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노예해방 역사에 있어서 에이브러햄 링컨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에는 누구도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미국은 "링컨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링컨은 사회적 혼동 속에서 산파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고 평가받는다. 그가 이렇게 높은 평가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길고 고통스러운 전쟁을 경험하면서도 사람들이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쪽을 선택하도록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특히 남북전쟁에 참여하고 있던 병사들이 링컨을 지지하면 개인적인 위험과 복무 기간이 연장된다는 걸 알았음에도 링컨에게 표를 던졌다. 병사들 뿐 아니라 내각과 국민들 모두는 어떻게 링컨의 말에 설득될 수 있었을까?
노예에게 자유를 허락함으로써
우리는 자유로워야 할 사람들에게 자유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허락하는 것과 우리가 지키는 것이 똑같이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최고의 희망을 훌륭하게 지키지 않으면
초라하게 잃고 말 것입니다.
링컨은 노예 해방 선언을 공표하기 수개월 전, 의회에 보낸 연차 교서에서 이렇게 발표했다. "자유로워야 할 사람들에게 자유를 보장하는 것" 그 핵심에는 완벽한 논리가 있었다. 그 논리는 링컨이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노예제도에 대한 논쟁을 단편적으로 정리한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A가 당연한 권리로 B를 노예화할 수 있다는 걸 확정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B가 동일한 방식으로 논증해 A를 노예화할 수 있다고 증명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럼 A는 백인이고 B는 흑인이라고 말할 텐가. 피부색이 기준이라면 엷은 색은 짙은 색으로 노예로 삼을 권리가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조심하라. 이 법칙에 따라 당신은 길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의 노예가 될 수 있다. 그의 피부색이 당신보다 엷다면 말이다! 정말 피부색이 기준이라 생각하는가? 백인이 흑인보다 지적으로 우월한 까닭에 흑인을 노예로 삼을 수 있다는 뜻인가? 이렇게 생각하더라도 조심해야 한다. 이 법칙에 다르더라도 당신은 길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의 노예가 될 수 있다. 그가 당신보다 지적으로 우월할 수 있을 테니까!"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 p. 205-206
50년 동안 리더를 연구하고,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도리스 컨스 굿윈의 책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에서는 이 짤막한 기록을 단순한 논리 전개 이상이었다고 설명한다. A와 B라는 적대적인 두 관점의 주장과 설득으로 구성한 드라마를 통해 당시 복잡하게 전개되던 논증과 논쟁의 핵심을 보여준 것이다. 이 책에서 내 마음에 박혔던 구절이 바로 이 부분이다.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조심하라. 이 법칙에 따라서 당신은 길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의 노예가 될 수도 있다." (아... 이보다 더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을까?)
<피부는 인생이다>의 저자 몬티 라이먼은 이렇게 사람을 집단으로 구분하는 것은 '타지화' 개념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람은 정보를 처리할 때 복잡한 현실을 일일이 고려하기보다 명확히 구분된 항목 따라 처리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타인을 나와 다른 존재로 구분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농담으로 때로는 모욕적으로 타인을 쉽고 부정적으로 정형화한다는 것이다. "그들과 우리"로 나누는 그룹 정체성은 동물과 인간, 낯선 사람과 동족으로 나눈다. 유대인을 학살했던 홀로코스트도 자신들은 미개인과 다르다고 보았던 그리스인들도 노예 제도와 같은 생각의 뿌리에서 나왔다.
하지만 과학계와 인류학계가 실시한 피부색 유전학 연구에서는 "모든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동일한 한 가지 인종에 속한다"는 결과를 공통적으로 확인했다. 피부색을 다양하게 만드는 다양한 유전자 변이가 서로 조상이 다른 인구 집단 간에도 나타났다는 사실과 타고난 피부 색소의 양 차이가 표시된 세계지도와 NASA가 위성으로 촬영한 자외선 노출 농도를 나타내는 지도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은 다양한 유전자가 다른 종류의 멜라닌을 조절하면서 나온 결과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피부가 조상의 특징을 그대로 나타낸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피부로 구분되는 타지화 개념은 색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피부 질환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가난하거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불결하거나 저주를 받았다는 등의 여러 이유로 수치스럽거나 부끄럽게 여겨져 왔다. 환자의 피부가 손상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부정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탄자니아에서는 백색증 환자의 신체가 행운과 부, 정치적인 힘을 가져다준다는 믿음 때문에 백색증에 걸린 아이들의 망가진 팔과 다리가 엄청난 값에 팔리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부로 인해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나는) 피부로 대변되는 겉모습으로 나와 다른 사람을 얼마나 구별해 왔을까.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피부가 인생을 결정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200년 전 링컨이 했던 말, "자유로워야 할 사람들에게 자유를 보장하는 것으로 우리가 허락하는 것과 우리가 지키는 것이 똑같이 영광을 누릴 것"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다시 말하면 그들을 지키지 못하면 우리도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를 지킬 수 있을까? 일단 시작은 나를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부터. 우리와 그들을 구별하지 않는 것부터가 될 것이다.
참고
<피부는 인생이다>, 몬티 라이먼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 도리스 컨스 굿윈
<Evolution of Skin Color in Human>, Elon University
<Nina Jablonski breaks the illusion of skin color>, Ted Talk
sponsored by Rok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