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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Sep 26. 2021

혁신의 뿌리의 뿌리의 뿌리를 찾아서

두 그림의 엄청난 차이

몇 달 전 초등학교 5학년 큰 아이의 수학 문제를 도와주면서 아이가 사각형의 넓이를 구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너무 당연한 것을 모르는 아이를 탓하려던 나에게, 아이는 '왜냐고' 물었다. 나의 답은 이랬다. "가로 곱하기 세로가 넓이니까." 왜 넓이가 가로 X 세로인지 이해시켜주기보다 나는 그냥 공식을 알려주었다. 그게 문제를 푸는 데 빠르니까. 나도 모르게 내가 배운 정규 교육을 그대로 알려주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내가 알고 있다고 하는 지식들을 정말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무언가를 잘 알고 있다면 것을 표면적인 '정보'가 아니라 내가 이해한 바를 '내 언어로' 누군가에게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몇 가지나 있을까?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 외움이 아니라 이해함으로써 앎에 도달하는 것의 차이는 다음 <생각의 탄생>의 몇 문장에서 잘 설명해 준다.


교육에서 '무엇'과 '어떻게'의 결별은 곧 어떤 것을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이 분리되는 결과로 나타난다. 학생들은 이해함으로써 앎에 이르는 게 아니라 외움으로써 알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것을 실제로 '어떻게 응용해야 할지를 모른다는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할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의 지식은 실로 허약하며 쓸모없고, 교육적 실패의 결과물에 불과하고 겉만 번지르르한 '학문적 성취'의 외장일 뿐이다. -<생각의 탄생>, p.43


그러면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류사에 한 획을 그린 혁신의 대명사들이 어떻게 창조적인 발상을 했는지 설명하는 책, <혁신의 뿌리>에 그 비밀이 잘 드러나 있다. 말라리아 약으로 쓸 수 있는 '퀴닌'을 만들다가 보라색 염료를 개발해내고, 태양이 금성을 찍기 위해 만든 도구에서 영감을 받아 발명된 사진 총은 모션 픽처 (영화 촬영술)로 개발된다. 이런 역사의 전개들을 보면 과학자와 예술가의 사고 과정이 놀랄 만큼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생각의 탄생>에서 과학이든 예술이든 그들이 구하는 모든 해답은 비슷한 창조행위를 통해 구해진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결국 생각이 탄생하는 곳, 혁신의 뿌리는 같은 곳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그 혁신의 뿌리가 한 단어로 무엇인지 책에 정확하게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내가 찾은 가장 쉬운 단어는 느끼는 것이다.


창조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첫째, '느낀다'는 것이다.
모든 학문 분야에서 창조적 사고와 표현은 직관과 감정에서 비롯된다.
느낌과 직관은 '합리적 사고'의 방해물이 아니라
오히려 합리적 사고의 원천이자 기반이다... (중략)
오직 직관만이 교감을 통하여 통찰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생각의 탄생>,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즉, 무엇인가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한쪽 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의 감각을 이용해야 한다. <생각의 탄생>에서는 직관을 개발하기 위해 13가지 생각의 도구들을 소개한다. 이 생각의 도구들을 활용한 사례들이 <혁신의 뿌리>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신기하게도 주의 깊은 부모들은 공통적으로 자녀들이 미술과 과학 모두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생각의 탄생>의 13가지 생각의 도구들
: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인식, 패턴 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그리고 통합


<혁신의 뿌리>에서 가장 좋았던 이야기는 마리안 노스의 이야기였다. 노스의 아버지 프레데릭은 딸이 미술과 과학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흥미를 가지도록 잘 이끌었다. 노스는 나중에 1870년대와 80년대 중 14년 간 혼자서 지구를 두 바퀴나 돌았고 850점의 식물 그림을 남겼는데, 그녀의 그림이 놀라운 평가를 받는 것은 당시 당연하게 나누어져 있던 식물 분류학이 아니라 지리적 위치에 따라 나뉘어 전시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식물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싶어 했고, 자연의 맥락 속에서 식물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1980년대 그림을 찾아보면 당시 다른 식물 그림들은 배경 없이 "식물만" 그려져 있는 것에 반해, 노스의 그림 속 식물은 배경과 늘 함께 있다. 거기에는 나비와 곤충이 함께 있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을 보면 식물들이 어디서 자랐고, 어떤 동물이나 곤충이 그 주변에 있으며, 인간은 이것을 재배해서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출처: www.mariannenorth.uk (좌)/ wikioo.org (우)


마리안 노스의 그림이 특별히 더 좋은 것은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의 차이를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는 것은 어떤 대상을 표면적으로 아는 것이다. 이해하는 것은 어떤 대상 그 자체뿐 아니라 그것이 자란 환경과 관계, 그리고 왜 이렇게 자라게 되었는지까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단순한 정보는 아무런 감정을 불러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해하면 느낄 수 있게 된다. 이해하는 것은 관심에서 시작된다. 결국 창조적인 생각, 혁신의 뿌리의 뿌리의 뿌리는 관심이 아닐까.


주입식 암기식 교육으로 둘러싸여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들 교육을 시켜야 할지 고민이 된다. 막연하지만 방향성은 찾았다. 아는 데서 그치지 말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관심을 갖게 도와 주는 것이다. 더불어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확실한 오답도 찾았다. 결국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 공식만 외워서는 새로운 공식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창의력과 상상력은 느낌과 직관에서 온다.


참고: <혁신의 뿌리>, <생각의 탄생>


*본 콘텐츠는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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