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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Jun 27. 2021

왜 영어 단어는 괴롭고,
랩 가사는 재밌을까

호기심을 만들어 내는 과학적 방법

최근 첫째, 둘째 아들이 노래 가사 하나를 완벽하게 다 외웠다.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운 것도 처음인데, 그것도 모든 가사가 랩이다. 바로 형돈이와 대준이의 '한 번도 안 틀리고 누구도 부르기 어려운 노래'다. 아이들이 영어단어를 억지로 겨우 외워내는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이 노래가 요즘 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외우기도 어려웠을 텐데 왜 하필 이 노래였을까? 나는 조금 더 구체적인 이유가 궁금했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미션을 어떻게 스스로 해내며 즐거워했을까?


왕밤빵과 홍합이 등장하는 <한 번도 안 틀리고 누구도 부르기 어려운 노래> (이미지 출처: JTBC, 아는 형님)



1. 배움은 그 자체로 재밌어야 한다 (즉각적 보상)


'컴프리헨시블 인풋(comprehensible input)'을 주장한 언어학자 크라센 박사는 언어를 효과적으로 배우려면 보상을 즉각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컴프리헨시블 인풋'과 반대되는 용어가 '스킬 빌딩'인데, 전자는 지금 그 행위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에 즐거운 감정을 즉각적으로 보상받는 반면, 후자는 지금 공부하면 나중에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보상을 미래로 미룬다는 차이가 있다. 아이들이 삼국지를 읽으면서 '스토리' 속에 등장하는 고사성어나 단어들을 습득하는 것도 컴프리헨시블 인풋에 해당한다. 크라센 박사는 언어 습득에 있어서 이 방법이 효과적이려면 인풋 Input 자체가 흥미로워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방법이 언어 습득에서는 적용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배움의 과정마다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가 등장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러면 배움에 있어서 인풋이 흥미로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 인풋이 재밌어야 한다 (배움에 대한 기대)


과학적으로 인간의 뇌가 배우는 과정을 밝히고 있는 책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에서는, 우리의 뇌는 배움에 대한 단순한 기대만으로도 자극을 받는다고 설명한다. 도파민은 (결과로써의 쾌락 전달물질일 뿐 아니라) 동기에 대한 신경전달물질이기도 해서 순수한 지적 호기심을 느낄 때 반응한다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금껏 어떤 환경에서도 학습하고, 적응함으로써 지금껏 생존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지식에 대한 갈망'을 보상해주는 도파민 덕분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기억과 호기심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뭔가에 대한 호기심이 클수록 더 잘 기억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 배움에 대한 기대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호기심을 계속해서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3.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알아야 한다 (메타인지)


호기심 괴리 이론에 따르면,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파악하는 것이 호기심을 유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즉,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는 것만 있으면 금세 식상해진다. 모르는 것만 있으면 거부감이 생긴다. 하지만 익숙함과 새로움의 균형점을 찾으면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두려움을 줄여주고, 모르는 것은 흥미를 자아낼 수 있다. 그 포인트에서 성공하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설명하는 책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도 같은 맥락이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의 호감을 얻으면서 궁금증을 자극하려면 적당히 친숙하면서도 적당히 새로워야 한다. 친숙성은 반복 노출로 높일 수 있지만 새로움은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익숙하지 않은 데서 찾아내야 한다. 그러면 내가 모르는 것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4. 충분히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 (관심의 필요)


"재미"를 연구하는 이언 보고스트 교수는 "재미”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성실하게 임해 기력을 탈진했을 때 생기는 배출물이라고 한다. 즉 사람들이 재미를 못 느끼는 이유는 그 일에 진지하게 임해서가 아니라 충분히 진지하게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귀찮은 일도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고 다. 어떤 일을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일에 관심을 기울여 보는 것이다. 보고스트는 잔디 깎는 일을 예로 든다. 그는 이 귀찮은 일을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잔디의 성장 과정과 잔디 관리법 등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일에 관심을 기울여 보라고 말한다. 그러면 시시함을 느끼던 일에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도전 과제를 찾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려운 가사를 재밌게 외울 수 있었던 이유는 곡의 제목과 가사에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차트를 달리는 남자'에서 이 노래가 "황당한 가사의 국내곡"이라는 주제에서 2위를 차지한 것을 보면서,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들을 모아 놓은 황당한 가사를 재미있어했고, '한 번도 안 틀리고 누구도 부르기 쉽지 않다'는 데서 도전 의식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곡 하나를 외우는 해프닝에서 끝나지 않고 뭔가를 계속 배우려면 새로운 자극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에서 강조한 것처럼 즉각적이고 따뜻한 피드백도 필요하다.


배움은 적극적인 활동이며, 우리의 예측과 어긋나는 데서 오는 놀람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놀람이 없으면 배움도 없다. 배움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배우는 사람의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명확한 피드백이다.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 스타니슬라스 드앤


나는 배움의 과정이 인생을 즐겁게 살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몰입 이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즐거움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가 아니라 어떤 일에 열정을 다해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따라오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세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동기 부여를 해야 할지 늘 고민이 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정보들을 말로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계속해서 즐겁게 배우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단 내가 너무 재밌다. 아이들도 이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다. 익숙한 데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좋은 피드백을 통해 배움을 격려하는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언젠가 배움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단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서 출발해 봐야겠다.


#씽큐온9기 #큐블리케이션 #우리의뇌는어떻게배우는가 #학습 #배움 #교육


참고:

1)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 스타니슬라스 드앤

2)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 앨런 가넷

3) <초집중>, 니르 이얄

4) <크라센의 읽기 혁명>, 스티븐 크라센


썸네일 이미지 출처: JTBC, 아는 형님


*본 콘텐츠는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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