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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Sep 12. 2021

그러면 이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되나요?

모든 것의 시작을 찾아서

도대체 아프가니스탄은 이제 어쩔 것인가. 국외로 탈출하려고 공항에 몰려든 사람들을 기사로 뉴스로 보며 가슴이 답답했다. 도대체 현실이 얼마나 지옥 같으면 아이들을 다시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철창 밖으로 내 아기를 데려가 달라고 할 수 있을까. 가슴이 찢어질 그곳 엄마들의 마음을 핸드폰으로 편안한 곳에 앉아 기사를 보면서 짐작하고 있는 나를 보니 죄책감이 든다.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무력함과 한편으로는 그렇다고 난민들을 무작정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이기심도 고개를 내민다. 복합적인 마음 가운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이 그들의 잘못만으로 인해 벌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큐멘터리_터닝 포인트 (출처: 넷플릭스)


최근 만들어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터닝포인트>는 911이 일어난 원인을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48년부터 시작된 냉전의 상대국인 소련에 대응하느라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이 이기게 하는데 총력을 다했다. 결국 소련은 전쟁에서 물러났지만 전쟁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체 인구의 1/3이 죽거나 다치거나 망명했다. (1985년까지 아프간인 100만 명 사망, 부상자는 150만 명. 100만 명은 이란으로, 200만 명이 파키스탄으로 망명) 그때 빈 라덴은 공격 대상을 자신들을 도와준 미국으로 돌렸다. 당시 소련이 쿠웨이트를 침공하는 것을 보고, 미국도 소련과 마찬가지고 자신들을 침공한 다음 무슬림의 석유와 부를 앗아갈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다.


빈 라덴은 왜 그렇게 반응했을까? 테러범은 영토를 뚫고 침범한 자들에 대응해 싸우는 데 폭력을 통해 정치적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들의 신념과 생활 방식이 있는데 쏟아져 들어오는 서양 문물과 영향력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가 강해지면서 벌어진 일이다. '나는 너희가 강요하는 것을 우리는 거부한다. 그러니 싸우고 반격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것이 빈 라덴의 생각이었고, 빈 라덴은 추종자들에게 왜 미국과 싸워야 하는지 종교적 정당성을 설명했다. 미국은 그렇게 공격 대상이 되었다.


현 상황을 진단하기 위해 <신화의 종말>은 신대륙 발견까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서 책의 핵심 단어인 미국의 프런티어 frontier 정신을 빼놓을 수 없다. 프런티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변경이지만, 변경을 어떤 경계라고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미국에서는 1800년대 말 인디언을 몰살시키면서 변경이라는 단어는 '자유'의 유의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인디언을 짓밟으며 영토가 끝없이 팽창하는 것을 보며 미국은 변경의 신화, 곧 팽창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1922년 제임스 먼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팽창할수록 이득은 더욱 커진다." 세계 2차 대전을 끝날 무렵, 트루먼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좌우명은 '유지'가 아닙니다. 우리의 좌우명은 성장, 팽창, 진보입니다. 아직 변경의 시대는 살아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성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팽창, 성장, 진보의 뒤에는 미국의 핵심 사상인 '자유'가 있었다. 서부시대, 절대 자유에 따라 살겠다는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구속에서 벗어날 자유'였다. 노예 소유를 금지하는 구속에서, 남의 땅을 빼앗지 못하게 막는 구속에서, 서쪽으로의 이동을 막는 구속에서 벗어날 자유를 의미했다. 1977년에 와서 전미총기협회(NRA)에게 개인의 절대적인 권리란 무기를 소지할 권리를 의미했다. 자유의 의미는 투자하고 뽑아 먹을 자유, 더 나아가 그 자유는 '완전한 자유 무역'- 즉, 관세를 낮추고 동맹국에 미국의 투자를 제한하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으로 확장됐다.


(출처: <신화의 종말>, p. 144)


문제는, 그들이 말하는 자유가 너무 많은 문제를 일으켜왔다는 것이다. 팽창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팽창은 또 다른 팽창으로만 유지할 수 있었다.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했던 문제들은 오히려 부메랑처럼 미국에 다시 돌아와 증오를 낳았고, 증오는 인종차별과 대량 학살을 불러왔다. '영역을 확장하면 평화와 번영이 깃든다'는 메디슨의 이론에 따라 클린턴은 NAFTA를 홍보하며 미국이 세계적으로 성장하면 빈곤과 인종 차별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지만, NAFTA(북미 자유무역협정)가 발효되고 몇 년 사이 멕시코 농가의 수만 470만 가구가 토지를 잃었다.


