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의 다툼을 중재하느라 바쁘다. 싸우는 이유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을 때(누가 엄마 옆에서 잘 것인가, 누가 새 책을 먼저 읽을 것인가), 혹은 한 아이의 행동이 다른 아이의 자유를 침해했을 때 생긴다. 나는 상황을 중재하기 위해 객관화할 수 있는 사례들를 가지고 온다. 영화관에서 네가 다리를 앞 좌석에 올려놓고 싶다고 올려놓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싸움이 일어나면 누가 더 세게 때린 것보다 일단 때렸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하지만 아무리 공평하게 중재를 하려고 해도 누군가는 속상한 아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함께 살아야 하고 자원과 공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이런 일은 비단 우리 집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코로나 19로 모두가 사회 거리두기를 시행해야 할 때 세계 곳곳에서는 내 자유를 정부가 제한할 수 없다며 시위를 하고 폭동을 일으키는 일도 생긴다.
마스크를 쓰지 않겠다고 시위하는 사람들 (사진 출처: globalnews.ca)
어떤 가치가 우선되어야 할까? 상충하는 가치 사이에서 저마다의 해석이 다르고 그래서 사회 문제는 점점 더 복잡해져만 간다. 너무 복잡해서 어떤 문제들은 도저히 건드릴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지난주 아주대학교 유튜브 채널에서 진행됐던 "아주 아주다운 강연"에서 의미 심장한 몇 문장이 내 마음에 와서 박혔다. 사명감을 묻는 질문에 대한 최진석 교수님의 답이었다.
제 사명감은...
나의 행복과 공동체의 행복을 일치시키는 일이에요.
내가 추구하는 행복의 길이
공동체도 행복하게 하는 길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출처: 아주대학교 유튜브 채널, '아주 아주다운 강연')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일치시키는 것. 우리는 분명히 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괴리감의 차이를 줄여나가는 것은 절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 어려워 보이는 일을 중동의 한 나라에서는 사회 전체가 당연하게 추구하고 있다. 최근 국가 경쟁력 보고서 혁신 부분에서 3위를 기록하는 등 두각을 보이고 있는 중동의 실리콘 밸리,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의 혁신과 창조에 집중한 책, <후츠파>에서는 사회의 필요를 찾아 공동의 가치를 추구한 기업들의 수많은 사례가 나온다. IVN은 소외 계층 청소년, 장애인, 빈곤 계층을 대상으로 50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이스라엘의 실업률과 빈곤율을 낮추는 데 일조하고 있으며, 제제(Zeze)는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공동체에 지속 가능한 기업을 설립하고 회사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지원을 제공하면서 일자리를 창출한다. SOS 칠드런 빌리지는 모든 아이를 마을과 공동체의 일부로 받아들여 안정된 가정과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겠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설립한 시설이다.
이런 식으로 좋은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들을 찾아보면 우리나라에는 없겠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후츠파>를 읽어보면 이스라엘은 뭔가가 확실히 다르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은 청소년 운동 단체 등을 통해 또래와 함께 팀을 이뤄 공동체에 기여하는 방법을 배운다. 봉사활동을 당연하게 여기고 소외 계층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사회 전체가 노력한다. 장애인과 빈곤 계층을 위한 노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 세계 각지에서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를 돕는다.
모든 네트워크는
이스라엘의 기술과 혁신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진보''를 이루는 한편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 번성하도록 돕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후츠파>, P. 272
가장 좋은 예가 "유닛 8200 전우회"다. 유닛 8200은 전 국민이 병역의 의무를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방위군 정보부대로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발된다. 엘리트 인재들을 모아놓은 곳이니 전우회라고 하면 그들끼리 인맥을 발전시키겠거니 할 것이다. 하지만 유닛 8200은 전우회 회원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일반인의 참여를 최대한 유도한다. 실제로 프로그램 참여자 중에는 전우회 회원보다 비회원이 훨씬 많다고 한다. 유닛 8200은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 사회 전체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전우회에 속하지 않은 외부인과 유닛 8200 출신 회원이 만나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돕는다.
출신 배경과 관계없이 창업에 처음 도전한 사람에게 전우회의 인맥을 활용하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전도유망한 기업가를 발굴하고, 미래가 기대되는 기업가가 유닛 8200 전우회 네트워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도록 해 인연을 이어 주는 한편, 비슷한 시기에 놓인 기업가 동료를 소개해 주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준다. 놀라운 것은 이 유닛 8200 전우회에는 공식적인 운영 규칙이 없으며 정식으로 급여를 받고 근무하는 직원도, 사무실도 없다는 사실이다. 모든 작업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진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우리나라도 식민지를 경험하며 외부로부터 핍박을 받았고 여전히 전쟁의 위협 속에 있으며 (남성에 국한되긴 하지만) 병역의 의무를 진다. 하지만 우리는 이스라엘처럼 공동의 가치를 위해 서로를 이끌어 주지는 않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무엇이 그들을 공동체 안에서 더 묶어 주었을까? <후츠파>를 읽으며 찾은 답은 두 가지다.
첫째는 함께 서로를 이끌어주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파라오의 억압에서도 홀로코스트 속에서도 살아남은 생존의 역사를 통해 혼자서는 위기를 이겨낼 수 없다는 처절한 교훈을 수 세대를 거쳐 경험으로 얻었다. 그들은 지금은 힘들더라도 미래에는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믿음을 통해 어려움을 함께 이겨낸다.
둘째, 유대인은 스스로 선택받은 민족이라 믿으며 책임감을 가지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누구보다 특별하고 강한 민족이며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책임을 가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런 책임을 '티쿤 올람', 즉 '세상을 수리한다'고 표현한다고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비슷한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과 해결법을 공유할 수 있도록 애를 쓴다.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이 이루고 있는 성과 또한 탁월하다는 것이다. 면적이 우리나라 강원도 크기에 불과한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총생산 대비 연구개발비 지출이 가장 큰 나라이면서 경제협력기구 가입국 중 과학자와 연구자가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하다. 1966년 이후로 다양한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12명이나 배출한 이 나라를 워런 버핏은 "인재를 찾아 중동으로 간다면 이스라엘 외에는 들를 필요가 없다"라고 단언할 정도로 높은 신뢰를 보여 준다.
이스라엘은 지속적인 테러와 전쟁 위협에 노출된 환경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위기에 함께 대응하고 회복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위험한 환경에 처해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후츠파>의 저자 인발 아리엘리는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능력은 간단한 일상의 변화로도 기를 수 있다고 말한다. 항상 정해진 자리, 익숙한 동료 옆을 떠나 매일 다른 자리에서 일해 보는 것으로도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위한 것이 나를 위해서도 좋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크렘보 윙즈라는 청소년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끈 이디 알트슐러는 자신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크렘보 윙즈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만을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에요. 내가 그리고 우리가 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선택이었어요."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선택이라는 것을 사회가 공유하면, 최진석 교수님이 말한 '나의 행복과 사회의 행복을 일치시키는 일'이 어쩌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혼자서 살 수 없고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는 간단해진다. 고민이 된다면 물어보자. 이것은 상대방에게 좋은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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