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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Sep 17. 2023

'6 페이지'를
무려 5시간 동안 읽으면서 깨달은 것

신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세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뭘까? 많은 중요한 가치 중에서도 인간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신뢰'가 아닐까 싶다. 일단 믿음이 생기면 비효율적인 검증 과정이 사라진다. 의사결정이 빨라진다. 단기적인 목표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더 크고 높은 목표를 위해 함께 나아갈 수 있다. 우리 가능성의 많은 부분이 신뢰에 달려있다. 


그럼 '어떤'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을까?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 약속을 지키는 사람, 자신이 정한 목표를 위해 꾸준하게 노력하는 사람, 자신이 잘못한 일을 용기 있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 거짓말하지 않고 솔직&진실한 사람... 정리하면, 신뢰를 형성하는 요인들은 1) 일관성 2) 실력 3) 투명성 (진실함) 정도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가 더 있다. 독립성이다.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 '독립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번에 <벤 버냉키의 21세기 통화 정책>을 읽으며 절감했다. 독립성이 왜 중요한지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의 주인공인 미국의 연준(연방준비제도)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연준이 중요한 이유 (많은 중요한 역할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FOMC(연방공개시장 위원회)의 정책 결정에 필요한 투표권(12장) 중 과반수 이상(7장)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FOMC가 중요한 이유는 미국의 통화 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통화 정책이 중요한 이유는 경제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단기금리를 비롯한 여러 조치를 통해 금융 상황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조치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연방기금금리(은행들이 서로 지급준비금을 빌릴 때 부과하는 금리)에 발휘하는 영향력이다. 연방기금금리가 중요한 이유는 이 트리거로 금융시장에 바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연준의 의사 결정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세계 경제에도 파장을 주게 된다. 

연방기금금리 목표가 낮아지면... (높아지면 모두 반대의 상황)
→ 주택담보 대출과 회사채 금리가 낮아진다 
→ 주택 구매와 자본투자가 활성화된다
→ 주가가 상승한다 → 부가 증가한다 → 소비가 진작된다
→ 달러가 약세로 돌아선다 → 미국 내 상품 가격이 낮아진다 → 미국의 수출이 촉진된다


연준의 독립성 문제가 대두된 것은 '대 인플레이션' 이후부터다. 1965년 이전 물가지수 상승률이 1.3%에 비해 1979~1980년에는 무려 13%까지 치솟았는데, 이 기간 인플레이션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미국 정부의 경제 정책을 사람들의 믿지 않게 되었다. 연준이 금리 인상의 형태로 통화 긴축 정책을 폈더라면 과열된 경제를 진정시킬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러지 못했던 이유는 정치적 압력 때문이었다. 이에 더해서 잘못된 이론 체계(금본위제 등)도 대공황을 방지하지 못한 이유인만큼 "객관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정책 수립에 최대한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대중의 신뢰를 얻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성인의 성격을 형성하는 것처럼, 대 인플레이션은 이후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통화 정책 이론과 실제를 규정하는 역할을 했다.. (중략) 대 인플레이션을 거치며 정치적 압력이 통화 정책을 크게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을 경험한 많은 이들이, 통화 정책입안자들이 객관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정책 수립에 최대한 독립성을 확보하여 장기적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안을 추구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벤 버냉키의 21세기 통화정책>, P.41


하지만 무엇으로부터의 독립은 단순히 '지금부터 우리 독립적이 되자!'고 해서 유지될 수 없다. 특히 이렇게 전 세계에 영향을 주는 거대하고 예측 불가능한 시장에서는 더 그럴 것이다. 그러면 연준은 어떻게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었을까? 4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1. 구조적 복합성

FOMC 투표권 총 12장 = 연준 이사 7명 (의장 포함) + 연방준비은행 총재 5명 

(FOMC 부의장인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제외한 4장의 투표권을 지역별 연방준비은행 총재 11명이 해마다 돌아가면서 부여받는다)


