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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Oct 24. 2021

제갈량을 설득한 것은
유비의 정성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을 인재로 등용하기 위해 숨어 살던 그의 초가집을 세 번이나 찾아가 설득했던 유비의 이야기는 삼고초려(廬)로 잘 알려져 있다. 두 번이나 헛걸음을 하고 세 번째로 그를 찾아 나섰을 때 유비는 제갈량에 존중을 나타내려고 그의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말에서 내려서 걸어갔고, 도착했을 때 잠을 자고 있는 그를 깨우지 않고 그가 깰 때까지 공손히 서 있었다고 한다. 이 일화처럼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세상 사람들이 대단치 않게 보는 사람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보이는 겸손한 태도와 간곡한 성의를 '삼고초려'라고 부르지만, 나는 이 이야기에서 빠진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핵심은 혹시 유비의 정성이 아니라 그의 비전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가 보여준 겸손함은 그가 설득된 한 가지 요인이었겠지만, 유비가 정말 싫었다면 그가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도망갔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름이 알려지기를 원하지도 않았고 돈이 필요하지도 않았던 제갈량을 설득하는 데는 분명히 '성의' 외에 무엇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그리고 제갈량이 출사표를 낸 것은 유비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비전을 첫 만남에서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비전은 무엇일까?


겸재 정선의 ‘초당춘수도’(艸堂春睡圖)


1. 비전은 상상력을 자극해야 한다.


유럽 11개국 1200여 개 매장, 연매출 5400억 원을 달성하고 있는 켈리델리의 회장 캘리 최의 사업 성공기,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에는 두 번의 삼고초려 같은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소개된다. 첫 번째는 야마모토 선생이고 두 번째는 로즈메리였다.


다시 며칠이 지나고, 나는 세 번째로 야마모토 선생을 찾아갔다. 삼고초려라는 말을 떠올렸던 건 아니지만, 최소한 세 번은 시도해봐야 미련이 없지 않겠느냐는 마음이 있었다. 그의 식당 앞에 가서 줄을 섰고, 한참을 기다려 내 차례가 왔다. 다시 나를 본 야마모토 선생은 당황할 법도 하건만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말할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지만,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내 잎에서는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초밥, 그거 나랑 만들어요. 나도 제일 맛있는 초밥 만들 거예요!"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 켈리 최


야마모토 선생은 그날 장사가 끝난 다음 켈리 최를 만나주었고, 결국 켈리 최에게 초밥을 만드는 노하우를 전수하고 레시피를 개발하는 것까지 도와주었다. 더 놀라운 것은 대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중에 켈리 최는 야마모토 선생에게 '그 정도 열정이라면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들었다고 한다. 위생 전문가를 찾던 중 만난 로즈메리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HACCP(식품안전관리 인증기준)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기간이나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도, 당장 비용을 지불할 수도 없었던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로즈메리는 그녀의 사업에 "재미있겠다며" 동참했다. 


누군가를 잘 알지 못한 상황, 첫 만남에서 이 사람을 대가를 받지 았아도 도와주고 싶게 만들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켈리 최는 그 이유를 그들이 '상상력을 자극받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상상력의 다른 말은 '비전'이다.


비전을 추구한다는 것은 미래를 내다보고, 
그러한 미래의 가능성을 고무적이고 명확하며 
현실성 있으면서 매력적인 방식으로 분명하게 표현하는 행위를 말한다.
조직원의 구성원들은 이렇게 표현된 가능성을 실천으로 옮겨 미래를 만든다. 

-<모두를 움직이는 힘>, p.25

2.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첫 만남에서 비전을 가지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는 있어도 그보다 더 어렵고 고차원적이고 통제하기 어려운 일은 비전을 이루어나가는 일일 것이다. <크래프톤 웨이>는 배틀그라운드가 전 세계적인 흥행을 하기 직전까지의 10년을 정말 솔직하게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서 그들이 비전을 어떻게 수정하고 고쳐왔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저항에 부딪혀 왔는지 낱낱이 볼 수가 있다. 


