔적을 되짚어 본다. 수천 장의 사진 중, 불과 손에 꼽을 수 있는 정도의 사진 속에서만 할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의 결혼을 오랜 시간 가장 간절히 바래 온 몇 안 되는 분 중 한 사람이, 결혼의 기억 속 가장자리에 겨우 남아있는 것이 너무 죄송하고 안타깝다. 폐백실에서 친지들과 인사 나누시며 가만히 박수치시던 모습, 사돈 어른께 누구보다도 공손하게 머리 숙여 인사하시던 모습 속에서, 할아버지의 기쁨을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손주를 끔찍이도 아껴 주셨던 할아버지. 할아버지에게 첫 손주인자 유일한 손자였던 나는, 어릴 적부터 '너는 이 집안의 기둥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며 자랐다. 어린 마음에 부담이 되었을 법도 한데, 작은 성취에도 마음 다해 기뻐해 주시는 할아버지의 애정이 그 부담보다 크게 다가왔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손주 사랑은 짝사랑이라던데 하시며, 늘 '전화 좀 자주 해 도고' 부탁하시던 할아버지. 그 애정어린 부탁 덕분에 주말이면 어김없이 할아버지께 전화를 드리곤 했는데, 매번 '공부하는 거 힘들제, 몸 잘 챙겨가면서 해라, 할아버지는 다 괜찮다 걱정하지 마라.' 똑같은 말씀을 하시면서도 손주 전화 덕분에 힘이 난다며 항상 반가워 하셨다. 그렇게 습관처럼 매주 드리던 전화가 8년 전 미국으로 오면서 바쁘고 번거롭다는 몹쓸 핑계로 일주일에 한번에서 몇 주에 한 번으로 다시 몇 달에 한번으로 뜸해졌다. 오랜만에 전화를 드릴 때면, '이제 전화도 좋지만, 편지 하나 써서 보내 도고' 하시곤 했는데 끝내 정성스런 손편지 하나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들을 제때 하지 못하고, 소중한 가족과 충분히 시간 보내지 못하는 것, 이제 그만하고 싶다. 정말 그러지 말자. 


80세가 되는해, 처음으로 교회 가시던 할아버지. 어릴 적 할아버지 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들 중 하나는 증조 할머니와의 화투였다. 현관을 지나 들어서면 처음으로 보이는 오른쪽 방에는 비녀를 꽂고 앉아 맞아주시던 큰할머니가 계셨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신 할아버지는 큰할머니를 평생 모시고 사셨고, 차례상에는 해마다 큰할아버지의 위패가 정성스레 모셔졌다. 이렇게도 잔 정이 많으시고 효심이 지극하신 할아버지께 이따금 예수님을 전하였지만, 조상님께 드리는 제사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 할아버지께는 결코 편치 않았을 것이다. 수십년 동안 제안을 미루시던 중 여든이 되던 해, 거듭된 어머니의 권유로 할아버지는 집 근처 교회를 할머니와 함께 찾아가 첫 예배를 드리셨다. 때마침 휴학으로 한국에 있던 나는 교회 내 최고령 새신자가 탄생하는 순간의 증인이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옆 자리에서 사뭇 진지한 자세로 말씀을 들으시고 그간 전혀 듣지 못했을 찬송을 곧잘 따라 부르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다시금 떠오른다. 두고두고 애석한 것은, 오래오래 소망해 왔던 일이 현실이 되던 그 순간에, 나는 유학 생활 첫 학기에 맛본 좌절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귀중한 시간들을 오롯이 축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부모님도 가장 기뻐해야 했던 순간에 마음이 무거웠음은 지금도 참 후회되는 일이다. 


2년전 찾아온 치매의 위기. 예순이 지난 후로는 입원이 잦으셨던 할아버지는 2년여 전 다시 한번 병원을 찾으셨다. 이제 연세가 있으셔서 그러시겠거니 했는데, 생각보다 입원 기간 길어졌다. 급기야 의식을 잃기도 하시고 정신적으로도 온전치 못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몇 달간 입퇴원을 반복하던 중, 아무래도 치매 증상이 나타나는 것 같으니 가족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투약을 시작해야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부모님도 지속되는 간호로 몸과 마음이 지친 상황이었는데, 이제 나아질 희망이 없는 기약 없는 더 어두운 시간이 다가오는 듯 했다. 하지만 몇 주 안에 믿기 힘든 소식이 들려왔는데, 할아버지의 병세가 급호전 되시고 곧 퇴원해도 괜찮겠다는 소식이었다. 후에 할아버지가 직접 고백하시길, 자는 중에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아주 간절하게 기도를 드리며 죄를 회개하게 되었는데, 그 다음 날부터 사고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하셨다. 이 믿기 힘든 얘기 앞에,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할렐루야를 외치면서도 오히려 맘속으론 긴가민가 의심하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이제 그 일을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할아버지에게 2년의 시간을 은혜로 더 허락하신 것이라 믿는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할아버지께서는 평생 보길 원하시던 새 가정의 출발에 함께 하셨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할아버지와의 기록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게 너무나 애석하다. 연세가 드시면 으레 다른 어르신들이 그렇듯 사진 찍는 걸 꺼려 하시기에 함께 찍은 사진들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 과거 어릴 적의 몇몇 사진들만이 어렴풋한 기억을 전한다. 다섯 살 꼬마의 손을 잡고 집 앞 빙판길을 위태로이 걷던 순간. 손수 가꾼 식물들과 멀리서 공수해 온 귀한 돌이 있는 정원에서 유치원 유니폼을 입은 손주를 카메라에 담던 순간. 그 후로 시간은 뚝뚝 끊겨 이야기가 되지 못한채, 이따금 우리가 함께 있었음만을 전하고 있다. 지난 달 추석 즈음에 할아버지댁을 방문했던 아내가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에 담긴 나와 영상통화를 하고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표정이 너무도 생생해서 '이 사진 두고두고 볼 사진이 되겠네' 하고 아내에게 얘기했었는데, 이 사진이 마지막 사진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젊은 날 전쟁을 겪으시고. 일찍이 가장으로 가족의 생계를 꾸리시고. 동생들과 친척들을 돌아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늘 자식들 걱정에 애태우시고. 손주들을 끔찍이도 아껴주시며. 고단하였을 삶을 인정과 성실함으로 감당하신 할아버지, 더 살갑게 사랑한다 자주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변함없는 아껴주심이 제겐 고된 시간을 견디는 넉넉한 힘이 되었습니다. 이제 고통 없는 천국에서 다시 뵐 때까지 편히 쉬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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