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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May 17. 2020

운명을 바꾸는 사람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누군가는 역풍을 만나면 쓰러지고, 누군가는 역풍을 동력으로 삼아 하늘로 올라간다. 나는 항상 이점이 궁금했다. 난관이 닥쳤을 때 주저앉는 사람들과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뭐가 다를까? 둘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점이 있었다. 나는 그 답이 회복 탄력성에 있다고 생각했다. 회복 탄력성(회복력)은 역경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인생관을 유지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학대를 경험했던 아이는 그렇지 않았던 아이보다 정신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 중에서 누군가는 어른이 되어 정상적이고 건강한 삶을 살아간다. 그럼 회복 탄력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1954년 하와이군도 북서쪽 끝에 있는 카우아이섬에서 진행된 사회과학 연구는 그 이유를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누군가'의 존재에서 찾았다. 당시 카우아이섬 주민은 가난과 질병에 시달렸고, 주민 대다수는 범죄자, 알코올 중독자 혹은 정신질환자였다. 제대로 된 학교 교육도 이루어지지 않아서 청소년 일탈도 심각했다. 이 섬에서 불행이란 예정된 운명이었다. 30년이 지난 후, 심리학자 에이미 워너는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201명을 대상으로 추적 조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1/3에 해당하는 아이들은 학업 성적도 좋았고 좋은 직업을 가졌으며 자기 효능감 또한 높았다. 그들의 공통점은 가족이든 이웃이든 학교 선생님이든 누가 되었든 간에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 이해하고 받아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인간의 전 생애를 연구한 조지 베일런트도 <행복의 조건>에서 이 연구 결과를 뒷받침한다. 분명히 행복한 유년기를 보낸 이들은 어른이 되어도 화가 치미는 상태에서도 느긋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이 연관성이 끝까지 지속되는 것은 아니었다. 행복한 유년기는 미래의 고통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키워 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우한 유년기가 반드시 불행을 안겨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활기차고 건강한 노년은
뜻밖의 행운이나 유전자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다.
- 조지 베일런트 


나는 회복탄력성은 어린 시절 안정적인 관계 형성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만약 그렇지 않은 경우라고 하더라도 열심히 노력하고 꾸준히 치료를 받는다면 인생을 얼마든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다. 환경설정에 따라 꾸준한 습관을 형성하고 의식적인 노력과 적절한 피드백이 있다면 뇌 가소성에 의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일침을 준 책이 나타났다. 


뇌가 노년기까지도 가소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마음먹은 대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싶은 유혹이 들게 만든다. 내가 보기에는 뇌의 가소성은 매혹적이지만 지나치게 단순화된 개념을 믿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근육을 단련하듯 뇌도 의식적으로 단련해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달성할 수 있다고 말이다. 성장형 사고방식이 사회에 퍼져 있다 보니 모든 목표나 욕망을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함께 퍼지고 있다. 하지만 신경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는 그다지 설득력 있는 슬로건이 아니다.
-<운명의 과학>, p.27~28 


뇌의 가소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인간이 내리는 상당수는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 수준에서 일어나는 자동적 과정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운명의 과학>의 저자인 생물학 박사 한나 크리츨로우는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과정이 생리학과 유전에 의해 결정되고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내가 자유 의지라고 믿었던 (인생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 않다는 이야기다. 크리츨로우 박사는 회복 탄력성에는 유전적 요인도 관여한다고 말한다.


뇌유래신경영양인자라는 유전자는 기존 뉴런의 생존을 뒷받침하고, 새로운 뉴런의 성장을 촉진하고, 뉴런들 사이의 연결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는 유용한 화학물질을 생산한다. 이 유전자의 변이는 BDNF가 아주 높은 농도로 발현되도록 지시하는데, 이 유전적 변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뇌가 아주 튼튼하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뇌 영역인 해마가 다른 사람들보다 커서 삶은 유연하게 바라보고 새로운 사고의 틀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발달되어 있으며, 결국 이 유전자 변이를 보유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회복력이 더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 학대나 방치를 경험하고도 정신건강상의 문제가 생기지 않는 10~25퍼센트의 아동은 이 BDNF 유전 암호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한다. 


그렇다면 회복탄력성은 유전적 요인이 전부일까? 물론 아니다. 생물학적 개념으로 보더라도 회복력은 고난에 반응하는 수많은 서로 다른 행동을 아우르는 대단히 복잡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운명의 과학>에서는 여러 관점을 통해 회복력은 누구한테 원래 있거나 없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것이며, 이렇게 메커니즘이 복잡할 때는 지나친 단순화로 인과 관계를 만드는 것을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결국 회복탄력성을 만드는 것은 어떤 요인 한 가지가 아니라 위에 언급된 모든 것들이 될 수 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유전적 요인, 유년시절의 환경,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누군가, 신념 등...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 중 한 가지가 유일한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중요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영향을 미치죠.
하지만 영향을 미치는 것과 결정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제 과거는 하나의 요인이죠. 제 성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 중에 완전히 결정론적이어서
그것 말고는 미래에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요?

-로완 윌리엄스 Rowan Williams


그동안 나는 유전적 요인들에 대해서 너무 무지했던 것 같다. 생물학적 운명론을 믿게 된 것은 아니지만 <운명의 과학>을 읽으며 조지 베일런트의 말처럼 인생은 행운이나 유전자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결정한다고 확신했던 내 생각이 100% 옳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생물학적 한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고려하고라도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있다. 


최근의 수많은 연구들은 자유의지에 대한 개인의 믿음이 약해지면 자기중심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이 늘어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대체적으로 미리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자기가 무슨 짓을 하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사회의 규칙을 무시하고 욕망을 충실히 따르는 성향이 있다. 자유의지에 대한 신념은 화상일지도 모르지만 사회가 매끄럽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운명의 과학>, p.226


결국 자유의지가 있다는 믿음이 강할수록 회복 탄력성도 높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바꿀 수 없다고 느끼면 무기력해질 뿐이다. 따라서 회복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신과 자신의 상황에 대해 유연하고 열린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우리는 능동적으로 연습할 필요가 있다. 책에서는 운동과 명상과 휴식을 추천했지만, 나는 독서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책 한 권으로 내 생각이 이렇게 유연해질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참고

<운명의 과학>, 한나 크리츨로우

<행복의 조건>, 조지 베일런트

<회복탄력성>, 김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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