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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Sep 20. 2020

간단해 보일수록
더 위험하다

MBTI에 관한 책 <성격을 팝니다>를 읽으며 기억이 나지 않는 내 성격유형을 찾기 위해 남편과의 오래전 카톡을 뒤졌다. 남편이 보내준 링크로 들어가 검사는 해 봤지만 설명을 대충 훑어보고는 비슷한 것 같다고 느꼈지만 더 의미 부여를 하지는 않았다. 그 뒤로 모임에서 한번 더 해봤을 때 같은 성격 유형이 나왔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나는 저 유형이 나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나는 다시 내 유형을 잊어버렸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두세 가지 동일한 성격 유형 기능을 선호하는 사람끼리 결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들은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두세 가지 동일한 성격 유형 기능을 선호하는 사람끼리 결혼할 가능성이 제일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의 성격 유형과 똑같은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모든 점에서 자신과 정반대인 성격 유형과 결혼하는 경우도 매우 드물었다. (그들은 부부가 평균적으로 두 가지 성격 유형 기능을 공유한 것이 순전히 우연한 결과일 수 있다는 사실은 설명하지 못했다.) -<성격을 팝니다>, p.411


어쩌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설명하는 것 같은 느낌!? 이런 부분이 많은 사람들이 MBTI에 빠져드는 이유일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성격 유형을 발견한 덕분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했을 뿐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마음의 안정과 비슷한 사람들과의 연대감을 느끼며 이 간편한 성격 평가 방법을 재밌게 소비한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현상(과거와 미래)을 이해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예측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MBTI의 해석은 상대방을 예측 가능한 존재로 만들어 준다. 이렇게 시작된 유형검사에 대한 신뢰는 이 검사가 가진 모순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잘못된 믿음으로 바뀔 수 있다. 이 믿음이 위험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성격은 양극화 경향을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개의 검사 표본에서 쌍봉 분포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으며 중간 부분에 몰려 있었다. 두 가지 선택지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면 그 성격 특성들을 상호 배타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를 간과한다면 상대방의 행동을 양 극단에 있는 유형 특성에 끼워 맞춰 해석하게 된다. 


2. 성격이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MBTI의 기본 명제는 "성격이란 타고난 것이며 그 자체로 온전하고 불변하다"는 것이다. 성격을 바꾸는 것은 힘들 수는 있어도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다른 상황에서 다른 경험을 통해 성장해왔고, 같은 유형의 사람들은 모두가 다르다.


3. 행동은 예측 불가능하다.

사람의 행동은 성격, 교육 수준, 인종, 성별 등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넛지와 관련된 여러 실험으로 알 수 있지만 사람들의 결정과 행동은 수많은 변수들로 급격하게 바뀐다. 성격은 일련의 사건과 경험으로 바뀔 수 있으며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성격보다 상황이 더 영향을 크게 미친다.


4. 화목화고 평화로운 관계는 유사성에서 오지 않는다.

MBTI의 창시자 이사벨이 밝힌 성격 유형 지표의 목적 중 하나는 화목하고 평화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유형들을 구분하여 함께 일하도록 배치하거나 배우자를 선택하는 조건으로 삼는 것이 화목을 도모하는지에 대한 근거는 지금껏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모든 집단의 목적은 평화가 아니며, 창의성은 유사성이 아니라 다양성에서 온다)


5. 선별기준으로 이용될 때 낙인찍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모든 일에는 적합한 유형의 인재가 정해져 있다는 MBTI의 명제도 근거가 없다. 대학 입학 혹은 기업 입사 시험에서 성격 검사를 통해 내가 "성격상" 성공 잠재력이 낮다고 평가받는다고 생각해보라.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서 나를 연기하는 상황을 생각해보라. 자신의 참모습에 충실하라는 브릭스 마이어스 지표는 오히려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내지 않도록 유도하게 된다. 심지어 한 때 미국에서는 성격유형검사를 통해 흑인들이 열등함을 증명하려고 한 적이 있다.



미국의 교육평가원은 MBTI의 방법론을 검증하느라 수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음에도 과학적 근거를 밝혀내지 못했다. 그렇게 혹독한 비판을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MBTI가 지금껏 살아남아 대중적 인기를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성격을 팝니다> 저자 메르베 엠레는 이렇게 말한다.


결국 MBTI의 성공을 가리는 유일한 척도는
각자 받은 성격 검사 결과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과 얼마나 일치하느냐에 있다.


여기서 '자기 인식'을 지금 현재 나의 모습이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이상형으로 생각해보면 의문이 풀린다. 설문 답변에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내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습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찾았던 과학적 근거와 연결성을 찾지 못했던 이유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감 때문이 아닐까. 많은 부부가 2~3가지 성격유형이 겹친다고 (=유사성이 있다고) 화목한 것은 아니지만, 가치관이 비슷하면 매력을 느끼고 결혼으로 이어지는 점도 이렇게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 


어쨌든 MBTI 성격 유형 검사를 통해 자신을 찾았다고 고백하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MBTI를 비롯한 많은 유형 검사들을 맹신하고 예측하는 것은 위험하다. 나 자신과 타인을 틀에 끼워 맞추어 이해하는 것은 오히려 진정한 자아의 모습을 찾는 것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MBTI의 창시자인 캐서린과 이사벨은 이런 것까지 신경 쓰기에는 너무나 성공을 간절히 바랬던 것 같다. 특히 당시 인정받지 못하는 열정적인 여성으로서, 또 아이를 먼저 보내고 슬픔을 잊기 위해 삶의 이유를 찾아야 했던 어머니로 이해하면 더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 순수한 열정이 나중에는 자신이 이 유형을 개발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노력했고 희생했는지에 매몰된 것 같아 안타깝다. 날카롭게 비판했던 스트리커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던 모습을 보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더욱 자신의 대의는 "신성한 것"이라는 확신이 커졌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시작되기 전 (캐서린의 아들의 죽음 전)으로 돌아가 지금의 수많은 연구결과들을 보여주며 캐서린에게 "모든 사람들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없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생각해본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을 것 같다. 너무 간절한 사람들에게는 그 외의 것은 보이지 않는다. 


#성격을팝니다 #씽큐온


*본 콘텐츠는 로크미디어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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