지금은 크래프톤으로 바뀌었지만 사명이 블루홀이었던 시절, 블루홀은 MMORPG의 명가가 되겠다는 명확한 비전을 붙잡고 출발했다. 블루홀의 초창기에는 비전 공유가 쉬웠다. 비전을 공유하는 소수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크고 작은 실패를 아직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모두가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밝다. 하지만 어떤 성공을 그리고 자신을 희생하며 달려왔음에도 불구하고 기대가 무너졌을 때, 실패가 명백해졌을 때 사람들은 흔들리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 그들이 비전을 어떻게 수정하고 고쳐왔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저항에 부딪혀 왔는지 낱낱이 볼 수가 있다. 회사가 커지면서 수백 명의 직원들과 비전을 공유하기 위한 노력들과 깊은 고민들도 담겨있다.


조직이 커진 만큼 각자의 눈높이가 다르고, 이해관계도 복잡해졌다. 블루홀을 이해하는 직원이 줄어들고 있었다. 임재연이 보내온 이메일 답신 말미에, 장병규는 잭 웰치 전 GE 회장의 어록을 붙였다.

신물 날 정도로 비전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입에 재갈을 물리고 싶을 정도로 끊임없이 비전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 언젠가는 하루 내내 너무도 많이 이야기해서 나 자신조차 지겨웠던 적이 있다. 그러나 모두가 비전을 완벽히 공유할 때까지는 끝없이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 <크래프톤 웨이>, p.397


식물은 계속 물을 주어야만 잘 자라는 것처럼,
지도자가 자신의 비전을 지속적 반복적으로 전달해야만
조직도 성장과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

-<모두를 움직이는 힘>, p.196


3. 비전은 언제든 수정될 수 있다


한 회사의 비전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이유는 목표했던 주변  환경이 예측하지 못하고 바뀌는 데 있을 것이다. <모두를 움직이는 힘>의 저자 마이클 하야트는 상황에 따라 초창기 설정해 둔 비전은 바뀔 수 있는데, 이를 '비전 곡선'으로 설명한다. 다시 말해 비전을 갖고 있더라도 비전이 기대한 대로 전개되지 않는 경우, 시기별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는 경우 방향 전환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공한 신생 벤처기업은 처음 계획을 실행에 옮기며
시장에서 어떤 계획이 제대로 실행이 되고 그렇지 않은지 알게 됐을 때,
처음 세운 비즈니스 전략을 포기한 기업들이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모두를 움직이는 힘>, p.271


결국 비전을 이루는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며 비전도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비전은 눈앞의 어떤 성공이나 실패에 흔들릴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말은 결과나 성과가 아니라 비전을 공유하는 지금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과정도 미래도 정해져 있지 않다면 지금 함께하는 것만으로 재미있고 의미 있다고 여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켈리 최의 제안을 대가 없이 받아들였던 두 사람도 실패할 상황을 감안하면서도 함께 했을 것이다. 보상을 보장받지 못하더라도 지금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비전에 관한 여러 책을 읽으며 나의 회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우리 회사는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고, 구성원들은 그 비전을 얼마나 공유하고 있을까? 연말에 모두 함께 그 시간을 갖기로 했지만, 나는 우선 이렇게 정리했다. 신뢰를 받는 회사, 성장하는 회사, 함께 하고 싶은 회사. 신뢰를 받으려면? 약속을 지켜야 한다. 꾸준해야 한다. 실력이 있어야 한다. 성장하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함께하고 싶은 회사가 되려면? 무언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재미가 되든, 실적이 되든, 공부한 것을 나누어 주든. 줄 수 있으려면 여유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회사가 아니라 개인이라는 프레임으로 바꾸어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회사에서 일하고 싶고,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회사와 나의 가치관이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올바른 비전을 "함께" 세우고 지키고 공유하고 싶다.


올바른 비전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구축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그것이 중요한지를 상기시킨다.
비전은 내면의 동기를 흔들어 깨워서
이를 따르고 어려운 일을 함께 수행하도록 하여,
조직 전체의 구성원을 고무시키고 에너지를 충만하게 한다.
조직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조직의 비전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알 수 있다. 

-<모두를 움직이는 힘>, p. 60-61


참고:

<모두를 움직이는 힘>, 마이클 하얏트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 캘리 최

<크래프톤 웨이>, 이기문


*본 콘텐츠는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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