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가 한 tv 프로그램에서 소개되어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적이 있다. 남편이 재미있게 읽는 모습을 보고 나도 따라서 읽게 되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3부에 등장하는 '영생의 섬' 이야기였다. 천공의 섬을 탈출한 걸리버는 죽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영생의 섬에 도착한다. 하지만 죽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도깨비처럼 멋지지 않았다. '스트럴드브러그'라고 불리는 이 죽지 않는 사람들은 노인으로 영생을 살아가는 데다 젊어서의 기억을 점차 잃어갔다. 걸리버는 그 모습을 보고 영생의 무의미함을 깨닫는다.
tvN의 [책 읽어드립니다]에서 김경일 교수님은 인간의 죽고 싶지 않는 욕망을 "죽지 않는 것(불사)과 늙지 않는 것(불로)" 두 가지로 구분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욕구의 원천은 관계와 인정으로 나뉜다. 죽음은 내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고 내 존재는 관계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불사'는 관계 욕구에서 오는 반면 젊음을 유지하며 멋진 내 모습을 자랑하고 싶은 '불로'는 인정 욕구에서 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남을 신경 쓴다. 인정도 받고 싶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두 가지 욕구는 자신의 화려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으면서도 (인정) 혹시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할지 (관계) 고민하게 만든다. 결국 우리가 SNS에 나를 드러내면서 얻고자 하는 것도 인정과 관계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이 불가분의 두 감정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문제는 두 가지다.
'이거 포스팅해도 될까? 이걸 올리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인스타에 아이들과 캠핑을 다녀온 사진들을 올리려고 글까지 다 써둔 상황에서 바로 올리지 못하고 남편에게 올릴까 말까를 물어보다 결국 삭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나의 고민은 나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테크 심리학>에는 이런 강박증 사례들이 수없이 소개된다. 인터넷 덕분에 자신의 모습과 생각을 드러내기는 훨씬 쉬워졌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얼마나 드러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 것이다. 자랑으로 보이는지 아닌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를 만족시키고 싶어 하고, 우리는 거기서 겸손보다는 불안감을 얻게 된다.
뭔가에 대해 말하려면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싸울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을 걱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결국 자신에게 매우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죠. -<테크 심리학>, P. 506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이나 불편한 감정에 대해 우리는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 솔직한 피드백을 가감 없이 주기 어려운 이유는 상대방이 부정적인 피드백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민감하게 반응할 때,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예쁘지 않지만 예쁘다고 말하고, 충분히 잘해 보이지 않지만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위로하는 것이 더 쉽다. 특히 인터넷 상에서 나는 익명성이 유지되고, 따봉은 손가락 한 번의 움직임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불편한 충고보다 가벼운 칭찬이 훨씬 쉽고 감정 소모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후자를 선택하곤 한다.
김경일 교수님이 소개해 주신 방법을 듣고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이것이다. “소중한 관계가 나를 인정하는 것” 그래서 그는 각자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해보라고 한다. “부모님의 평생이 있었기에 제가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OO야 평생 내 친구가 되어줘서 정말 고마워”라고 말이다. <걸리버 여행기>의 영생의 섬에서 저자 조너선 스위프트가 말하려고 했던 것도 이런 것이었을 것 같다. 사람들이 꿈꾸는 영생의 허상에 대해서... 젊음과 기억을 잃은 사람이 영생을 갖게 되었을 때의 허무함에 대한 것 말이다. 그러면 온라인 상에서 맺는 관계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테크 심리학>에 인용된 줄리앤의 문장에서 그 답이 보인다.
줄리앤은 "자기반성과 검증을 절대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검증을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말아야죠. 또한 훌륭한 작가가 되려면, 주변 세상을 향한 최소한의 따뜻한 시선과 공감이 필요해요. 자신의 내면을 가장 깊고 어두운 데까지 들여다보면서도 주변과 유대를 맺어야 합니다." -<테크 심리학>, p,107
자기반성과 검증, 그리고 이웃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공감은 우리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끌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특히 여기서 검증이란 나를 다른 생각 앞에 노출하는 것이 될 것이다. 내가 듣고 싶은 것이나 옳다는 생각에만 둘러싸여 있지 않도록 나를 드러내는 것은 그런 관점에서 중요하다. 포스팅을 해야 할지 말지에 대한 나의 고민으로 돌아가 보자. 결국 나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겉모습을 보이며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생각에 나를 노출하기 위해서 나의 생각과 고민을 공유하면 될 것 같다는 결론을 얻었다.
관계와 인정은 절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가벼운 칭찬보다는 신중한 피드백이, 관심과 인정을 받기 위한 자랑보다는 다양한 의견에 내 생각을 노출하는 것이 그 두 가지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는 눈치보다는 용기가 필요하다.
참고
<테크 심리학>, 루크 페르난데스 & 수전 J. 맷
<걸리버 여행기>, 조너선 스위프트
<책 읽어드립니다> 30화, 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