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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Dec 27. 2020

궁극의 약을 찾아서

(사진: 우울증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는 환각 버섯의 실로시빈)

내가 만약 한 가지 소원을 빌 수 있다면, 누가 내 소원을 들어준다면 난 무엇을 빌까? 얼마의 돈? 넓고 큰 집? 오랫동안 아기를 기다리고 있는 여동생의 임신?... 생각해 볼 수는 있지만 지금 당장 나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건 없다. 별 탈없이 살고 있는 축복 속에서 나는 정신 건강에 대해서 특별히 고민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책, 블루 드림스의 저자는 소원을 빌 수 있다면 "완벽한 약"을 달라고 하겠다고 확고하게 말한다.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평온한 마음을 줄 수 있는 파란 약이라.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만일 한 가지 소원을 빌 수 있다면 나는 완벽한 약을 달라고 할 테다.
먹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정확히 작용할 궁극의 약을 원한다.
우울증을 없애고 조증을 행복으로 바꿔주고
조현병을 그저 창조력으로 바꿔줄 그런 약.
나라면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평온한 마음을 줄 수 있는
파란 약을 달라고 빌 것이다.
그 약을 원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 <블루 드림스>, 84-85p.


위 문장은 35년간 정신과 약을 복용해온 환자인 저자, 로렌 슬레이터의 간절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정신 건강을 최상의 상태로 끌어올리고 튼튼한 뇌를 만들되, 다른 부작용은 없는 약". 하지만 바로 뒷 문장에 지금 그런 약은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가진 약은 완전하지 않으며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책에서는 정신과 약이 어떻게 발견되고 발전되어 왔는지 설명한다. 나는 지금은 심리 상담을 하거나 약물 치료를 받는 것이 꽤 보편화되어 있어서 치료법이 많이 발전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어둠 속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는 말에 놀랐다. 약물 치료를 시작하게 된 것은 1900년 초반의 일이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신약이 계속 출시되고 있지만 대부분이 '미투 약물' (바탕이 되는 약과 기본적으로 똑같지만 중요하지 않은 분자 몇 가지만 변경한 약)이며 아직도 우울증이 왜 생기는지 원인은 찾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이다.


모든 정신과 약이 그렇다.
약물과 뇌의 복잡한 화학물질에 관해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은 하나뿐이다.
우리는 약이 작용하는 방법과 이유를 과거에도 정확히 몰랐고
현재까지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 <블루 드림스>, 197p.


예를 들어 무기력증을 유발한 토끼의 뇌에 세로토닌이 고갈되어 있음을 보고 (+여러 추가 실험을 통해) '낮은 세로토닌이 우울증의 범인'이라고 가정하고,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수치를 증가시키면 될 거라고 믿었지만 실제로 우울증에 빠진 인간의 세로토닌 수치를 비교하자 일부는 낮았고, 일부는 정상이었으며 일부는 높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도파민 가설도 마찬가지다. 도파민 분비량을 줄이는 약은 환각을 줄이고 도파민 분비량을 높이는 약은 조현병 증상을 악화하지만 소위 정상인 피험자 그룹에서는 높은 도파민 수치와 정신이상의 상관관계를 찾지 못했다.


이런 사례들은 한 설득력 있는 이론이 모두에게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신경전달물질은 인간 뇌 전체에서 다른 신경전달 체계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체내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뇌는 복잡한 네트워크로 속에서 상호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 가지 약으로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없으며 모든 사람의 뇌는 저마다 다르게 작용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론과 다르게 잘못된 결과를 불러일으킬 여지는 언제나 존재한다. 저자는 이런 의문도 제기한다. 정신과 약이 정말 많은 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 왜 정신 질환 환자 수는 계속 늘고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프로작이 등장하면서 사회는 병들어 갔다. 그것도 이 약이 치료한다는 그 병을 앓기 시작했다" (<블루 드림스>, p.2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을 이해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이 약을 찾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나는 왜 이 약을 끊지 못했을까?
대답은 하나뿐이다.
약을 먹어도 괴로움은 여전했지만,
약을 끊으면 증상이 더욱 심해질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약을 계속 먹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약이 없으면 나는 제대로 살지 못한다.

- <블루 드림스>, 206p.


나는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치료제를 갈구하고 있음을 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사람들에게는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대가를 치를 준비도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학자이면서 정신과 환자로 살아온 저자의 이중적인 마음도 책에 그대로 담겨 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뚱뚱해졌지만 상관없었다.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면 이 정도 대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신약을 먹기로 할 때 생존에 필요한 몸을 망가뜨린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현재 살기 위해 죽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 약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빨리 죽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찬양하지 않으랴.


