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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의 Konadian Life Apr 14. 2022

알바비로 차를 산다고!?

딸아이가 몇 년간 모은 알바비로

새 차를 샀다.










2011년 10월에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샀던 새 차인 한국산 기아자동차의 (쏘)렌토를 10년 이상 잘 사용하다가 2021년 11월에 사고로 폐차를 하게 되었다.


2012년에 캐나다 영주권을 받기 위해서 미국과 접해 있는 국경까지 왕복 14시간을 함께 다녀왔던 렌토. 첫째인 아들 녀석이 고등학교 2학년 때 렌토로 운전을 배워서 운전면허를 취득했었고, 대학에 들어가서 3학년과 4학년 사이에 ATCO에서 1년 동안 코업 인턴쉽으로 근무하던 시기에 출퇴근을 함께 했었다. 첫째 아이가 밴쿠버로 분가한 이후로는  둘째인 딸아이가 우리의 렌토를 타고 운전을 배웠고 운전면허를 취득해서 알바를 하러 갈 때, 운동이나 사물놀이 등의 동아리 활동을 하러 가는 길을 늘 함께 했었던 렌토였다.

10년이 넘도록 우리 가족과 함께 했던 친구. 제일 도움을 많이 주었던 친구였는데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니 아쉬운 마음이 너무나 컸다.

렌토가 떠나고 11월부터 눈이 내리는 계절이 시작되어서 우리 가족은 내가 이용하던 SUV 하나로 겨울을 지내기로 하고 세컨드 카를 구입하는 것은 새봄으로 미루었다.

소렌토 사고 현장

해가 바뀌고 둘째인 딸아이가 교육대학을 마치는 시기가 되었다. 캐나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앨버타주에서 보통의 경우 교대를 졸업하면 한국처럼 임용고시를 보는 것이 아니고, 4월 중순까지 대학교 4학년 수업을 마치면 5월부터 교육청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6월에 졸업식을 끝낸 다음 방학인 7- 8월에 교육청에서 진행하는 인터뷰를 통과하는 경우 9월부터 보조교사로 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할 수 있는데, 딸아이는 학교성적 우수와 교생실습 우수자로 교육청에서 4월 초에 연락을 받고 인터뷰를 마친 상태라서 당장 5월부터 임시교사로 근무하게 되었다. 급히 출퇴근을 위한 차를 구입해야 해서 우선은 인터넷으로 차를 검색해보고 자동차 딜러샵을 몇 군데 들러서 견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팬데믹과 자동차 반도체 부족으로 인해 공급 물량이 지속적인 수요를 감당해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딜러샵 앞의 주차장에 그 많던 차량들은 더 이상 볼 수가 없었고, 정작 필요한 차는 직접 공장으로 주문을 한 다음 4개월에서 5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요즘의 모습이다.

예전처럼 캐시 리베이트로 몇천 불을 깎아서 차를 사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수의 딜러샵에서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차를 사야 하는 우리 가족은 어쩔 수 없이 딜러샵에서 보관 중인 차량에서 고르는 방법으로 차를 구입해야 할 수밖에 없다.


아내와 나는 로운 세컨드 카를 구입하게 되면 딸아이가 더 많이 이용할 것 같아서 차를 구입하는 비용의 일부를 딸아이가 부담하는 쪽으로 이야기해 봤는데 다행히 딸아이가 본인이 모아 놓은 돈을 차 구입에 보태겠다고 해서 아내와 나는 새로운 차를 구입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차 구입비용 문제를 생각하고 나서는 차를 어떤 것으로 사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곳은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오면서 추운 날씨가 계속되기 때문에 앞으로 운전에 꼭 필요한 안전장치를 포함한 몇 가지를 소형 SUV에 추가하니 차 가격은 캐나다 달러로 3만 불에서 4만 불 전후가 되었다.

