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대통령도 두렵다.
대통령이 사라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대통령이 사라졌다>는 스릴러라는 소설 장르가 아니라 가상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미국의 42대 대통령인 빌 클린턴이 집필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다시, 대통령이 쓴 대통령에 관한 소설책이 특별한 이유는 그가 긴급하고 중대한 상황에서 내린 실제 의사결정 과정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굿리즈 goodreads의 평가 중 하나이다.
나는 패터슨이 이 책의 95 %를 썼다고 확신하지만
경험 많은 대통령의 이야기가 빛을 발한다.
이 책은 스릴러가 아니라 가상 시나리오다.
책의 줄거리는 손에 땀을 쥐게 긴장감이 있었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대통령이 어떻게
어려운 결정(tough decision)을 내리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빌 클린턴과 함께 집필한 작가 제임스 패터슨은 2016년 호날두나 메시보다 더 수익 상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잘 나가는 미국의 스릴러 작가이다. 위 리뷰처럼 소설의 줄거리 대부분은 그가 구성했을 것이지만, 중간중간에 보이는 인사이트는 진짜 대통령이 했을 법한 실제 그가 경험한 내면의 갈등을 그대로 보여 준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테러리스트 조직이 비밀리에 회동을 하는 상황을 CIA가 파악하고 대통령과 함께 지켜보는 상황이다. 테러리스트들을 공격할 두 번 다시없을 절호의 기회지만, 수장 중 한 명이 가족을 인간 방패 삼아 데리고 온 것이 문제다. 아이들만 일곱. 공격해야 할까? 사람들은 대통령의 최종 결정만 기다리고 있다. 당신이라면 어떤 결정을 하겠는가?
나는 다시 눈을 뜬다.
뛰는 가슴이 진정될 때까지 심호흡을 이어간다.
하지만 심장의 박동은 오히려 빨라져 갈 뿐이다.
대통령의 고민이나 선택의 수준은 일반인들의 그것과는 깊이나 무게에 있어서 차원이 다를 것이다. 자신의 결정과 말 한마디에 대한 책임과 비판을 감내해야 하며 가치와 신념을 일관적으로 지켜는 한편, 냉정을 유지해야 한다. 그에게 요구되는 수많은 의사결정은 대통령의 마땅히 짊어져야 하는 숙명이다.
모든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고 부담스러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잃을 것이 특히 많을 때는 신념에 따라 일을 벌인 후 머지않아 전세가 역전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대통령의 숙명이다. -<대통령이 사라졌다>, p.29
물론 이에 대한 대가도 잘 따져 봐야 한다. 불만, 양극화, 기능 마비, 잘못된 결정, 그리고 놓쳐 버린 기회들. 하지만 실질적 업적에 대한 보상이 없으면 정치인들은 점점 더 대세를 따르게 된다. 소방대원이 되어야 할 때 오히려 분노와 원망의 불꽃에 신나게 부채질을 해댄다. 이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즉각적인 보상이 워낙 압도적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대통령이 사라졌다>, p.90
익숙한 절망이 내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이 나라 대통령의 권한은 실로 엄청나면서도 터무니없이 제한적이다. 이런 역설적인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계점에만 집착하면 능력 발휘를 제대로 할 수 없다. 물론 한계점을 높이는 노력도 계속돼야 한다. 최대한 많은 이가 최대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최악의 상황이라 해서 길이 없는 건 아니다... (중략)... 모두가 같은 현장을 목격하고 있지만 그것에 대한 견해는 제각각일 것이다. 전자가 옳을 수도 있고, 후자가 옳을 수도 있다. 둘 다 진실을 조금씩 품고 있을 수도 있고. 이런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방법은 없다. 그저 내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 -<대통령이 사라졌다>, p.174-175
나와 같은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아무쪼록 무사히' 최고의 의사결정을 내리기를 믿고 기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가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면 어떻게 될까? <대통령이 사라졌다>에서는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 대통령 자신과 나라를 더 위험한 벼랑 끝으로 몰아가도록 묘사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지만, 나는 이 소설이 실제 상황이었다면 이보다 더 끔찍했을 수 없었을 것 같다.