통화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FOMC의 의결 규칙은 '대단히' 복잡하다. 지역별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발언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투표권 과반수가 정부가 지명한 이사회에 있다고 해도) 정부가 입맛대로 쉽게 결정을 좌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2. 조직적 특성


연준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에 의해 운영된다. 7명의 이사는 대통령의 지명과 상원의 인준을 거쳐 14년 단임제로 일하는데, 이때 연준 이사들은 14년의 임기 동안 대통령의 정책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해임되지 않는다. (오직 불법 행위 사유나 의회의 탄핵 소추에 의해서만 해임된다) 7명 중 같은 방식(대통령 지명과 상원 인준)으로 선출되는 의장과 부의장의 임기는 4년이지만 이사로서의 임기가 남아있다면 재임이 가능하다. 또한 12명의 연방준비은행의 장들은 정부가 지명하지 않는다.


3. 재정적 독립


연준의 운영비의회가 책정한 예산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발행한 증권 수익으로 감당한다.


오랜 시간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보장받기 위한 노력이 이어져 왔다. 1979년 임명된 볼커 의장이 대 인플레이션의 종지부를 찍고, 이후 그리스펀 의장이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신뢰를 회복한 것도 독립성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여기서 하나 더 짚고 가야 할 것이 있다. 독립성은 어떤 독립성인가? 스탠리 피셔는 연준의 독립성을 두 가지 개념으로 정리했다.


스탠리 피셔가 구분하여 널리 알려진 두 가지 개념이 있다. 즉 연준에 '목표의 독립성'은 없지만, 최소한 이론상 '정책적 독립성'은 지닌다는 것이다. 즉 연준은 자신에게 부여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정책 수단을 선택할 권한을 지닌다. 연준은 그 구조의 다양한 면에 힘입어 단기적인 정치 압력에 영향을 받지 않고, 다른 행정 부서에 비해 독립적으로 활동하며 장기적 성과에 집중할 수 있다. -<벤 버냉키의 21세기 통화 정책>, p.30-31


목표의 독립성 vs 정책성 독립성. 지금까지 이야기한 독립성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 즉 정책성 독립성에 대한 것이다. 의회는 FOMC를 향해 양대 책무, 최대 고용과 물가 안정이라는 경제적 목표를 추구하라는 지침을 주었고 이것이 의회와 연준이 공유하는 목표다. 결국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높고 큰 목표를 이해관계가 다른 두 집단이 확실하게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4. 목적의식 공유


덕분에 정부가 바뀔 때마다, 혹은 대중의 인기(선거를 위한)를 얻기 위해 저금리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행정부에 연준은 과감하게 반기를 들 수 있었다.



<벤 버냉키의 21세기 통화정책>은 연준이 신뢰를 얻기 위해 했던 수많은 시행착오와 노력과 깊은 고민들을 기록한 책이다. 책에서 전 연준 의장들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실수를 인정하고 또다시 실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도 언급한다. 양적 완화에 대한 찬반 의견이 여전히 있고, 연준 의장이 쓴 책이다 보니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지만- 책에 적은 문장들로만 판단했을 때, 연준을 책망하고 본의를 의심하기보다는 응원하고 싶다. 연준이 독립성뿐 아니라 투명하고 일관적인 통화 정책을 통해 대중의 신뢰를 얻었으면 좋겠다. 단기적으로 정책 금리를 인하해서 인기를 얻으려는 단기적 목적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관점이 모두와 공유되었으면 좋겠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실수할 것이지만 "인격과 성실성"에서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는, 책의 마지막 문장은 개인적인 삶에서도 꼭 기억하고 싶다. 



연준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분명히 실수할 것이다.
그러나 제롬 파월이 말했듯이,
연준은 인격과 성실성에서는 실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앞으로도 계속 보여주어야 한다.
-벤 버냉키

이미지 출처: Economics isn't just about money and material benefits, Fed Chairman Ben Bernanke says. It is also about understanding and promoting>, NBC news 


상상스퀘어에서 운영하는 무료 독서모임 '씽큐베이션' 14기의 네 번째 책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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