어쨌든 우리에게 필요한 옵션을 모두 갖춘 차를 찾아야 했는데 색상이 마음에 들면 우리가 원하는 옵션이 아니었고,  옵션이 마음에 드는 경우에는 딸아이가 원하는 색상이 맞지 않아서 여러 군데 딜러샵을 찾아봐야 했다. 며칠 동안을 인터넷으로 찾다가 마침내 색상과 옵션이 맞는 차를 찾았다.


딸아이를 데리고 딜러샵에 방문해서 몇 개의 차를 직접 운전해보고, 차량 가격에 대한 상담을 하면서 딜을 진행하는 동안 내 딸이 이제는 정말 어른이 다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기가 원하는 차종과 옵션에 대한 의견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금액의 가감을 계산하며 하나라도 의문이 생기면 즉시 질문해서 답을 얻는 대화에서 나는 마치 변호사를 대동하고 상담에 참여한 느낌이 들었다.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와 나새 차 구입에 필요한 돈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를 진지하상의하게 되었다.


딸은 아들과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파트타임 일을 하고 열심히 저축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일요일이면 늦잠도 자고 쉬고 싶을 텐데, 새벽 다섯 시 반부터 스타벅스로 출근을 하고, 주중에는 학원에서 진행하는 학생들 과외를 지도하고, 별도로 고등학생 영어와 수학을 지도하는 알바를 몇 년째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학교에 친구들이 화장을 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본인은'화장에 관심도 없을뿐더러 화장하는 시간에 차라리 잠을 더 자겠다.'는 주관을 가지고 있다.


알바를 해서 버는 돈은 차곡차곡 통장에 쌓였고, 가끔씩 가족들에게 통 크게 기부도 하고 대출?도 해주면서 우리 집 안에서의 Noblesse Oblige를 보여 주었다. 몇 해 전에 내가 직접 우리 집 지하공사를 할 때에 둘째가 '엄마 아빠께 알바로 모은 5천 불을 기부하겠다'라고 하며 공사비에 보탰었다.


https://brunch.co.kr/@peteryi/16


그 후 몇 차례 장학금을 받은 것으로 한국에 계신 외할머니 수술비에 조금 보태시라고 백만 원, 외할아버지 치과 치료에 쓰시라고 백만 원을 기꺼이 보내드리기도 했다. 그리고 첫째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학자금 대출을 받았던 대학 등록금을 매월 갚아나가야 할 때가 되었을 때에도 다달이 은행이자를 내는 것보다 일시금으로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이 좋겠다는 아내의 의견에 선뜻 동의하면서 지금 자기의 은행계좌에 있는 목돈 2만 불을 빌려 줄 테니 우선 오빠 학자금 대출 전부 갚는데 보태, 나중에 자기가 대학 졸업할 때까지 오빠가 돈을 모아서 원금을 돌려주는 방법이 좋겠다고 이야기해서 정말 고마웠다. 그렇게 아들이 1년 동안 코업 인턴쉽 기간에 모아놓은 돈과 아내와 내가 일부를 부담하고 딸아이가 융통을 해준 덕에 아들의 학자금 대출을 일시금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런 둘째가 3년이 지난 이번에는 새 차를 구입하는 상황에서 생각보다  금액을 통장에 보관하고 있어서 아내와 나는 다시 한번 놀랐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했던 스타벅스 알바, 대학에 들어가서는 학원 강사로, 고등학생 과외까지 쓰리잡을 하면서 꾸준하게 저축한 결과는 대단했다.

처음에는 그냥 하는 말로 '차 구입에 돈이 꽤 들어가니까 너도 보태라'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을 꺼낸 건데 어느새 새 차 이야기는 둘째가 새 차 구입비용 거의 전부를 다 낼 수 있다는 말로 진행되고 있었다. 차를 구입하면 당장 5월부터 학교에 출퇴근을 하면서 차를 더 많이 사용할 것이니까 본인이 돈을 다 내거나 일부를 부담하더라도 엄마 아빠보다 더 낼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 통장에 차를 사는데 절반 이상을 부담할 정도의 몇만 불이 있다는 것과 당장 은행에 있는 것에 오빠한테 빌려 주었던 학자금 대출 비용 일부를 받으면 차를 구입하는 비용을 직접 해결할 수 있다는 것과 대학 등록금도 몇 차례 받았던 장학금과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말에 아내와 나의 딸아이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더 커졌다.