칩 히스, 댄 히스의 <자신 있게 결정하라>에서는 결정하기 전에 의문을 가지라고 말한다.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직감과 육감에 맞서서 훌륭한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분석을 바탕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최종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불확실함에 맞서는 생각의 프로세스 네 가지를 설명하는 데 다음과 같다.
우리는 선택의 범위나 사고의 틀을 양자택일의 상황으로 좁게 정의하곤 한다. 고민의 순간이 오면 이렇게 자문하라. '둘 다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두 가지 모두 이룰 수 있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냉철하게 비교분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뇌는 선택 안 중 하나를 편애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사실이라고 믿고 싶을 대 그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근거에만 집중한다.
정보가 부족한 것도 아닌데, 결정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 자체에 스트레스를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순간에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눈을 열게 하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예측을 너무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눈 앞의 정보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맞추고는 너무 쉽게 미래를 예측하고 결정을 내린다. 더 좋은 안이 분명히 있는데도 자신을 믿어 버린다. 문제는 우리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사실이다.
위의 의사결정 과정을 생각해보며 <대통령이 사라졌다>를 복기해보자. 대통령은 꼭 백악관을 나가야 했을까? 그들이 원하는 방법을 알아내고 다른 방식으로 주도할 방법은 없었을까? 왜 대통령은 한 사람을 유독 신뢰했을까? 왜 다른 사람들을 의심하면서 그 사람을 의심 선상에서 지웠을까? 왜 바이러스를 지우는 그 방법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을까?... 주인공을 영웅처럼 만들어야 하는 소설의 특성을 감안하고라도 그 속에서 의문이 떠오른다.
"이런 결정은 나 혼자서 내려야 한다."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책의 대통령의 말은 최종 결정권자로서 책임을 본인이 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맞지만, 과도한 자기 확신에서 왔다면 틀릴 수도 있다. 승자 효과에 너무 쉽게 취할 수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 사람의 결정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관점을 종합해서 결론에 도출할 때 훨씬 더 나은 결과를 가지고 오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례를 책에서 읽어왔지 않은가)
배심원제가 사법체계에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도 이와 연관이 깊다.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단은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로 이들이 함께 모여서 해당 사건에 대한 각자의 관점을 제시하고 그것들을 종합해 새로운 관점에 도달한다. 이는 고등 교육을 받고 평생에 걸쳐 자기 분야에서만 전문성을 키워온 법률가 혼자서는 지닐 수 없는 통찰이다. -<폴리매스>, 316
이 점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 고 있을 클린턴 전 대통령도 이 부분을 확실히 짚어준다.
"당연히 귀담아들어야 할 조언이다."
내가 하급자들에게 늘 당부해 온 건 세 가지다.
내가 틀렸을 때 가차 없이 지적해 줄 것.
부담 없이 이의를 제기할 것.
그리고 내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
아첨꾼들에게 에워싸여 있으면 누구든 실패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사라졌다>, 267
하지만 이랬던 소설 속의 대통령은 알면서도 비슷한 실수를 한다. 대통령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고 비난하기보다는 대통령도 직감과 편견에 취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대통령이니까 잘할 것이라고 무조건적으로 믿기보다는 그가 자신의 결정에 의문을 품을 수 있도록 우리도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우리도 언제라도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결정이 틀릴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리더는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나도 언제라도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작은 의사 결정부터 돌아보자.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서 시뮬레이션 해보는 것이 실제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극도의 압박감 속에서 '진짜' 대통령의 의사결정을 간접 경험해볼 수 있는 최고의 책이다. 나였다면 어떤 결정을 내리고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참고
<대통령이 사라졌다>, 빌 클린턴 & 제임스 패터슨
<자신 있게 결정하라>, 칩 히스 & 댄 히스
<폴리매스>, 와카스 아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