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사 Jun 13. 2021

우리가 할 일은
과속방지턱을 만드는 것이다

원칙<합의<신뢰<정보<관심

새로운 기술이 개발될 때마다 윤리적 측면이 큰 화두로 떠오르곤 한다. 특히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일은 더욱 그렇다. 1978년 '시험관 아기'가 등장했을 때가 그랬고, 2018년 중국의 허젠쿠이가 크리스퍼 가위를 통해 '유전자 편집 아기'를 출생시켰을 때가 그렇다.  


(이미지 출처: www.freethink.com)


시험관 아기가 처음 거론되었을 때, 전 세계 매스컴은 기술 자체보다 윤리적 측면을 부각하여 보도했다. 당시 교황은 '신의 섭리에 대한 도전'이라고, 전 세계 윤리학자들도 천륜을 어기는 짓이라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 후 지금까지 시험관 아기로 태어난 사람은 전세게적으로 800만 명에 달한다. 인공 수정을 성공시킨 로버트 에드워즈 박사는 '전 세계 모든 부부 10% 이상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불임을 치료하는 길을 연 공로'로 201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모든 신기술에 대해 대중은 처음에 거부감을 갖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적극적으로 이용하게 된다. 하지만... 같은 문법이 유전자 편집 아기에도 통할 수 있을까?


2018. 11 홍콩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허젠쿠이가 발표하는 모습 (이미지 출처: YTN)


2018. 11 홍콩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허젠쿠이는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AIDS에 면역력을 갖도록 유전자를 교정한 쌍둥이 아기가 탄생했다"고 발표해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당시 허젠쿠이에 대한 세계적인 반응은 논란을 넘어서 압도적인 비난을 받았다. 허젠쿠이는 발표 후 바로 가택 연금되었고 불법 의료행위 죄로 징역 3년형과 벌금 300만 위안 (약 5억 원)을 선고받았다.


(출처: 中 과학자 "유전자 편집 태아 임신 또 있어"... 유전자 가위 개발자 "깊은 우려", YTN)


이날 방청객에서 첫 질문을 한 사람은 하버드의 데이비드 리우 교수였다. "의학적으로 어떤 수요가 충족되지 않았다고 판단해서 이 연구를 진행한 것입니까?" AIDS가 유전되지 않도록 정자를 세척하는 단계로 충분이 예방이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유전자를 편집했어야 했는지 묻는 질문에 허젠쿠이 박사는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전 세계적인 HIV 확산을 막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계획은 허술했다. 편집 과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결국 새로운 염기서열로 이루어진 돌연변이가 생겼다. 과정이 완벽했다고 해도 편집됐을 때 예기치 못한 연쇄 반응이나 부수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생명을 실험하기에는 너무 성급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허젠쿠이의 유전자 편집 아기는 실험의 의도부터 계획, 결과까지 모든 것이 문제 투성이었다. 그가 이런 대접을 받았던 이유는 <유전자 임팩트>에 잘 설명되어 있다.


(출처: <유전자 임팩트>, p.436)


많은 사람들이 유전자 편집을 두고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를 상상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 일을 왜 하는지, 왜 사람들이 이 일에 매달리는지 생각해보자.


유토피아를 말하는 사람들은,

유전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그리고 중증 유전질환의 원인 유전자가 자식에게 전달될까 봐 걱정을 놓지 못하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또한 고소득 국가의 환자들뿐만 아니라, 사는 곳과 상관없이 누구나 치료받을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디스토피아를 말하는 사람들은,

낙수 효과를 기대하는 경제 모형으로는 이런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것이고 결국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가르는 계급사회를 만드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말한다. 유전자 편집이 가능해지면 돈 있는 사람들이 자식들을 더 똑똑하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시도가 먼저 생길 것이라고 말이다.


양쪽의 주장은 모두 일리가 있다. 하지만 책 <똑똑하게 생존하기>에서 읽었듯이 너무 좋거나 너무 나빠서 도저히 사실일 것 같지 않다면 의심해보자. <마음의 미래>에서 미치오 카쿠는 사회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양분될 거라는 주장에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신기술이 처음 등장할 때는 물론 주로 부자와 권력가들이 혜택을 보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대량 생산과 기업 간의 경쟁, 기술 개선 등을 통해 가격이 내려가면서 결국 보통 사람들도 혜택을 받았다고 말이다. 또 공부를 잘해서 일류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보장이 없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는 유전적으로 지능을 높이려는 시도로 사회가 두 계층으로 양분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유전적인 것보다 노력과 환경의 중요성도 더 크지 않은가.


이 놀라운 기술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단지 시험관 아기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회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도 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인식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로 무조건 앞으로 돌진하는 것도 문제이고, 문제가 발생할 상황을 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될 것이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황도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가는 것이 우리 인간이기 때문이다. 생식세포 편집은 이미 벌어졌고,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다.


이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최소한 속도를 낮춰서 사고를 예방할 수는 있다.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과속방지턱을 만드는 일이다. 세균 분야에서 유명한 학자인 롤린 호치키스는 "인간이 행한 모든 모험이나 해악과 마찬가지로, 이타주의와 사적인 이익, 무지가 한데 얽혀서 그러한 일로 향하는 길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우리에게 가져올 위험성을 줄이려는 노력을 당장 시작해도 성급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럼 과속방지턱을 만드는 일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이상적인 것은 우리 모두가 현명해져서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일에 대해서 좋거나 나쁜 두 가지 결론이 아니라 여러 가지 경우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발견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사회가 현명해져야 한다."

셜리 틸그먼/ 프린스턴 전 총장이자 유전학자


새라 챈이라는 에든버러 대학교의 생명윤리학자라 말했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원칙"이 아니다. 두뇌 집단이 정한 복잡한 규칙이나 규정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광범위한 합의"이다. 합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신뢰를 만들기 위해서는? 투명하고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정보는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적인 미래 하나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상황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제대로 알리고 경고해야 한다. 대중들에게 어떻게 쉽게 전달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장 불필요해 보이고 머리 아프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 보는 것이다. 셜리 틸그먼이 말한 것처럼 신기술이 제대로 쓰이려면 우리 사회 전체가 현명해져야 한다. 사회가 현명해 지기 위한 노력은 소수 지식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사이언스> 니렌버그가 작성한 객원 사설 '사회는 준비가 됐을까?' 그러한 변화가 가져올 장기적인 결과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충분히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변화로 빚어질 윤리적, 도덕적인 문제도 긴 시간이 흘러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세포에 직접 지시를 내릴 수 있게 되더라도,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해 지혜롭게 활용할 수 있을 대까지는 그 지식을 쓰지 말아야 한다. 아직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고 해결이 시급한 때도 아닌데 이 문제를 미리 언급하는 이유는, 이와 같은 지식의 활용에 관한 결정을 궁극적으로 사회가 내려야 하며 충분한 정보를 갖춘 사회만이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임팩트>, p. 249


참고:

1) <유전자 임팩트>, 케빈 데이비스

2) <마음의 미래>, 미치오 카쿠

3) <똑똑하게 생존하기>, 칼 벅스트롬


*본 콘텐츠는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너무 당연한 진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