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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Feb 16. 2024

행복은 세 잎 토끼풀

나는 지금 행복하려 합니다




6주 만에 발목 깁스를 풀고 세면대 앞에 당당히 섰다. 양발을 조심스레 즈려밟고 거울을 보며 위아래 씩씩하게 양치질을 한다.




 ‘아 이게 얼마만인가? 나 지금 많이 행복하네.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단 말인가?’ 고스란히 서있던 기억을 뒤로하고 두 발로 당당히 서서 오늘을 살아갈 수 있음에 나도 모르게 가늘게 새어 나온 한마디.

 “나 지금 행복해”

 거부할 틈도 없이 세차게 밀려오는 밀물에 나도, 내 마음도 놀라 줄행랑치긴 마찬가지였다.




행복 너! 별거 아닌데 그동안 너무 튕긴 거 아녀?”

행복은 눈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든 클로버가 아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세 쪽의 토끼풀에 지나지 않았다. 그동안 행복의 시뻘건 거짓말에 속은 기분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는 폭신한 솜사탕도 별난 알사탕도  아닌 평범한  눈깔사탕이었다.








자꾸 행복해지려 한다.

요즘 들어 행복을 느끼는 빈도가 조금씩 늘어난다. 행복의 빈도만큼 불행의 빈도도 늘어나지만 말이 씨가 되어 행복의 빈도가 상승장을 고 있다.

'여물어 가는 중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동안 잊고 지냈던 사회적 동물로 부대끼며 사는 삶을 하나둘 건져 올린  수확의 결과물이다. 자꾸 손이 가게 만드는 단짠단짠 뿌리칠 수 없는 미혹의 맛이랄까?




어느 순간 넓은 대인관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사람으로 인해 순식간 쓰러졌다 또다시 사람으로 인해 순식간 피어나는 사람의 일이 비루해졌다. 꽤 오랫동안 좁고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가지치기를 심하게 했다. 신경 쓸 일이 적으니 마음은 고요하고 한적하니 편안했지만 사는 재미는 많이 줄어들었다. 인간의 양면성을 적절히 지닌 나는 정신을 차리고 넓고 깊게 서로를 챙기며, 사랑하며, 부대끼는 삶을 선택했다. 내가 사람이니 사람 만나는 일을, 더불어 살아가는 일을 충실히 하고 싶었다. 나를 우선에 두고 인간관계를 재정비하니 그곳에서 묻어나는 달콤한 맛이 과히 나쁘지 않다. 사는 재미가 솔솔 묻어나니 시간은 더욱 쏜살같이 도망간다.









아침에 베란다 창문으로 햇살이 내비치니 화초들이 일광욕을 즐긴다. 감사하다.



아들이 밸런타인데이라고 꽃다발을 들고 와 당분간은 나도 꽃인데 꽃무덤에 갇히게 생겼다.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해 온라인서 구입을 했다. 설렌다.


 

8년째 같은 아파트서 배송일을 하시는 택배기사님께 문고리로 간식을 선물했다.



벌써 금요일이라며 “이번 주말은 뭐 할까?” 물어오는 옆지기에게 눈을 찡긋해 보인다. 시장도 보고, 주말 카페도 가고, 영화도 보고...

벌써부터 콧구멍이 뻥 뚫렸다.



생각해 보니 행복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걷을 수 있는 빨랫줄 뽀송뽀송 향기 나는 옷이었다.







행복은 불행과 함께 온다고 했던가?

삶은 누구에게나 기쁨에 비례하는 슬픔을 강요한다. 나에게 불행이 7할이라면 행복은 3할이다. 제풀에 지쳐 불행을 인생사 당연한 듯 껴안으니 행복도 안아달라 칭얼거린다. 마음의 크기를 키우니 행복이 질투라도 하듯 불행과 한판 할 기세다.

금차에 5할 대 5할 안 되겠니?




행복한 일이 생기면  어딘가 숨어있던 불안이 불쑥 튀어나온다. 잠자리에 누우면 검은 그림자는 물먹은 하마가 되어 더욱 나를 짓눌러 버린다. ‘신은 사탕 하나 건네주시고 내게 또 어떤 아픔을 요구하실까?' 행복이 바로 옆에 있는데 벌어지지도 않을 불행부터 끌어당겼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니 행복한 순간은 행복하지 않았고 불행한 순간은 삽시에 불행해졌다. 찾아올 생각 없는 불행을 대문 열고 “어서 옵시오”하는 사이 나의 일상은 회색빛으로 물들어 갔다.







이런 우매한 아줌마를 봤나.

슬픔이 두려워 기쁨까지 짓누르니 행복은 잠시, 불행은 쭉 상승곡선을 타고 날라 오른다. 기쁨이 찾아오면 사랑스럽게 안아주면 되었고 시련이 찾아오면 담대하게 맞아주면 될 일을 어찌 그리 하수처럼 살았나 모른다. 인생 단맛 쓴맛 고루 느껴고 나서야 진정한 행복의 맛을 알아가는 중이다. 완전한 인생 완벽한 행복도 없듯 인생은 공짜도 없다.




다행이다.

늦게라도 행복에 맛을 알았으니.

자세히 들여다보니 행복한 삶은 별개 아니었다. 욕심을 내려놓고 그냥, 마냥, 실실 즐겁게 소소한 노력을 쌓아가며 살아갈 때 생겨나는 것이었다. 행복도 모른 체 평범한 일상을 이어갈 때가 지난 행복이었다. 가끔 자신의 행복과 불행의 기준도 물어봐주고, 행복할 자유와 불행할 자유를 쿨하게 인정도 하며 행복의 부피를 키워나갔어야 했다.




김유은 작가님은 “행복의 본질은 숨바꼭질과 닮아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는 것."이라 했다. 슬픔이 오면 다시금 기쁨이 오니 너무 슬픔에 매몰되지 말라는 당부도 했다.




오늘도 나는 내 몫으로 숨겨진 빨랫줄의 옷들을 수시로 모조리 찾아내며 살았다.


오늘은 다섯 개의 행복 꾸러미를 품에 안았다


내일은 또 몇 개나 찾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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