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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Jun 14. 2020

내가 죽은 이후
내 프라이버시는 어떻게 될까

몇 주 전 출근길 라디오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논쟁이 벌어질 수 있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코너였는데, 이 날은 '인터넷 검색 기록휴대폰 비밀번호, 둘 중 하나를 공개해야 한다면'에 대한 내용이었다. 둘 중에 무엇을 선택할지 잠시 생각했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선택이 아니었다. 둘 다 중요했다. 이 사적인 데이터들이 비밀이 많건 개방적이든 간에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이 그 모든 정보들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고 상상한다면 껄끄러운 감정부터 생긴다. 이런 감정은 당연하다.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것은 공공연하게 합의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디지털 세계의 사후 세계>는 누군가의 죽음 이후 그가 남겨 놓은 디지털 정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그것을 디지털 '먼지'라는 단어로도 쓰고 있는데 사실 죽고 난 뒤에 그 먼지들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 수도 있다. 일단 내가 죽고 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데?!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위 라디오에서 청취자들은 인터넷 검색 기록이나 휴대폰 비번을 알려주는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것은 사후에도 마찬가지다. 일단 다음의 문제들만 생각해봐도 벌써 머리가 아프다.


문제 1, 내가 밝히고 싶지 않던 비밀이 내가 죽은 뒤에 들추어지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어떤 반론도 제기할 수 없다)

문제 2, 누가 내 정보를 관리하거나 상속받아야 할지 불분명하다.

문제 3, 상속받는 사람이 프라이버시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다르게 다루어질 수 있다.

문제 4, 나의 엄마는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페이스북 친구로 등록되어있지 않아서 '추모 모드'로 전환된 나의 계정에 접근조차 불가능하게 될 수도 있다.


저자 일레인 카스켓은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에서 이런 문제로 인해 발생되는 사례 들을 소개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불륜을 죽고 나서 남편에게 알리게 된다. 6년 동안 한 집에 살며 함께 사업을 하던 동성애 부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는 갑작스러운 한 사람의 죽음 이후 그의 가족에 의해 모든 추억을 삭제당하고 부정당한다. 누군가는 아버지의 노트북이 자녀들에게 넘겨지기 전에 그의 사생활을 지켜주기 위해서 관련 자료들을 모두 삭제하는 한편 다른 누군가는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딸의 살해범이 프로필 사진에 함께 찍혀있는 것을 보고 그 사진들을 삭제하고 싶어 하지만 이미 추모 모드로 변경된 딸의 계정은 전부 삭제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수많은 사례를 보며 나의 사후 디지털 먼지들을 어떻게 다루는 것이 좋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일단 위 사례에서 보듯이 상황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고, 지역에 따라 문화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며, 현재 법 개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소셜미디어를 잘 알지 못하며, 죽음은 모두가 회피하는 소재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법 개정은 아주 아주 아주 느린 속도로 진행될 것이다. (저작권법은 당사자가 살아있고 이해관계가 명백한데도 국제적인 저작권 협약인 '베른 조약'이 맺어지기까지는 약 40년이 걸렸다...) 법이 해결해줄 수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내가 살아있을 때) 찾아봐야 한다. 다음은 일레인 카스켓이 정리한 디지털 흔적에 대한 가이드라인 중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3가지를 정리한 것이다.



1. 권리를 위임받을 사람을 정하고, 그에게 전달할 마스터 패스워드 체계를 구축한다. 

팁 1) 구글에는 [휴면 계정 관리인]이, 페이스북은 [기념 계정 관리자]가 있으니 이에 대해 알아보자. 완벽하지는 않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팁 2) 소중한 사람들에게 배신감이나 혼란을 안겨줄 만한 무언가를 보관하고 있다면 미리 정리해두자. (<유러피언>에서 투르게네프는 폴린과의 비공식 결혼을 위해 자신이 희생한 것에 대해 느끼는 감정- 엄청난 실망과 분노-를 표현한 시가 폴린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 두려워 투르게네프가 불태웠다. 현재 이 시는 전해지지 않는다)


2. 당당한 큐레이터가 되어 디지털 자서전을 만들고 관리한다.

[디지털 자서전]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 바로 페이스북 등의 소셜미디어가 바로 디지털 자서전이 될 수 있다. 죽음을 예견하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기록이기 때문에 더 자연스러우면서도 내가 죽은 뒤에 내가 기억되는 방식을 내가 정할 수 있다.


나는 첫 아이를 임신하면서 티스토리에 육아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는데, 돌아보니 이 기록들이 아이들과 나에게는 소중한 유산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강력한 기억들이 벌써 희미해지고 있는데 그때 그 감정들을 기록해 놓은 것은 참 잘한 일 같다. 이렇게 내 삶에 의미 있는 것들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건강한 삶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내가 죽은 후에 아이들이 내 드라이브 안에 의미 없는 무수한 사진들을 정리할 필요 없이 내가 스스로 내 인생의 소중한 장면들을 기록함으로써 내 삶을 큐레이션 하는 것이다. 


3.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유언장을 작성한다.

작년에 임종체험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적었던 유언장이 기억이 난다. 하지만 거기에는 가족에게 남기는 미안함과 안타까움, 사랑의 표현은 있었을지 몰라도 좀 더 객관적인 유언의 내용은 없었다. 충분히 내 죽음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언은 재산 분배뿐 아니라 내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더 나아가 내가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 지까지도 담을 수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당신의 유산이 세상에 영원히 남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당신이 남긴 디지털 발자국이 파도에 쓸려가는 모래사장의 발자국처럼 사라져 버리기를 바라는가?" 나는 내가 영원히 남겨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의 아이들 혹은 아이들의 아이들까지.. 그 이후에는 파도에 쓸려가도 괜찮을 것 같다. 또한 나의 디지털 먼지들을 보관하고 관리하기 위해서, 나의 죽음을 의미 있는 무엇으로 포장하고 기억하기 위해 살아있는 누군가의 또 다른 노력이 있지 않기를 바란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살아있는 자신의 삶에 집중해야 한다! 



일레인 카스켓은 디지털 시대의 시민들을 다섯 유형으로 소개했는데, 나는 그중에 전형적인 '큐레이터'에 속한다. 최근 나는 휴가를 내고 가족들과 캠핑에서 아이들과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공유하려고 했다. 마지막 순간 업로드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나를 주저하게 만든 것은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는 지금 상황에서 이 사진들을 공유하는 것이 적합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이 여행이 야외였고 사람들이 드문 곳이었지만 결국 나는 취소 버튼을 눌렀다. 


내가 조금 엄격한 편이기는 하지만 어떤 유형이든지 디지털 세계에 흔적을 남길 때에는 자기 검열이 필요해 보인다. 최소한 내가 쓰는 글이나 이미지가 진실한 나인지 고민해 보면 된다. 결국 내가 만든 디지털 먼지들이 쓰레기가 될 것인지 유산이 될 것인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내가 죽은 다음 남겨진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최선을 다해 진실되게 산다면 사후에 남겨질 모든 복잡해 보이던 것들이 단순해진다는 결론으로 돌아온다.


어쨌든 자신의 삶과 자신의 목적,
자신의 유산을 규정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어야만 했다.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 p.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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