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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May 31. 2020

성공을 결정짓는 마법의 타이밍

[카논]의 지위를 얻은 사람들의 특징

21세기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저널리스트로 평가받고 있는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에서 '포브스'가 선정한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한 75인의 명단을 보여준다. 75명의 명단에는 워렌 버핏도 있지만 19세기 중반에 태어난 미국인이 열네 명이나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이 명단은 인터넷 시대를 맞으며 순서가 완전히 바뀌었지만 당시 명단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19세기 중반은 철도가 건설되는 것을 시작으로 기존의 질서가 완전히 바뀌며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진 특별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말콤 글래드웰은 이를 이렇게 정리한다. 


그들의 역사를 구분 짓는 진정한 요소는
그들이 지닌 탁월한 재능이 아니라
그들이 누린 특별한 기회이다.


19세기 중반에 그들이 누린 특별한 기회는 책 <유러피안>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철도의 등장이었다. 철도가 개통되면서 이전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모든 것들이 쉽게 연결되기 시작한 것이다. 철도는 공간을 축소시키고 시간을 절감시켰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용이 가능해지면서 유럽을 하나로 묶었다. 모든 문화가 쉽고 빠르고 저렴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거대한 흐름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그 격변의 시기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철도는 오페라의 인기를 확산시켰다. 제조업이 발달하면서 피아노가 널리 보급되었고, 악보에 대한 수요가 많아졌다. 금속인쇄술이 개발되면서 악보를 비롯한 출판 시장이 커졌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의무 교육이 시행되면서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문자 해독률이 높아지면서 책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외국 문화에 대한 수요로 번역 시장이 커졌고 인쇄술과 철도의 발전으로 책의 가격은 더 저렴해졌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특별한 수혜자들이 등장했다. 


(출처: The British newspaper archive)


기념할만한 가치가 있는 위대한 예술가의 위대한 작품을 '카논'이라고 불렀는데, 19세기의 마지막 몇십 년 동안에 유럽의 카논이 결정된 것이다. '고전'이라는 용어는 이 때 생겼다. 


'고전'이라는 용어는 18세기부터 '오래된 음악'에 적용되었다. 19세기 초반 몇십 년 동안에 고전이라는 말은 전반적인 탁월함의 특성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830년대에 이르러 고전 음악은 베토벤, 모차르트, 하이든 등 사망한 작곡가들의 주된 작품을 가리키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들의 작품은 1830년대에서 1840년대에 이르는 동안에 일차적으로 공연되는 카논 대부분을 구성했다. -<유러피언>, p.212


음악 분야에서의 카논의 대표적인 세 사람은 베토벤, 하이든, 모차르트였다. 그들은 당시 가장 존경받았던 음악가들이었지만 그들의 음악이 선호되었던 것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연주하는 데 비용이 저렴했기 때문이다. 작고한지 많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1) 오래된 악보에 대해서 저작권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었고 2) 연주자들이 이미 여러 번 연주해 보았기 때문에 리허설을 덜 해도 되며 3)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새로운 음악보다 잘 팔렸다. 오페라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곡을 연주하는 위험 부담을 줄이면서 이득을 올리는 쉬운 방법이었다. 


모든 것이 시장의 법칙을 따랐다. 출판사들도 가격을 낮추고 더 많이 팔기 위해 오로지 '성공한 작품들만 출판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흐름에 따라 1890~1910년 학교 교과서에는 대부분 고전 작품들이 실렸다. 1800년에 연주되던 음악 레퍼토리의 80%가 생존 작곡가들의 음악이었다면, 1870년에는 80%가 사망한 작곡가의 곡이었다. 소수의 예외가 있긴 하지만 이 때 '카논'의 지위를 부여받은 오페라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오페라 공연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의 성공은 정말 재능이 아니라 시대를 잘 타고나서였을까? 


성공을 결정짓는 마법의 타이밍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아무런 재능이 없던 평범한 사람들이 우연히 시대를 만나 성공을 쉽게 거머쥐는 것 또한 분명히 아니다. 그들은 기회가 찾아왔을 때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이 기술을 연마하는 동안 세상이 바뀌었고 그것이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특별한 노력은 기본이다. 하지만 그들이 기울인 노력에 대해 보상받을 수 있는 시대를 만났다는 것은 성공이 개인적인 재능이나 특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도 보여준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는 재능을 탓할 수 없다면 태어난 시대 잘못 타고났다며 불평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9세기 기회의 시기에도 로시니와 같은 사람은 있었다. 그는 1940년대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희극 오페라의 작곡가였지만 기차 타는 것을 거부하고 마차로 여행을 다녔다. 그는 철도 시대의 새로운 조건에 적응하지 못하는 작곡가였다. 


확실한 것은 두가지다. 지금 이 시대가 기회였는지 아닌지는 우리가 판단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각자의 역량에 따라 그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어차피 내가 태어난 시대를 바꿀 수는 없다면 이 시대를 탓하기 보다는 지금 이 시대의 흐름을 읽고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찾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특별한 기회는 이미 지나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특정한 공간에서 언제든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러피언>은 나무와 거대한 숲을 동시에 보게 해주는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변화에 대응하는 다양한 반응을 보면서 지금의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 철도와 기술의 발달로 기존의 질서가 파괴되고 새로운 질서가 생기는 200년 전의 모습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오프라인 문화가 온라인으로 대대적으로 바뀌고 있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능성을 찾는 일이다. 어쩌면 지금으로부터 200년 후 누군가 대한민국의 지금 이 순간을 역사적인 기회의 순간으로 기록하고 사람들이 그 글을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결국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는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반복된다. 



참고

<유러피언>, 올랜도 파이지스

<아웃라이어>, 말콤 글래드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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