소규모 옥수수, 유제품, 돼지 농장은 기계화된 미국 농업에 전멸했다...(중략) 관세가 부과되지 않은 음료수와 정크푸드가 멕시코로 쏟아져 들어와 영양실조와 비만이 함께 증가했다...(중략) 동시에 멕시코 옥수수와 설탕, 아프리카 야자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비율로 바이오 연료 생산에 쓰이면서 지역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었던 토지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중략) 경쟁력을 잃은 NAFTA 난민 대다수는 멕시코 시티로 향했고 마약 거래에 빠지는 등 비공식적 경제에 의지해 근근이 생계를 꾸렸다... (중략) 겨우 살아남은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은 1990년대에 채광, 대규모 바이오 연료 생산, 다국적 농업 기업에 경제를 개방하라는 미국 정부의 압박을 받았다. 현재 온 나라가 굶주리고 있다. 과테말라 아동의 절반 이상 이 만성적인 영양실조 환자라고 한다.-p. 361-362
그사이 미국은 극단주의를 바깥으로 돌릴 능력을 잃었고 미국이 페르시아만에 쏟아 냈던 혼란은 점점 국내에도 반영되어 지하디스트의 테러, 학교 내 총기 난사, 백인 우월주의자와 남성 우월주의자의 난동이 소용돌이치듯 증가했다. -p. 388


팽창이 보호한다고 했던 모든 것은 파괴되었고,
팽창이 파괴한다고 했던 모든 것은 보존되었다.
평화 대신 끝없는 전쟁이 이어졌다.

-<신화의 종말>, 그렉 그랜딘


테러와의 전쟁은 한 세계의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팽창과, 그것을 침범이라고 생각하고 폭력으로 대응하려고 했던 다른 세계가 부딪히면서 만들어낸 최악의 결과다. 그 과정에서 세계 전역에서 난민들이 만든 파도는 이미 거대한 흐름이 되어버렸다. 사실 난민이 발생하는 원인은 테러뿐은 아니다. 위에 인용한 문장들에서처럼 가난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 자신을 증오하는 곳으로 목숨을 걸고 도망칠 수밖에 없는 난민들도 있다. 그러면 그 난민들은 누가 만들어 냈는가. 그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가. 답이 안 나오는 수많은 문제들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원인을 상대방에게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상황, 문제는 열등한 그들에게 있고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그들이라는 프레임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폭력과 복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더 큰 문제를 만들 뿐이다.


멕시코와 맞닿은 국경 남쪽에서 미국 정부가 펼친 정책은 훗날 더 넓은 중동에서 일으킬 참사를 예고했다. 그곳에서도 무수한 난민이 쏟아지고 지역 정치가 격화되었다. 난민들은 대부분 교도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범죄자 취급을 받은 이들은 범죄자가 되었고 갱단을 조직했으며 추방당한 후에도 조직 활동을 계속했다. 오늘날 미국의 이주자들은 날이 갈수록 자신을 증오 대상으로 정의하는 나라로 들어오고 있다.-p.368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로 비극 분야의 개척자로 불리는 아이스킬로스 Aeschylus는 이런 말을 남겼다. "발을 재난(불행)의 반대편에 두고 있는 사람이 고통받는 사람을 비난하고 조언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It is an easy thing for one whose foot is on the outside of calamity to give advice and to rebuke the sufferer.) 지금 이미 발생한 이 최악의 상황을 쉽게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왜 그들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 짐작하다 보면 (동의하자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배울 점은 있다. 어떤 사회적 현상에서 원인을 한 가지로 규정하는 것보다 위험한 것은 없으니까.


물리학은 개별적 원인과 명확한 결과의 관점에서 세계를 설명하지만, 사회적으로 구축된 영역에서는 단 하나의 원인이 단 하나의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략)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초래했다고 말할 수 없다. 두 가지 현상은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일어났고, 분명히 상승 작용을 일으켰을 것이다. 역사를 다룰 때는 인과관계를 논하기보다 파급효과를 염두에 두는 편이 낫다.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타밈 안사리



썸네일 출처: inews.co.uk

참고:

1. <신화의 종말>, 그렉 그랜딘

2. <터닝포인트>, 넷플릭스

3.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타밈 안사리


*본 콘텐츠는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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