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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Apr 19. 2020

달리면서 발견한
두가지 즐거움

혼자~ 혹은 함께!

지난 3월 22일, 조정경기장에서 10km를 달렸다. 이 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운동이라고는 1도 관심이 없던 내가 4개월 동안 훈련을 마치고 10km 마라톤 도전을 마무리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꾸준히 달리면서 훈련했다고 해도 10km는 너무 길었다. 약 한 시간 5분을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거리... 힘들지만 중간에 멈춰 걷는 것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어쨌든 해낼 거라고는 믿었지만, 절대 수월했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겨우 겨우 달렸다. 달려도 달려도 끝이 안 보였고 숨이 차서 호흡도 어려웠고 다리는 무거워서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힘들었다. 결국 10km를 완주하기는 했지만, 내가 끝까지 달릴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혼자 달리러 나가는 날은 '오늘은 반드시 10km를 달리겠다'고 결심했어도 완주한 적이 없었다. 제일 많이 달렸던 것이 최대 8km.. 힘든 순간에는 이정도면 됐다며 늘 쉽게 타협하고 무너졌다. 그런 내가 2~3월 약 한달 동안 10km을 모두 다섯번을 뛰었다. 여기에는 확실한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함께 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남편과 주말에 두 번, 체인지 러너스 우리 팀과 훈련 두번 그리고 마지막 결전의 날까지...


'함께라서 가능했다'는 (클리쉐가 넘치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모여서 같은 목표를 위해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더 큰 어떤 힘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체인지 러너스'라는 이름을 만들고 함께 뛰기로 했을 때, 함께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막연한 지식을 이제는 몸으로 체감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런 것이다. 체인지 러너스 마지막 날 터닝포인트를 찍고 돌아오는 동료들을 맞은 편에서 볼 수 있었는데, 나보다 훨씬 빠른데도 불구하고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들의 얼굴을 보면서 이런 느낌이 들었다. '아. 저 분도 나랑 똑같이 힘들구나. 그래도 최선을 다 하는구나. 나도 더 열심히 해야지.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느낌이 이런 것 같다. 나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이 느낌적인 느낌을 책 <움직임의 힘>에서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해 준다. 저자 켈리 맥고니걸은 이것을 "집단적 즐거움" 혹은 '집단적 열광' 이라고 설명한다. 내가 달리면서 느낀 고통과 상대방의 고통을 동일시 하면서 연결되었다고 느낀 바로 그 느낌이다. 


집단적 열광은 생존 본능 (협력할 필요성)과 연결되어 있다 - <움직임의 힘>, 89p.


올림픽 경기를 시청할 때 선수를 응원하면서 내 팔에 힘이 들어가곤 한다.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보면 나의 뇌에 그 움직이는 이미지에 대한 피드백이 전달되어 내 몸이 다른 사람의 몸까지 연장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연대적 운동감각'은 그룹에게 일체감을 준다. 그리고 이렇게 뇌가 인지하는 영역이 나에서 우리로 확대 되는 것은 자신감과 사교성의 향상으로 이어진다. 


결국 동기화된 움직임이 이끄는 집단적 즐거움은 사람들끼리 강한 신뢰를 형성해 서로 나누고 돕도록 이끈다. 누군가와 나란히 걷거나 박자를 맞추거나 심지어 플라스틱 컵을 좌우로 흔드는 동작을 함께하는 행동이 선행된다면 투자게임에서 더 협력하고 대의를 위해 더 희생하며 낯선 사람을 기꺼이 돕는다는 실험도 있다. 함께 움직이면 함께 움직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나선다. 그래서 인류학자들은 집단적 즐거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집단적인 즐거움이 내가 달리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함께 하면 더 잘 하게 되긴 하지만, 함께 해야만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혼자 달릴 때도 특별한 즐거움을 느끼는데 이건 뛰고 난 뒤의 성취감과는 다르다. <움직임의 힘>은 이 느낌을 "쾌락 광택제"라고 설명한다. 


굉장히 즐거운 상황에서 냄새나 소리, 맛, 풍경, 감촉을 반복해서 경험하면, 그 느낌이 즐거운 경험으로 암호화되어 기억 속에 저장된다. 설사 처음엔 무덤덤하거나 불쾌한 느낌이었더라도 나중엔 뇌에서 굉장히 유쾌한 느낌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일단 이러한 연관성이 형성되면, 평범한 감각 자극은 쾌락 폭탄이 되어 엔도르핀과 도파민을 마구 분출한다. -<움직임의 힘> p.71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행동에 대한 '쾌락 광택제'가 있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냄새를 이야기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실제로 자동차 경주 대회에서 팬들은 고무 타는 역한 냄새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요가 매트에서 나는 냄새, 수영장의 소독약 냄새, 축구장의 잔디 냄새를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나도 나만의 쾌락 광택제(즐거움의 신호)가 있다. 달릴 때 차가운 바람이 내 얼굴을 스쳐가는 촉감, 비가 온 뒤 흙에서 나는 풀 냄새, 항상 듣는 약간 느리지만 경쾌한 음악소리... 그리고 하늘의 모습이다. 


나는 하루 업무를 마치고 저녁 식사 준비를 하기 전 6시를 전후한 시간을 활용해서 달리곤 하는데, 그 때 내가 달리는 트랙에서 해가 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노랗고 큰 해가 점점 산으로 들어가고 땅거미가 지는 모습을 한 바퀴를 돌 때마다 같은 자리에서 목격하는데, 이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이 아름다움을 기록해 보려고 달리면서 동영상 촬영 ㅎㅎ 후 편집


달리는 즐거움을 두가지(집단적 즐거움과 쾌락 광택제)를 조금 거창하게 설명하긴 했지만, 이런 이론을 바탕으로 이해를 해보니 설명할 수 없었던 막연한 느낌에 근거가 생긴 것 같다. 왜 함께 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꾸준히 달려야 하는지 더 확실한 이유가 생겼다. 어쨌든 결론은 이거다. 혼자여도 괜찮지만 함께 하면 더 좋다. 혹은 반대로, 함께하면 좋지만 혼자해도 괜찮다! 그러니 아직 운동을 할까 말까 하시는 모든 분들, 일단 한번 나가 보시길! ^^


#씽큐온 #움직임의힘 #달리기 #운동 #러너스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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