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링컨의 명언은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무딘 날로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을 하더라도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 말을 나는 자주 되새기며 그 의미를 곱씹어 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 말이 집중력을 만드는 환경설정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꾸로 뒤집어 보면 집중력은 의지력만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다는 이야기다.
지금 내가 어떤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컨디션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런데 컴퓨터의 용량이 부족해서 프로그램이 작동이 너무 느리다면?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아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야 한다면? 사소한 문제들을 해결하다가 처음에 가졌던 나의 의욕은 어느새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의욕적으로 나무를 자르려고 마음을 먹고 나섰는데 도끼가 무뎌서 나무가 잘 잘리지 않는다면, 보통 연장을 탓하기 쉽다. 앗... 하려고 했는데 무엇 때문에 못 했다는 핑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
우리는 여러 상황에서 도구를 고치기보다는 주어진 환경에서 불평하며 무딘 도끼로 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곤 한다. 그렇다면 결과는? 주어진 8시간을 다 썼지만 좋지 않을 것이 뻔하다. 결국 짧게 일하더라도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드는 것이 결과물도 나의 정신 건강에도 좋다. 집중이라는 단어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처럼 느껴진다면, 집중을 몰입이라고 바꿔서 생각해보자. 완전히 집중한다는 것은 몰입한다는 말과 같다.
어떻게 제대로 집중할 수 있을까? = 어떻게 몰입할 수 있을까?
<FLOW>의 저자인 긍정심리학자 칙센트 미하이는 몰입하는 경험이 그 자체로 즐거움이 되기 때문에 충분한 보상이 된다고 말한다. 즉 몰입을 경험하면 다시 몰입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려는 욕구가 생겨서 선순환이 생긴다는 것이다. 칙센트 미하이는 몰입을 만들어내는 방법의 도전 과제와 개인의 능력의 조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 더 필요한 것이 있다. 완전히 몰입하려면 주위 환경에 신경 쓰이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 말은 곧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충분한 시간을 투자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링컨은 8시간 중 6시간을 썼다!)
그러면 나는 충분히 내 시간에 집중하고 있을까? 솔직히 그렇지 않다. 나는 항상 죄책감에 시달린다. 큰 아이가 11살, 둘째가 9살, 셋째가 7살인 세 아이들의 엄마이자 회사의 팀장으로서 나는 매일 "해내야 하는 수많은 일들"이 있다. 사실 나 개인의 집중력은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집중력이 좋은 편이다. 한번 의자에 앉으면 잘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주어진 시간에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시간의 중요성을 너무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시간을 압축적으로 활용하는 데 훈련이 되어 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였다. 나는 시간에 항상 쫓겨 아무렇지 않게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한다. 몸은 아이들과 있지만 핸드폰을 손에 들고 업무 연락을 주고받았고, 책상 앞에서 업무를 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수시로 와서 질문을 하고 싸움이 벌어지면 중재를 하고 아이들의 스케줄을 관리했다. 그것뿐인가? 내가 한 가지 업무에 집중하고 있을 때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면 그 일을 해결하고, 다른 곳에서 연락이 오면 또 그 일을 해결했다. 처음 하던 업무로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한참 걸렸다. 재택근무를 하는 나에게 코로나 19로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못하게 된 상황(8개월째...)은 문제였지만, 문제의 본질은 나에게 있었다.나는 집중을 잘했지만, 한편으로는 집중을 잘하지 못했다.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초집중>에서는 저자 네르 이알은 집중을 방해하는 것을 둘로 나눈다. 내부 계기(동기, 시간관리, 기질 등)와 외부 계기(인적 방해, 이메일, 그룹 채팅, 회의, 스마트폰 등)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나의 문제점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집중을 잘했지만, 한편으로는 집중을 잘하지 못했던 문제는 외부 계기 때문이었다. 문제를 확실하게 알게 되자 해결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떠오른다. 기존에는 집중하지 못했던 시간을 밤과 새벽 시간에 보충하기 위해 업무 시간을 스스로 연장하며 시간을 투입하는 데서 해결 방법을 찾았지만, 이제는 외부 계기를 어떻게 차단할 것인가, 차단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현명하게 조율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 고민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은 이런 것이다. 내가 언제 무엇을 할지 일주일 간의 대략적인 일정표를 미리 정하는 것, 이 시간에는 메신저로 연락을 하거나 받지 않겠다는 결심, 편리한 핑계를 찾지 않는 것(내가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모든 단톡 방에서 내가 해결사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 (즉각적으로 답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자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방법을 찾았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여가 시간을 잘 보내는 것, 즉 휴식이라고 생각한다. 휴식은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하기 때문에 더 돈을 더 버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행복을 추구한다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외적인 환경이 사라진다면 (돈이 없어지거나 휴식을 못하는 상황이 된다면) 순식간에 불행해진다. 그렇다면 행복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도적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행복은 몰입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즐거움이 커지고, 즐거움을 추구하려는 마음이 내 일을 더 잘하게 만드는 선순환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에 집중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녹슨 도끼를 휘두르며 일하는 시간만 채우기 전에 한번 생각해보자. 나는 이 나무를 쓰러뜨릴 준비가 되었는지. 그렇지 않다면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시간을 충분히 투자해 보자. 집중할 수 있어야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