대학에 들어가서부터도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고 알바를 세 가지씩 겸하면서 등록금은 본인이 해결할 것이라고 마음먹고 차곡차곡 저축을 해서 이제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한 것 같다는 말을 하는 딸아이가 내 자식이지만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우리동네에 자리하고 있는 스타벅스

딸아이의 말에 따르면 2020년에 팬데믹으로 스타벅스가 잠시 문을 닫았던 기간에도 계속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었기에 스타벅스 자체에서 주는 지원금(매월 600불 3차례)도 받았고, 연방정부의 CRB 지원금(매월 2000불 최대 4개월)도 받을 수 있었다면서 실질적 지원제도가 통장 금액을 불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같은 시기에 함께 파트타임으로 일하다가 팬데믹 직전에 그만둔 친구는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고 하는 딸아이의 말을 듣고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을 되새겨 보았다.


나는 가끔씩 아내와 함께 우리 아이들이 한국에서 살았다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까라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두 아이의 안정된 교육을 제일의 목표로 삼고, 많지도 않았던 해외출장에서 영어 몇 마디만 하던 실력도 아닌 실력만 믿고 맨땅에 헤딩하는 이민을 해서 지금도 아내와 나는 좌충우돌의 생활을 하고 있지만 후회는 하지 않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아들과 딸자기들의 역할을 잘해주었기에 가능한 일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딸아이가 돈을 많이 모아서가 아니라

학교에서 학업을 잘 받으면서 본인의 적성과  의지에 맞게 취미활동은 물론 경제활동까지 병행하면서 좋은 결과를 스스로 만들어 내준 것이 고맙고 대견할 따름이다.


캐나다에서 영주권자 이상의 거주자는 누구든지 공부를 하고 싶으면 대학에 갈 수 있다. 나이도 상관이 없다. 학생이면 누구나 정부기관에서 학자금을 대출해주고 취업이 되고 난 이후에 대출을 갚도록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에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한다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바탕에는 일관성 있는 캐나다 교육시스템과 톱니바퀴 같은 정부기관의 협력이 잘 유지되고 있어서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본다.

 사실 나는 좋은 아빠가 아니다. 이곳에 와서 아이들이 대학에 다니는 동안 등록금이 얼마인지 모르고 살았다. 한국에서였다면 두 아이 등록금에 이런저런 스펙 쌓는 비용까지 부담했어야 했을 테고 취업이 안 되는 경우에 취준생이나 공시생이 될 자식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정신없이 돈을 모았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들과 딸 두 아이 모두 대학교 등록부터 졸업할 때까지 스스로 은행이나 학교에 관련된 서류를 제출하고 은행계좌로 일처리를 했기 때문에 매년 등록금을 납부하는 것에 대한 내용을 거의 모르고 지냈었다. 다만 이공계인 아들은 4학년 졸업 때까지 수업을 많이 들었어야 했기 때문에 교육대학에 다닌 딸보다 학자금이 더 많았던 것으로만 알고 있다.


렇게 캐나다를 이야기하면 사대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사는 무식한 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캐나다에서 살고 있어서 무조건 이곳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경험한 이곳 캐나다의 교육시스템과  정부기관의 역할은 젊은 세대들이 모든 것을 포기할 정도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한국에서 충분히 참고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은 역시 한국이다. 내 나라 말로 대화를 하고, 어디를 가도 입에 맞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돈을 내더라도 내가 원하는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한국이 나는 더 좋다. 나이가 더 들수록 한국이 그리워지고 그곳에 살고 있는  부모와 형제가 보고픈 마음은 더욱 커지는 것을 느낀다. 팬데믹이 좀 더 잠잠해지면 바로 한국으로 날아갈 생각으로 여행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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