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사 Sep 06. 2020

0.1% 가능성이 일으킨 반란

(대유행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는 0.1%에 불과하다)

어제 회사에서 준비했던 큰 행사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참여하는 행사였고 실수가 없어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예측할 수 있는 최악의 가능성들을 생각해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은 인터넷이 연결이 되지 않거나 정전이 되는 것이었고, 현장에서 그런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갑자기 인터넷 선을 뽑거나 프로그램이 종료되더라도 분리된 장소에서 언제든지 원격으로, 바통을 이어받아서 조정할 수 있도록 가상실험을 진행했다. 다행히 이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쓸데없는 데 시간을 낭비한 것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아무 준비 없이 송출을 못하는 상황에 부딪혔다면? 정말 끔찍하다... 


어제처럼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것은 당연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스케일이 크고 복잡하고 많은 사람들이 얽혀있을수록, 책임의 소재가 불분명해질수록 문제는 복잡해진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나기 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종합사고관리계획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심각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엔지니어 입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엔지니어 입장에서' 상상도 하지 못한 이 낮은 가능성의 사고가 얼마나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는지 지금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예측하지 못했지만 기존의 모든 체계를 한 번에 뒤집어 놓은 충격적인 사건들은 수 없이 많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개인의 실수, 시스템의 문제나 천재지변 등의) 한 가지 문제라기보다는 모든 문제들이 연결된 예상치 못한 상호작용, 불확실성이 가진 복잡성 때문이다. <행운에 속지 마라>에서 나심 탈레브는 "희귀 사건은 갈수록 자주 발생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런 현상을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후쿠시마 원전의 종합사고관리계획서에서 사고 발생 확률이 희박하다고 가능성이 없는 뜻이 아니다. 문제는 희박한 가능성과 일어나지 않는다를 동일하게 생각하고, 혹시 모를 발생 가능성에 대해 대처하지 않는 우리의 사고방식에 있다. 


전문가들은 전염병의 대유행이 언젠가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계은행과 WHO는 대유행병 발생 시 전 세계의 대응 능력이 어느 정도 인지 2011년부터 2018년까지 172개국에서 발생한 1,483건의 발병 사례를 추적한 결과를 발표하며 이렇게 경고했다. "5,000만 명에서 8,000만 명의 목숨을 빼앗고 세계 경제의 약 5퍼센트를 휩쓸만한 영향력을 가진, 확산 속도가 빠르고 치사율이 매우 높은 대유행병을 일으키는 호흡기 병원체가 나타날 위험성이 굉장히 실질적으로 존재한다." (이 보고서가 발표된 2019년의 비슷한 시기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했다. 우리는 알고 있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Annual report on global preparedness for health emergencies (출처: GPMB_annualreport_2019)


우리가 악순환을 반복한 것은 몰라서가 아니었다. <대유행병의 시대>에서 마크 호닉스 바움은 문제는 지식의 수준이 아니라 정치적 의지에 있다고 강조한다. 정치적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이다. 바이러스를 비롯한 여러 질병을 연구할 수 있는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 개발도상국의 위생상태와 도시개선 사업, 문제가 발생했을 때 빠른 의사결정과 경고 조치, 빠른 대응, 투명한 정보공개와 설득의 과정, 기밀로 분류된 연구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에게 공간과 보안을 보장해 주는 시스템의 마련 등이다. 호닉스 바움은 이런 조치들만으로도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미래의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또 어떤 병원체가 들어올 것인지, 언제 자리를 잡고 모습을 드러낼지 추측하려고 해 봐야 헛고생일 뿐이다. 해외여행과 세계 무역이 이루어지는 현실을 우리가 바꿀 수는 없겠지만 좋은 위생 상태와 환경 조건은 우리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지식의 수준이 아닌 정치적 의지의 문제다. -<대유행병의 시대>, p.501-502


나는 이 책을 수 많은 위기 상황을 앞두고 내려야 했던 의사 결정에 대한 책으로 읽었다. 리더십 부족과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인해 상황을 악화시킨 안타까운 상황들과 위험을 무릎쓰며 어려운 상황을 개선시킨 슈퍼히어로 같은 인물들을 살펴보며 순간의 의사결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많은 것을 고려해야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결정의 순간들을 보며 감정이입을 했는데, 내가 그런 순간에 있었다면 다음 나심 탈레브의 말을 기억하고 싶다.


어떤 사건의 알 수 없는 확률을 계산하는 것보다는
알아낼 수 있는 그 결과에 집중함으로써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것이 불확실성에 대한 중심적인 개념이다.

-<블랙스완>, 나심 탈레브


전염병의 경우, 특히 전문가들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대유행병이 나타날 위험성이 실질적으로 존재하고, 세계화와 기후 변화, 동물성 단백질의 수요 증가로 전 세계 인구가 과거보다 "내제적으로 더 취약한" 상태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이상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더 이상 일어날 확률을 계산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는 마크 호닉스 바움의 말을 기억하자.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방법을 알고 있다.


#대유행병의시대 #씽큐온 #큐블리케이션 #체인지그라운드

*본 콘텐츠는 로크미디어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영생을 꿈꾸는 인간의 두 가지 욕구, 해결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