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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Aug 29. 2021

아문센의 팀은 모두 살았고,
스콧의 팀은 모두 죽었다.

망하기 않기 위한 최선의 전략

승리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며
사람들은 이를 행운이라 부른다.

패배는 미리 준비하지 않은 자에게 찾아오며
사람들은 이것을 불운이라 부른다.

이 명언을 남긴 사람은 남극을 최초로 정복한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이다. 그가 남극을 탐험했던 이야기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은데, 그의 전설적인 남극 정복 스토리를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어 준 것은 같은 시기, 누가 먼저 남극에 도착할 것인지를 두고 경쟁하던 영국의 로버트 스콧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목표였지만 두 탐험대는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아문센은 남극에 먼저 도착했고 단 한 명의 대원도 잃지 않고 무사히 귀환했던 반면, 스콧과 그 일행은 경쟁에서도 실패했을 뿐 아니라 전원이 사망했다. 


(이미지 출처: REDINGTON)

결과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아문센은 모든 가능성에 대해 철저히 대비하고 준비한 반면, 스콧 대령은 열정과 용기는 있었을지 몰라도 무모했다. 아문센 팀은 에스키모의 짐승 털과 가죽옷을 입었으나 스콧팀은 (품위에 어긋난다며) 유럽식 모직 방한 복을 고집했다. 아문센 팀은 썰매를 끌 수 있고 극한의 상황 시 먹이로도 쓸 52마리의 개를 택했지만, 스콧팀은 (개를 쓰는 것은 비인간적이라고) 만주산 조랑말을 선택했다 (말은 남극 도착 며칠 후 얼어 죽었고, 개 대신 짐을 운반해야 했던 것은 사람이었다). 아문센 팀은 모두가 스키를 잘 탔지만 스콧팀은 스키를 잘 타지 못했고 훈련하지도 않았다. 52마리의 허스키와 5명의 탐험대로 이루어졌던 아문센팀의 식량은 3톤이었지만 17명의 탐험대로 이루어진 스콧의 식량은 1톤에 불과했다. 먼저 도착한 아문센팀이 늦게 도착할 스콧 팀을 위해 비상식량을 남겨두었지만, 스콧 팀은 자존심 때문에 건드리지 않았다. 아문센 팀은 극지점 도착 후 돌아오는 길에 설치한 식량 저장소마다 대형 깃발을 꽂아 눈에 띄게 만들었던 반면, 스콧팀은 자신들의 식량 저장소를 알아보지 못하고 불과 800m를 남겨둔 곳에서 전원이 사망했다. 


좌: 아문센 팀, 탐험 내내 함께 했던 시베리안 허스키들 / 우: 스콧 팀, 썰매를 끌 말들이 죽자 사람들이 썰매를 끌어야 했다 (출처: birdinflight)


두 팀은 모든 과정에서 완전히 다른 의사결정을 내렸다. 가장 큰 차이점은 두 팀이 일어나지 않은 일, 그러나 일어날 수 있었던 일에 얼마나 철저히 대비하며 의사결정을 했는지에 관한 것일 것이다. 최근 <사피엔스의 멸망>을 읽으며 "왜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떠오른 인물이 아문센이었다. 두 팀의 사례는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에 관해 중요한 교훈을 준다. 



이 책은 인류의 미래 위험에 대해 설명하며 우리가 왜 관심을 가져야 하고,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혹자는 의아해할 것이다. 지금 먹고살기도 바쁜데 인류의 미래를 걱정할 여유가 없다고, 혹은 왜 쓸데없이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느냐고.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사피엔스의 멸망>을 쓴 토비 오드는 말한다. 우리가 살면서 겪어보지 않았거나 전례가 없던 사건이라고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고. 생존의 문제가 달려 있다면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확신에 찬 저명한 과학자들의 예측이 지금껏 대부분 틀려왔던 점을 보면 더더욱 우리의 삶을 회의주의에 걸어선 안된다고 말이다. 지금껏 괜찮았으니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여기서 괜찮으니 저기서도 괜찮을 거라는 말도 거짓말이다. 그렇게 안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문센은 스콧의 팀보다 1/3 적은 인원인데도 3배 많은 식량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렇게 안도했기 때문에 스콧 팀은 남극에서 얼어 고장나 버린 설상차를 믿고 자신만만했을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는 필요하다. 동의가 되었다면, 다음 문제가 있다. 일어나지 않은 수많은 위험 속에서 도대체 어떤 위험에 관심을 가지고 대비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어떤 위험이 가장 시급한가? 어떤 위험이 사소한 부분일까? 같은 자원을 투입한다면 총위험을 가장 많이 줄일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 이 질문들에 정확한 답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토비 오드는 노력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한 다음 네 가지 휴리스틱을 제안한다. 


1. 문제의 중요성: 문제를 해결할 때의 가치

2. 해결 용이성: 해결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3. 무시 정도: 문제가 어느 정도 무시되고 있는지, 자원이 얼마나 적게 할당되었는지

4. 시간: 조만간 일어날 위험, 갑자기 나타날 위험, 돌발적 위험이 나타나는지

(자세한 내용은 책 241p~250p 참고) 


이렇게 우선순위 정하는 연습은 우리 일상의 작은 문제들의 해결 방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우선순위를 정하면 유한한 에너지와 자원을 어디에 어떻게 쏟아부어야 할지 정할 수 있다. 우선순위를 정했다면 자원을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각 과정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충분히,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면, 어떤 선택을 옳다고 확신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최선이었을 수도 있었던 선택 안을 영구적으로 차단하지 않게 된다. 


한편 지금 먹고살기도 바쁜데 미래 세대를 걱정할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지금 내가 죽게 생겼는데 누구를 걱정하겠는가. 토비 오드는 "우리가 인류 미래 전체를 위협하는 위험에 무관심한 건 신중함이 부족해서다. 지금 세대의 이익을 후세대의 이익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건 인내심이 부족해서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인내심과 신중함 외에 우리에게 부족한 한 가지가 더 있는 것 같다. 바로 '여유'다.


내가 여유가 있을 때 누군가를 배려할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내가 잘 산다는 것은 경제적인 부유함이 아니다. 지금 가진 것으로 충분하다는 마음이다. 생존에 대한 안전이다. 나의 안전이 확보되었을 때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남극 목표지점에 도달한 후 곧이어 도달할 스콧의 팀을 위해 식량과 옷을 남겨둔 아문센처럼, 일단 내가 쓸 자원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남에게 나눠 줄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다만 여기서 고민해야 할 것은 '충분하다는' 범위의 정의일 것이다. 충분이란 어디까지가 최소이고 최대일까? 


아문센의 팀이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아무리 아문센이 대인배였어도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면서 자원을 희생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팀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필요 없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을 것이다. 이런 부분이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우리가 누릴 최소한에 대한 고민, 그리고 생존할 뒷사람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조직의 안전은 많은 부분 리더가 결정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의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다. 리더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고 공감하는 것도 반대하는 것도 우리의 일이다. 기억하자. 아문센의 팀은 모두가 살았고, 스콧의 팀은 모두가 죽었다. 인류의 미래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는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사피엔스의멸망 #씽큐온10기 #큐블리케이션 


*썸네일 이미지 출처: 영화_아문센


*본 콘텐츠는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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