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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의 Konadian Life Apr 19. 2020

지하에 집짓기

지하에 집짓기. 1

방을 만들자!



조카의 유학과 지인의 아들을 유학시키는 과정에서 우리 아이들의 학교 선택이나 등록에 관한 경험을 통해서 조언을 해주다가 유학기간 동안 아이들을 보살펴줄 가디언을 찾아봐야 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나에게 그 일을 맡기고 싶다는 말이 나왔다. 이곳 캐나다에 정착하면서부터 주변에 사는 한국사람들이 '친척 아이들은 절대 데리고 있으면 안 된다. 나중에 관계가 안 좋게 끝난다.' 라는 말을 해주는 경우가 많았던 터라 나도 조심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처음에는 서로 신경 쓰고 좋은 말만 오가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유학하는 아이들과의 의견이 다르거나 그들의 부모와 오해가 생기기 쉬워서 문제가 커진다는 것이 요점이었다.

가디언이라는 갑작스러운 일을 내가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당장 아내가 우리 두 아이 외에 중학생과 고등학생인 남자아이 둘이나 더 돌보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한국과 달리 이곳은 점심을 도시락으로 챙겨 보내야 하는 도 부담스러운 부분이었다. 나보다 아내의 의견이 더 중요할 것 같아서 어떤 생각인지를 물었더니 엄마 잃은 조카를 데리고 있는 게 마음이 놓일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다행히도 조카의 아픈 마음을 헤아려 주려는 아내가 고마웠다.

사실 조카는 유학을 결정하기 몇 달 전에 암 치료를 받던 엄마를 잃었다. 사촌동생이 몇 년 동안 제수씨를 병 수발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그간의 정성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 후에 사촌동생은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여행 삼아 조카 두 명을 데리고 미국에 계신 고모들과 작은아버지 댁도 방문하고 나서 캐나다에 있는 우리 집에도 다녀 가기도 했었다. 사촌동생은 초등학교 6학년에 엄마를 잃고 중학교 생활에 힘들어할 둘째를 사촌동생 혼자서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첫째와 함께 돌볼 수 없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곳에 다녀 간 직후 둘째와 상의한 끝에 조카를 유학시키고자 나에게 부탁을 했던 터였다. 아내와 함께 심사숙고한 끝에 유학생 두 아이를 데리고 있기로 하고 방도 만들기로 했다.


우선 지하공간에 방을 만들고, 화장실을 들이기 위해서 재료를 사기 전에 밑그림이 필요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전문가가 아니라도 나 같은 아마추어가 사용할 수 있는 공간 설계 프로그램이 앱으로 나온 것이 몇 개가 있어서 그중에 가장 쉽게 설계를 시작할 수 있고, 도면을 3D로 보여주는 것으로 골라서 바닥을 실제 측정한 수치를 데이터 항목에 넣어서 기본 넓이를 세팅을 하고 방과 벽의 위치를 잡아서 구조를 설계해보기를 여러 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태생이 문과인 나에게 난생처음으로 설계라는 것을 해보는 것 자체로도 엄청난 도전이었기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나 스스로가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로 흥미진진한 생각도 들었다.


서피스에 그려본 처음 도면

설계도면을 그리는 동안에 방의 위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했다. 지하로 계단을 내려와서 네모난 콘크리트 바닥으로 맨살을  드러내고 있는 공간을 보면서 이곳에 벽을 어디에 세우고 방을 어떤 모양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3월 초 에드먼튼은 아직 하얀 눈으로 덮여 있는 겨울이라서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기도 해서 설계외에 필요한 공구를 준비하지도 못하고 도면 만들기에만 우선 공을 들였다. 아이들이 사용하다 남긴 연습장을 들고 방을 이곳저곳으로 옮겨 그려보다가 화장실의 위치를 먼저 결정했다. 집을 건축할 때 지하실용 하수구를 큰 파이프로 미리 지하실 바닥 위에 조금만 올라오게 만들어 놓은 자리가 있었기 때문에 공사 규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는 파이프를 옮기지 않고 양변기 부분을 세팅하는 것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지하실 공사전 모습과 바닥 하수도 파이프

바닥 면적이 넓지 않은 지하 공간이라서 작은방 하나에 거실 공간이 있고 세면대와 양변기 그리고 샤워를 할 수 있는 부스 하나만 설치하면 적당할 크기였지만 갑자기 아이들이 둘이나 늘어나는 이유로 아들과 딸의 방을 지하로 옮겨야 해서 방을 부득이하게 두 개로 만들어야 해서 거실 공간이 반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다. 좀 더 여유 있게 거실 공간을 만들어서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작은 영화관을 세팅하는 것이 희망사항이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공사전 탁구대가 자리했던 모습과 설계도면

설계도면을 완성하고 도면에 그려진 구조에 맞게 콘크리트로 매끈하게 처리되어 있는 바닥에 연필로 선을 긋기 시작했다. 도면에 그려진 방 위치에 맞게 바닥 위로 곧은 직선들을 그어 내려 앉히자 내가 생각하고 있는 벽들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면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지하 전체 공간을 기준으로 남쪽 방향 오른쪽에 붙어 있는 계단을 내려와서 정면에 자리하고 있는 하수구 원관이 있는 곳에 양변기를 앉히고 변기를 기준으로 왼쪽으로는 작은 세면대를 놓고, 오른쪽 구석으로 샤워부스를 만든다. 그렇게 화장실 벽을 두르고 나서 가운데 자리에 거실 공간을 잡고 원래 거실 공간으로 생각하던 북쪽 방향으로 절반을 잘라서 방을 하나 만드는 벽을 세우고 서쪽 방향인 왼쪽 공간에 방 하나를 더 들이는 벽을 세우면 계단 밑으로 자리하는 보일러와 온수기 설치가 되어 있는 공간이 막아지면서 기본적인 위치 세팅이 끝난다.'


3D 시뮬레이션

이렇게 머릿속에서 위치들이 그려지면서 기본 도면을 생각하고 바닥의 선들이 삐뚤어진 것이 없는지 길이와 각도를 여러 차례 확인에 확인을 반복했다. 기본 도면에서 조금이라도 다르게 선이 그려진다면 새로운 나무기둥을 세우는데 벽이 삐뚤어질 수도 있고 지하실 천정에 처리되어 있는 전기선과 히팅 시설 그리고 수도관이나 하수관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서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여러 번 확인을 했다.



이제 기둥으로 들어갈

나무를 잘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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