<블루 드림스>의 저자, 로렌 슬레이터 (사진 출처: theatlantic)


저자는 이런 마음이 너무 강렬해서 그런지 아직 갈길이 멀었다면서도 한편으로 궁극의 약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보인다. 책의 후반부 계속 언급되고 있는 '사이키델릭'은 어쩌면 로렌 슬레이터가 기대하는 궁극의 약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이키델릭 연구에 전 세계 연구자들이 주목하고 있는데 이 물질은 죽음에 대한 불안감부터 두통까지 고통을 완화할 수 있으며 중독, PTSD, 자폐증 치료에도 보조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사례에서 이 공감성 물질은 친사회적 성격을 끌어올려서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타인의 신호를 더 잘 인식하게 하기 때문에 사회 공포증이나 자폐증 치료뿐 아니라 부부 상담에도 효과를 보였다고 한다.


마약원료 식물로 지정된 '마술버섯'이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사진출처: Unsplash)


정말 궁극의 약은 있을까?


사이키델릭에 관한 놀라운 결과는 주목할만하다.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물질일 수 있다. 미래에는 정말 그런 약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궁극의 약은 아직 뚜껑이 완전히 열리지 않았고, 과거의 수많은 약들처럼 부작용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것에 너무 기대하는 것은 조금 우려가 된다. 약은 절실한 사람들을 위해 계속 연구되어야 하지만, 윤리적인 문제까지 넘어야 할 산은 너무 많다. 대신 우리는 더 확실한 방법이 있다. 속임약을 활용 하거나, 나에게 신경을 써주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다.


1. 속임약을 활용 한다 (약, 사건, 물건 등)


일명 플라세보라고 불리는 속임약의 효과는 우리의 몸이 희망과 믿음에 반응하기 때문에 이루어진다고 한다. 모든 사람은 고통이 클 때와 같은 특정 상황 속에서 속임약에 잘 반응할 수 있으며, 인구의 30~60퍼센트가 설탕 알약, 물, 식염수 주사, 손바닥에서 반짝이는 분홍색 알약의 속임수에 넘어간다는 것은 '사실'이다. 저자는 많은 속임약이 실제 약을 능가하고 심지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속임약은 약이 아니라 사건이나 물건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이 믿던 미신들이 실제로 통했던 사례들을 보면 왜 그것이 통했는지도 짐작이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이를 이용해 속임약을 활용하는 치료법을 찾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희망이 조금만 보여도 우리의 뇌는 화학물질을 분비하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2. 나에게 신경을 써주는 사람과의 대화 (심리 치료)


심리치료를 받고 환자의 심리 상태가 좋아지는 이유는 환자 자신이 심리치료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고 희망과 치유를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고백하는 행위 자체가 행복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치료사의 경험과 치료 결과의 상관관계가 0.01이라는 연구 결과다. 환자에게 관심을 쏟을수록 증상은 가라앉았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이것은 친절과 공감에 강한 생물학적 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대화를 하면 화학물질이 나와 신경세포가 성장하는 유사한 길을 열어줄 수도 있다는 싯다르타 무케르지(컬럼비아대 종양학자이며 퓰리처상 수상자)의 말도 연장선에 있다.


핵심은 따뜻함이었다. 연결이었다.
내게 신경을 써주는 사람과 의미를 찾고
이야기를 구성해나가는 과정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두려움으로 곪은 상처를 치유하고
차갑게 식은 우울감을 따뜻한 온기로 감쌀 수 있었다.

-<블루 드림스>, p. 299


나는 궁극의 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물론 어쩌면, 언젠가 비슷한 약을 발견할 수도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그런 약은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많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다. 하지만 화학적 해결 방법이 유일한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심리 치료나 대화)을 통해서, 속임약 (믿음과 희망), 운동이나 명상 등 여러 활동을 함께 활용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 책은 학계 주류의 생각과는 조금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가 맞다고 믿는 신념과 다르게 어쩌면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을 읽고 지인 두명이 다니던 병원을 바꾸었다(약만 처방해주던 곳에서 친절하게 상담해주는 곳으로). 기존에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에 제동을 걸고 의문을 갖는 것으로도, 주위 사람들에 따뜻한 관심과 제스처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블루드림스 #씽큐베이션 #씽큐ON #체인지그라운드


*본 콘텐츠는 로크미디어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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