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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Oct 18. 2016

13. 식탁의 힘.

Outer Sunset

설렌다. 하얗게 비어있는 벽 위에 가느다란 램프를 걸어 볼 생각에. 엄밀하게 말하면 거는 게 아니라 붙이는 거다. 최근 이사를 몇번 하면서 새로이 빈 벽을 갖게 되곤 한다. 허전한 공간에 무어라도 장식하고픈데 못질을 할 여건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예전엔 한국에서 가져온 다부치 한움큼 - 껌 같이 생겨서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접착물 - 이 있어 요긴하게 썼더랬는데 아쉽게도 미국에선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발견한 쓰리엠 스티커 덕에 벽에 사물들을 붙이는 재미를 다시 쏠쏠히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 마주한 방에 수북이 쌓여있던 짐을 하나 둘 차게차게 정리해 넣고 이제 가장 재밌고 엉뚱한 일을 할 차례가 되었다. 조그만 쓰리엠 스티커 두개를 위아래로 대보니 램프의 집게 뒷면의 크기랑 딱 맞아 떨어진다. 기분 좋은 예감으로 살포시 벽에 붙여본다. 은은함이 머리맡의 불빛으로 안성맞춤이다.  


어느덧 밤 열한시가 다 되어간다. 같이 사는 이들이 있으니 오늘 짐 정리는 여기에서 멈추는 게 좋겠다. 오랜만에 몸을 집중해서 움직여 그런지 출출함이 찾아온다. 라면을 먹자. 라면을 그리 즐겨먹는 것은 아니지만 요 한두달 거의 먹지 않다보니 라면을 떠올리는 순간 이미 반가움이 샘솟는다. 그러고보니 요 한두달은 이사한다 여행한다 일한다는 핑계로 집에서 무얼 해먹은 적이 거의 없었다. 부엌 찬장을 여니 신라면이 있다. 올해 먹은 라면은 죄다 검은색이었는데, 이건 빨간색이다. 검은색 특유의 구수함이 좋았었는데 솔직히 막판엔 질리는 감이 없지 않았었다. 꾸미지 않은 직설적인 맛을 가진 빨간색이 오늘은 낫겠다 싶다. 처음으로 이 집의 스토브를 켠다. 전기스토브라 그런지 이내 빨간 열선이 나타나며 온기를 내뿜는다. 집이라는 공간에 잘 어울리는 따듯함이다.   



냄비를 찾는다. 이리저리 부엌 찬장들을 열어본다. 라면의 지름보다 약간 클 것 같은 쇠냄비가 보인다. 이전 집에는 큰 냄비 뿐이었다. 늘 냄비의 사분의 일도 안 되게 물을 채워 라면을 끓이곤 했다. 라면이 익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조리된 라면 국물보다 빈 공간이 더 큰 냄비를 들여다 보는 건 왠지 서글픈 일이었다. 그래서 이 작은 쇠냄비가 참 반갑다. 특별할 것이 없는 손놀림으로 특별히 무언가를 더하지 않은 라면을 끓인다. 넘칠듯 말듯 냄비의 테두리에서 국물이 잔망스럽게 보글댄다. 뚜껑을 슬쩍 덮는다. 다행히 넘치지는 않는다. 일이분을 더 기다리다 애타는 맘으로 뚜껑을 열어본다. 뜨거울까 조심스레 손을 갖다 대었는데 이 뚜껑에는 고맙게도 열이 전달되지 않는다. 흐뭇하다. 국물이 졸아서 다소 빡빡하게 되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다. 역시나 뜨겁지 않게 배려된 손잡이를 움켜쥐고 식탁을 향해 걷는다.


혼자 앉기에는 다소 과분하게 넓은 식탁 위에 앙증맞은 냄비를 올려놓는다. 없어서는 안 될 알맞게 식은 밥을 옆에 둔다. 식탁을 마주하고 의자를 반쯤 빼어 앉는다. 얼굴 밑에서 올라오는 부드러운 온기에 마음이 평온해 진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 잠잠한 공기를 타고 차분하게 전해지는 초침 소리를 듣는다. 행복한 순간이다. 정말 예기치 못하게 행복한 순간이다. 서서히 불고 있는 라면과 그득히 쌓인 밥 한 공기, 그리고 노오란 서양란 꽃이 식탁 위에서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늘 이국적이라 좀처럼 맘에 와닿지 않던 서양란의 꽃들도 지금은 이뻐 보인다. 역시 밥은 식탁에서 먹어야지. 이 평범한 진리가 오롯이 경험되는 순간이다. 지난 수년간 집에 식탁다운 식탁이 없었음을 깨닫고 흠칫 놀란다. 그간 나의 식탁이 되어 준 책상, 간이 의자, 카운터는 실은 식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음에 이사갈 신혼 집에는 고운 식탁부터 마련해야지.  



김서릴까 안경을 내려놓는다. 톡 쏘는 국물을 흰밥으로 보듬어 가며 조촐한 식사를 마친다. 후식으로 딸기와 청포도까지 곁들이니 조촐함을 넘어 호사로움이 느껴진다. 아내가 이 순간 곁에 없는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다. 아내에게 폰으로 식사보고를 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옥빛이 칠해진 선풍기 같은 히터를 켠다. 딸기와 청포도를 계속 먹는다. 히터가 좀 촌스럽긴 해도 내뿜는 온화한 불빛과 뜨끈함은 정말 매력적이다. '원적외선 참숯 전기스토브' 라는 이 히터 이름에 '신라면 딸기 청포도' 만큼이나 어찌할 수 없는 난감함이 배어있지만, 부족하지 않고 만족스럽다.


김훈 님의 산문 '라면을 끓이며'가 생각나는 밤이다.  


파는 라면 국물에 천연의 단맛과 청량감을 불어넣어주고, 그 맛을 면에 스미게 한다. 파가 우러난 국물은 달고도 쌉쌀하다. 파는 라면 맛의 공업적 질감을 순화시킨다. (...) 파가 우러난 국물에 달걀이 스며들면 파의 서늘한 청량감이 달걀의 부드러움과 섞여서, 라면은 인간 가까이 다가와 덜 쓸쓸하게 먹을 만하고 견딜 만한 음식이 된다. (...) 나는 라면을 먹을 때 내가 가진 그릇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비싼 도자기 그릇에 담아서, 깨끗하고 날씬한 일회용 나무 젓가락으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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